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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우리나라 의사를 강제로 북한에 보낸다고?
[팩트체크] 우리나라 의사를 강제로 북한에 보낸다고?
  • 권민지 기자
  • 승인 2020.09.02 15: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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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영 의원 발의 '남북보건의료교류법' 두고 비난여론 고조
"(강제 파견) 가능하지 않겠나" 통일부 장관 발언이 논란 키워
전문가 '강제조항으로 해석 어려워'···정부 불신이 논란 키운듯
3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해 발언하는 이인영 통일부 장관.
3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해 발언하는 이인영 통일부 장관(맨 오른쪽).

지난달 정부 관계자가 '의사는 공공재'라는 취지의 발언을 해 의료계의 공분을 불러일으킨 데 이어 최근엔 국회에 제출된 남북보건의료 교류 관련법안이 또다시 의료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법안의 특정 조항이 정부 의지에 따라 우리나라를 의사를 북한에 강제로 파견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의료계 일각에선 의사를 공공재 취급하는 정부가 결국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우리나라 의사를 북한에 퍼주기 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마저 나오고 있다. 

◆7월에 발의된 법안, 특정 조항 부각되며 논란의 중심으로

신현영 의원.(사진=뉴스1)
신현영 의원.(사진=뉴스1)

이번에 논란이 되고 있는 법안은 지난 7월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남북보건의료의 교류협력 증진에 관한 법률’이다.  

신 의원은 이 법안을 대표 발의하면서 “감염병으로 전세계가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는 시점에 남북한 간의 보건의료 시스템을 서로 발전시키기 위해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인도주의적 협력체계를 제도화해야 한다”고 법 제정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발의자들은 법안의 제안 이유에서 북한의 보건의료 시스템 개선을 강조했다. 즉, “이른바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의 보건의료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반 주민들의 이용도가 높은 일차보건의료 분야의 취약으로 의료접근성이 심각하게 악화되고 있다”며 “남북한이 상호 협력해 단편적인 지원이나 협력 방식을 넘어 남북한이 상생할 수 있는 교류협력을 증진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북한에 보건의료 지원 사업을 추진하는 단체에 보조금 등을 지원하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수많은 보건의료 관련 법안 중 하나로, 여론의 눈길을 끌지 못했던 이 법안이 논란이 된 것은 최근 법안 9조가 새롭게 조명됐기 때문이다. 

9조는 '정부가 남한 또는 북한에 보건의료 분야 지원이 필요한 재난이 발생할 경우 △남한과 북한의 공동 대응 및 보건의료인력·의료장비·의약품 등의 긴급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두고 '북한에 재난상황이 발생할 경우 정부가 국내 의료진을 북한에 강제로 파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의료계를 중심으로 여론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비난여론 고조 속 통일부 대응이 기름 부어 

실제로 최근 SNS를 중심으로 해당 법안을 발의한 신현영 의원을 비난하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댓글에는 “공공재라는 말 듣고 황당했는데 이제 북에 강제적인 징발, 징집? 이런 말이 나올 줄 꿈에도 몰랐다” “동료였던 의사들을 한 번이라도 생각했다면 이런 법안을 낼 수 있었겠느냐” “의료인이 도구로 보이냐” “그렇게 북한이 좋으면 직접 가라” “우리나라에 의사 부족해서 의사 수 늘린다는 게 아니라 북한에 보낼 의사가 필요했나 보다” 등의 게시글과 댓글이 이어졌다. 

이처럼 민감한 시기에 통일부의 대응은 기름을 부었다는 분석이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 달 3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 법안을 두고 “강제적 방식의 보건의료협력이 가능한지 확인해보겠지만, 기본적으로 보건의료협력 연장선에 있다면 가능하지 않겠나”라고 말한 것. 이 장관은 “어느 정도 수준까지 (보건의료인력 지원이) 가능한지 판단해보겠다”며 “강제적 징발, 징집 수준의 행위까지 가능한지는 더 확인해봐야겠다”고 덧붙였다. 

논란이 확산되자 신현영 의원이 직접 공식 입장을 표명하고 나섰다.

신 의원은 1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법안의 취지는 남북 간의 보건의료 상호협력을 증진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지,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강제성’을 가지고 의료인력을 북한에 파견하기 위한 법안이 아니다”라며 “왜곡과 정쟁을 삼가달라”고 밝혔다. 

신 의원은 “북한에 걷잡을 수 없는 감염병이 발생한다면 그 여파는 우리에게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당연히 대비해야 한다”며 “의료계가 우려하는 부분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과감히 해당 법안을 수정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신 의원은 국회의원이 되기 전 남북한 보건의료 교류협력 등을 위해 활동하는 의료인 단체인 통일보건의료학회의 홍보이사를 맡는 해당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해왔다. 국회에 입성한 후에도 보건복지위원에 배정된 뒤 복지위 회의에서 남북 보건협력을 언급하는 등 계속해서 관심을 기울여왔다. 

실제로 지난 7월 복지부 전체회의에서는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에 대한 대정부 질문에서 “(남북) 보건의료의 교류협력이 중요하고 지금 시점에서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번 남북보건의료 교류법안 발의는 이같은 관심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강제 파견은 현실적으로 어려울듯···‘정부 불신’이 분노 키워 

논란의 핵심은 '긴급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한 남북보건의료에관한법률 9조를 근거로 정부가 국내 의사를 북한에 강제로 파견할 수 있느냐다. 이에 대해 법률 전문가들은 다소 회의적인 입장이다. 

전성훈 변호사(법무법인 한별)는 본지 통화에서 “법적으로 의무를 규정하는 방식이 여러가지 있는데 ‘하여야 한다’는 그야말로 의무가 발생하는 것이고, ‘노력하여야 한다’는 중장기적인 이슈를 가지고 있을 때 그러한 방향으로 해야한다는 ‘방향성’을 가지는 표현이지 의무를 부과하는 표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 변호사는 “’긴급지원을 해야한다와 긴급지원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은 엄청난 차이”라며 “법적으로 ‘노력’이라는 말이 들어있는 경우 강제력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 의원이 몸담았던 통일보건의료학회도 최근 "본 법안은 의료인을 강제 동원할 취지가 아니고, 의료인의 북한 지원은 어디까지나 자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학회측은 특히 이번 법안과 비슷한 내용의 법안이 21대 국회 이전에도 정의화 전 국회의장 등 현 야당 의원들에 의해 3차례나 발의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처럼 해당 법안을 근거로 우리나라 의사를 북한에 강제로 파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데도 이 법안이 큰 논란이 된 것은 최근 정부에 대한 의료계의 불신이 최고조에 달했기 때문이 아니겠냐는 분석이다. 

실제로 지난 7월 법안 발의 당시에는 잠잠하던 여론이 최근 갑자기 터져나온 것은 최근 전공의 파업을 필두로 의료계와 정부와 정면 충돌하고 있는 상황과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정부와의 대치 국면에서 쌓여간 정부에 대한 불신이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하기 보다 의혹을 키워나가는 쪽으로 진행됐다는 것이다. 

전성훈 변호사는 “의료계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이슈를 발굴하는 것은 의미가 있지만, 이번 남북보건의료법률은 핀트가 어긋난 것 같다”며 “상식적으로 법조인들 입장에서 보면 말이 안 되는 것이고 분노 과열 양상도 한 몫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기석 한림대학교 호흡기내과 교수(전 질병관리본부장)는 “법조인이 아니라 법률적으로는 정확하게 모르겠으나, 정부의 어마어마한 겁박이 오고 있는 이 시기에 강제 파견의 빌미가 되는 문구라고 볼 수 있지 않겠느냐”며 “신 의원이 순수한 마음에 의료진이 북한에 가면 좋겠다고 했겠지만 지금 정부의 행태로 봐서는 강제로 차출이라도 할 기세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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