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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1만6000여 전공의, 오늘부터 전원 무기한 파업
전국 1만6000여 전공의, 오늘부터 전원 무기한 파업
  • 권민지 기자
  • 승인 2020.08.23 15: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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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부터 순차파업 시작해 23일부터 전원 동참
23일 전국 43개 수련병원서 '가운 탈의식' 진행
가운 탈의 순서 기다리는 전공의들.(사진=배재현 건대병원 전공의 대표)
가운 탈의 순서 기다리는 전공의들.(사진=배재현 건대병원 전공의 대표)

전국 전공의 1만6000여명이 23일부터무기한 파업에 돌입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의 파업 로드맵에 따라 지난 21일 인턴과 4년차 전공의부터 오늘 1·2년차 전공의까지 모든 전공의들이 파업에 돌입한 것이다.

전날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 추진에 대해 ‘유보’한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내놨지만 의료계는 “’유보’ ‘보류’ 언급을 멈추고 원점에서 재논의하자”며 예정대로 총파업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대한전공의협의회에 따르면 23일 오전 전국 43개 전공의 수련 병원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가운 탈의식’이 진행됐다.

이날 오전 8시 영등포구 한림대학교 강남성심병원 신관 1동 앞에는 전공의 스무 명 가량이 하얀 가운을 들고 집결했다.

23일 오전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전공의들이 벗어 놓은 가운들.
23일 오전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전공의들이 벗어 놓은 가운들.

모두가 한 뜻으로 모였지만 서로 대화를 자제하고 자리를 지키고 있어 엄숙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이성주 한림대학교 강남성심병원 전공의 대표는 대한전공의협의회 대국민 담화문을 낭독했다.

대전협 대국민 담화문.
대전협 대국민 담화문.

담화문에서 전공의들은 “밤낮으로 병원에서 환자들 곁을 돌보고 있던 우리는 오늘부터 우리의 일터이자 보금자리인 병원을 잠시 떠나려 한다”며 “정부는,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삼으며 수조원에 이르는 세금과 대한민국 보건의료의 미래가 걸려 있는 중대한 정책을 졸속으로 추진하는 것을 멈춰달라”고 말했다.

또 “저희들은 의료 정책의 결정 과정에 현장 전문가의 목소리가 반영되길 바란다”면서 “한 번만 귀 기울여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호소했다.

전공의들은 “코로나19 재확산에 대한 염려가 큰 시기에 국민들과 환자분들께 불편을 드려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코로나19 방역에 저희를 필요로 한다면 그곳으로 즉시 달려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담화문 낭독 이후 한림대학교 강남성심병원 전공의들은 차례로 입고 있던 가운을 벗어 병원 출입문 앞에 내려놓았다.

정부의 소통 없는 정책 추진에 분노를 느끼는 전공의들이었지만 가운을 내팽개치는 전공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대신 전공의들은 모두 가운을 곱게 접어 바닥에 천천히 내려놓았다.

익명을 요청한 한림대학교 강남성심병원 전공의 A씨는 “지난 7일 파업 때보다도 확실히 분위기가 무거워진 것 같다”며 “마음가짐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건국대병원에서는 40여 명의 전공의가 같은 날 오전 9시에 병원 안 광장에 모였다.

광장에 모인 전공의들.(사진=배재현 건대병원 전공의 대표)
광장에 모인 전공의들.(사진=배재현 건대병원 전공의 대표)

건대병원 전공의들은 이날 모인 자리에서 “존경하는 선배님 그리고 교수님들께”라는 제목으로 자필로 꾹꾹 눌러 적은 대자보를 게시하기도 했다.

대자보에서 건대병원 전공의들은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국시를 취소하고 휴학계를 낸 어린 의대생 후배들을 차마 모른 척 할 수 없었다”라며 “비이성이 이성을 짓누르는 세상에서, 저희 젊은 의사들은 더 이상 이 사회에서 전문가로서의 존재 의미도, 미래도 없다는 생각에 참담한 마음뿐”이라고 밝혔다.

(사진=배재현 건대병원 전공의 대표)
(사진=배재현 건대병원 전공의 대표)

이어 “앞으로 더 큰 파도가 닥쳐올 것을 알고 있지만 저희는 옳다고 믿는 가치를 위해 서로 단단히 팔짱을 끼고 거친 바람을 헤쳐 나갈 것”이라면서 “어렵게 내딛은 이 길 위에 함께 해달라. 저희 손을 잡아달라”고 전했다.

충북대병원에서는 110명의 전공의가 이날 오전 병원 로비를 가득 메웠다.

가운 벗는 전공의.(사진=김윤호 충북대병원 전공의 대표)
대전협 대국민 담화문 보며 가운 벗는 전공의.(사진=김윤호 충북대병원 전공의 대표)

100명이 넘는 전공의들이 벗어놓은 하얀 가운이 병원 로비 한 쪽 벽에 탑처럼 쌓였다.

김윤호 충북대병원 전공의 대표는 “’유보’는 중단이나 철회가 아닌 정치적 수사로 의사와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며 “’수도권 안정화 시’라는 조건도 정부가 (결국)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는 말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한편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22일 대국민 담화에서 “정부는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적인 임무라고 생각하고 코로나19 위기를 안정화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자 한다”며 “의사단체가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의과대학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에 대해서는 수도권의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된 이후 의료계와 논의를 하며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의사면허 취소 등 법적 대응을 고려하겠다던 정부가 코로나19 재확산 상황에서 의사인력 부족을 염려해 한 발 물러선 것이다.

"주인 잃은 가운들"(사진=배재현 건대병원 전공의 대표)
"주인 잃은 가운들"(사진=배재현 건대병원 전공의 대표)

하지만 대한의사협회는 '유보'가 아닌 ‘정책 철회’를 주장하고 있다.

최대집 의협 회장은 SNS 게시글에서 “코로나19 재확산 속 의사 총파업 사태는 전적으로 정부가 일으킨 것”이라며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한약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비대면 진료 육성 등 4개 의료 정책을 ‘철회’하면, 금일 중이라도 의협은 파업을 중단하고 즉각 진료 현장을 복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의협 역시 22일 보도자료를 통해 “보건복지부는 ‘수도권의 코로나19가 안정될 때까지’ 의대정원 확대 등의 정책 추진을 ‘유보’하겠다고 발표했다”며 “사실상 조속한 시일 내에 정책을 다시 추진할 것을 분명히 한 것으로 이해된다”고 말했다.

이어 의협은 “정부는 일관되게 정책 추진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다만 의료계의 반발이 심하니 잠시 숨을 고르겠다는 것”이라며 “정책추진 과정에서 의료계에 의견을 묻지 않은 실수를 겸허히 인정하고 정책추진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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