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앨리스, 그리고 의사
파업, 앨리스, 그리고 의사
  • 전성훈
  • 승인 2020.08.19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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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90)

 

전 성 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 법무법인(유한) 한별

파업! 비장함이 묻어나는 이 말만큼 극명한 시각차를 보이는 단어가 있을까. 노동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입장을 표현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다.

  파업이라는 사회적 행위는 근대 자본주의 형성 이후의 부산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파업은 ‘집단적 노동 제공’, ‘노동조건을 강요할 수 있는 수직관계’, ‘노동조건에 대한 불만’이라는 요소가 갖춰지는 경우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오래 전부터 발생해 왔다.

  기록에 남아 있는 역사상 최초의 파업은 3,200년 전, 고대 이집트의 람세스 3세 시절이다. 파라오의 장례용 신전을 짓던 인부들이 급료로 받는 빵의 배급이 늦어지자 ‘높으신 분’을 불러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신으로 여겨지던 파라오를 위한 건축사업 중에, 그것도 고대 이집트인들이 중요하게 여겼던 무덤 축조 중에 있었던 단체행동이니, 인부들은 파업을 하기는 했어도 조심스럽고 온건한 방식으로 하지 않았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인부들은 가족들을 전부 데리고 신전으로 쳐들어가 밤샘 농성을 벌였고, 심지어 일부는 ‘급료를 지불하지 않고 쫓아내면 파라오의 무덤을 도굴하겠다’는 신성모독 발언까지 할 정도였다. 그렇다.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느낀 노동자들의 마지막 집단적 의사표시인 파업이 온건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참고적으로, 인부들의 요구를 접한 람세스 3세가 밀린 급여의 지불을 약속하여 역사상 최초의 파업은 타협으로 잘 마무리되었다.

  노동과 관련한 법적 이슈가 다양하고 방대함에 비해, 그 중 파업과 관련한 법적 이슈는 비교적 단순하다. 파업한 노조나 여기에 참여한 노조원에 대하여 민형사상 면책을 허용하느냐 하는 것이다. 파업과 관련한 형사처벌이나 손해배상을 인정한다면 파업권 행사가 크게 위축되고, 그렇다면 노동3권이 유명무실해 지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우리나라는 파업과 관련한 형사처벌이나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사실상 유일한 나라에 해당한다. 다른 나라들은 어떤가? 형사상 면책은 거의 모든 나라가 인정한다. 민사상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것은 영국, 일본 정도뿐인데, 영국은 강경보수파인 대처 총리의 집권시절 ‘손해배상 면책 조항’을 삭제했지만, 그 대신에 ‘손해배상금 상한 조항’을 신설했다. 그 상한액은 조합원 5,000명 이하이면 1만 파운드(약 1,800만 원) 등이다. 그 자체로 아주 낮기도 하고, 물가가 오르므로 이 상한액을 상향할 법도 한데, 제정 이후 30여 년 동안 개정하지 않았다. 실제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사용자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도 파업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극히 드물다. 최고재판소 판례가 없을 정도로 말이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우리나라 법원은 ‘파업 목적이 적법해야 한다’는 법조항을 아주 엄격하게 해석한다. 즉 노동조건 개선 이외의 파업 목적에 대해 거의 대부분 ‘목적이 정당하지 않다’라고 본다. 그래서 이런 파업들을 ‘불법파업’으로 전제하고, 파업한 노동자들과 노조에 대한 업무방해죄와 손해배상을 인정한다. 전국 17개 사업장에 걸려 있는 손해배상청구액이 약 1,700억 원이라고 추정하는 몇 년 전 자료도 있다. 전국의 의료기관에 정부가 합계 1,700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있는 상황을 상상해 보라.

  이러한 우리나라의 파업 관련 입법과 법해석은 다른 나라들의 시각에서는 굉장히 이상한 것이다. 몇 년 전의 국제학술대회에서 각국의 교수들은 입을 모아 “한국의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이라면 법적 해결보다는 사회적 해법이 먼저 요구되는 것이 아닌가(독일 교수)”, “파업에 대해 노조와 노조원들이 연대책임을 진다고 했는데, 형사적인 책임을 단체로 부과하는 것이 가능한가(프랑스 교수)”, “파업 등 쟁의행위와 관련된 한국의 법체계가 너무 엄격한 것 같다(일본 교수)”고 지적하기도 했다. 적어도 파업에 관한 한, 우리는 모두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는 앨리스들이다.

  최근 의협은 ‘의료 4대악 정책’에 대한 정부의 입장 변화가 없을 경우 의료계가 전면파업할 것임을 경고했다. 의료계는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느끼고 마지막 집단적 의사표시에 나선 것이다. 그리고 전공의들은 이에 동참을 선언하고 24시간 동안 부분파업을 진행했다. 며칠 후로 예정되어 있는 전면파업에 대한 의료계의 인식과 참여도 사뭇 예전과 다르다. 개원가와 병원급을 막론하고 말이다.

  의료정책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 정치적인 것이다.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교육정책도, 조세정책도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의료정책에 대한 결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파라미터는 ‘여론’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여론은 의료계 편은 아닌 것 같다. ‘의료계 파업’으로 검색되는 2차 여론(기사)과 1차 여론(댓글)을 보면 말이다. 지긋지긋한 ‘밥그릇’ 프레임부터, 벌써부터 업무방해죄, 공정거래법위반 등 형사처벌을 거론하기도 한다. 그리고 정부는 이러한 여론을 등에 업고 그야말로 ‘밀어붙이고’ 있다.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정책들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것인지 알고 있는 의료계 입장에서는 이런 여론이 억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보자. 이번 의료계 파업 이전에 의사 개개인이 ‘현대자동차 노조에 대해 20억 원 손해배상 판결이 내려졌다’라는 기사에 대해 보인 반응은 어떠했을까? 소수의 ‘과하다’, 상당수의 ‘잘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무관심이었을 것 같다. 그리고 의료계는 지금 이런 여론을 그대로 돌려받고 있다.

  의료계를 나무라는 것이 전혀 아니다. 적어도 파업에 관한 한, 우리가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는 앨리스들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어둠 속의 빛이라도 해도, 플래쉬를 눈에 비추면 사람들이 피하고, 촛불을 들면 사람들이 따라온다. 이번 파업이 단행된다면 그 성패는 파업을 전후한 여론 형성과 출구 전략에 달려 있다. 비우호적인 여론이 확산되어 코로나-19 사태에서의 헌신으로 얻은 소중한 ‘촛불’을 꺼뜨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의료계의 모든 역량을 여론 형성에, 의료계 오피니언 리더들의 중지를 출구 전략에 쏟을 필요가 있다.

  그것이 앨리스들이 사는 이 이상한 나라에서 의료계가 파업에 성공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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