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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의료기기 성공 위해 기업과 병원 간 ‘통역사’ 역할할 것”
“국산 의료기기 성공 위해 기업과 병원 간 ‘통역사’ 역할할 것”
  • 배준열 기자
  • 승인 2020.07.30 12: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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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윤승주 고려대 안암병원 의료플랫폼상생센터장
국책사업 후 공식 조직 출범, 아이디어부터 개발·유통까지 ‘원스톱’ 지원
출범 후 6년간 병원·기업 간 아이디어 교류 297건, 출시제품 20개 달해
시제품 제작 위해 청계천 장인과도 교류, 의료기기 클러스터 조성이 꿈

“의료기기를 생산하는 기업과 수요자인 병원 간의 원활한 소통을 도와주는 '통역사' 역할을 맡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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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케어산업이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부상하며 국내에서도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이미 미국과 유럽 등 전통의 강호들이 선점하고 있는 헬스케어시장에 상대적으로 영세한 국내 업체가 진출해서 성공을 거두기란 결코 쉽지 않다. 여전히 세계 시장은 물론 국내에서조차 국산 의료기기를 찾아보기 힘든 이유다. 

무엇보다 헬스케어 기기가 성공을 거두려면 사용자 입장에서 사용이 편리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국산 의료기기는 사용자 중심이 아닌, 개발자 위주로 개발되다 보니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로 탄생했다고 하더라도 막상 사용자인 의사가 쓰기에는 불편해 시장에서 금세 퇴출되곤 한다.

어떻게 하면 의사들이 사용하기 쉬운 국산 의료기기를 만들어 시장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 직접 의료기기 산업 현장에 뛰어든 병원이  있다.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의 의료플랫폼상생센터다. 센터는 그동안 의료기기 개발자들에게 높기만 했던 병원의 문턱을 낮추는 데에 그치지 않고 이들과 긴밀히 소통하며 의료기기 아이디어 개발부터 사업화까지 원스톱으로 지원하고 있다.

의료기기 업체와 병원 간 협업이 원활히 이뤄지기 위해선 무엇보다 ‘소통’이 중요하다. 둘 사이에서 통역사 역할을 자처하는 윤승주 센터장<사진, 마취통증의학과>은 최근 의사신문과 만나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뒤처져있는 의료기기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청사진에 대해 설명했다.

의료플랫폼상생센터는 지난 2014년 9월 ‘의료기기상생사업단’으로 출범 후 2019년 8월까지 산업통상자원부 과제의 의료기기 오픈 플랫폼 국책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제4회 의료기기산업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후 2019년 9월에는 고려대 안암병원의 공식 조직으로 재출범하여 의료기기 개발 이전 단계부터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사용자 중심으로 제품을 개발해 시장에서 유통까지 이뤄질 수 있도록 ‘원스톱 지원’에 주력하고 있다.

의료플랫폼상생센터가 지난 6년간 진행한 공동연구계약은 29건, 기업과 의료진이 아이디어를 교류한 횟수는 297건에 달한다. 플랫폼을 기반으로 일선 기업과 진행한 기술교류 회의 횟수는 800회를 넘고 지금까지 센터를 방문한 방문자만 700명을 넘는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시장에 출시된 제품만 지금까지 20개에 달한다. 고대병원과 기업이 함께 개발해 분당서울대병원과 은평성모병원, 제주대병원 등 다른 대형병원들도 수주한 ‘완료의료영상익명화 PACS 시스템’, 4차례나 대형테스트를 통해 고대병원이 10기를 선도구매하여 VIP병동에서 사용 중인 ‘자동수액조절세트’, 병원과 기업이 아이디어발굴부터 함께하여 기술이전까지 완료해 현재는 식약처 임상 허가가 진행 중인 ‘다중질환 치과 파노라마 영상자동진단기기’, 식약처 허가용 임상연구 승인을 완료한 ‘고주파 관절염 치료기기’, 병원이 IT기업과 협력해 개발부터 사업화까지 약 1년 6개월이 소요된 ‘병원진료예약 챗봇 서비스’ 등이 대표적이다.

사실 6년 전 고대 안암병원에 의료플랫폼센터가 처음 설립될 당시만 해도 기업의 의료기기 개발을 위한 임상시험을 도와 식약처 인증까지만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윤승주 센터장은 “막상 사업을 진행해 보니 인증 이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며 “개발자와 사용자가 협업해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로 기기가 탄생했다 하더라도 결국 시장에 유통이 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즉, 의료기기를 개발·공급만 하는 게 아니라 정확히 어디에 팔 것인지 타겟팅을 해서 정밀한 유통망까지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최근 센터가 국내 거점 의료기기 유통기업 총판 10곳과 협약을 체결해 국내 유통 네트워크를 구축한 것도 이 같은 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를 통해 상급종합병원 21곳을 포함해 총 139개 병원에 제품 공급이 가능한 유통망을 확보했다.

이에 더해 해외 판매 네트워크도 조직했다. 중국정대병원 건진센터와 이전 MOU(양해각서)를 체결하는 등 해외 병원과 직접 협력을 체결해 국산 의료기기의 해외진출 교두보를 마련했다. 병원이 직접 외국 정부기관과 협력을 맺는 전략도 펼치고 있다. 중국 광동성 과학학·과기관리연구회, 우즈베키스탄 보건혁신위원회 등과도 MOU를 체결했다.

또한 글로벌 다국적 기업과 협력에 나서 기술이 개발된 제품의 독점 라이센스를 바탕으로 판매망을 구축했다. 최근 의료장비 및 산업안전장비 솔루션 글로벌 기업인 드레가의 한국법인인 한국드레가와 협약을 체결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밖에 해외 현지 유통기업과의 협력도 꾸준히 강화해 나가고 있다.

본격적인 제품 개발에 앞서 효율적이고 전문적인 시제품 제작을 지원하기도 한다. 다수의 기업들과 막상 같이 일을 해보니 제품을 대량생산하기에 앞서 시제품 제작이 너무나 중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공학·디자인·정밀가공·소프트웨어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초빙해 시제품제작위원회를 구성하고 센터 내에는 시제품 전시장까지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윤 센터장이 직접 청계천의 ‘장인’들을 만나 교류하고 있다.

윤 센터장은 “사실 공학박사들은 대량생산에 대한 개념이 없어 막상 제품을 개발해도 크기가 너무 커서 수술실에 놓기 어렵거나 고주파를 한번 쏘면 다 타버려서 없어져 버리는 등 당장 쓰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며 “그래서 청계천의 공구상들과 수시로 만나 논의하며 의료진이 당장 쓰기 좋게 직관적으로 만들어진 시제품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모든 과정에는 핵심인력들이 투입돼 있다. 신약개발플랫폼, 비임상시험, 임상시험, 의료기기 하드웨어(HW), 의료기기 소프트웨어(SW), 기술사업화 부문에 각각 관련 박사학위(PhD)를 가진 전문가를 지정해 기업이 기술을 설명하면 이를 의사들에게 친숙한 용어로 해석해 의료 현장에서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반대로 병원 측에서 아이디어를 제공하면 이를 기업이 기술 사업화하는 선순환도 이루어지고 있다.

윤 센터장은 장기적으로 의료기기 전문 생산단지를 조성한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 주체는 국가가 아니라 국내에서는 최초로 민간이 주도하는 첨단산업 클러스터를 완성하는 것이 목표로 이를 위해 지자체를 비롯해 다양한 관계자를 접촉하고 있다. 미국의 해군기지 도시였다가 세계적인 바이오 클러스터로 변신한 ‘샌디에이고 커넥트’가 롤 모델이다. 이는 민간 비영리 조직들이 커넥트를 형성해 스타트업들을 키우는 데서 시작해 점차 투자자들이 관심을 가지면서 나중엔 ‘화이자’와 같은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까지 이끌어낸 케이스다.

윤 센터장은 “사실 의료기기 개발을 제대로 하려면 최소 10~15년의 투자는 필요한데, 국내 투자자들은 IT 산업 생리에 익숙한 한계를 넘지 못해 2년 이내에 (낼 수 있는)성과에 급급하고 있다. 더해 의료기기에 인색한 정부의 낮은 수가도 개발 동력을 저하시키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라며 “이런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샌디에이고 커넥트’처럼 의약품, 의료기기 스타트업들의 핵심 인프라를 집적해 이들이 직접 기술-시장-투자를 주도하는 산업 생태계를 구축해 전국으로 확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은 적극적으로 요청한다는 입장이다. 우선 윤승주 센터장은 “의료기기 업체는 제약 기업처럼 GMP(Good Manufacturing Practice/우수 의약품 제조·관리 기준)가 없어서 생산에 차질이 발생하고 있는데, 이럴 때 어디까지나 민간이 주도하되 정부가 공용 GMP시설을 구축해 줄 것을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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