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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사 8월호 낭만닥터 인터뷰(김기준 신촌세브란스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
서울의사 8월호 낭만닥터 인터뷰(김기준 신촌세브란스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
  • 의사신문
  • 승인 2020.07.23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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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과 감동을 전하는 시인이 되고 싶습니다”

초여름에 부는 바람처럼 위로와 공감을 전하는 의사, 초하(初夏) 김기준 교수를 만났다. 2016년 서울시인협회 <월간 시>로 등단한 김 교수는 2018년 <월간 시> 제정 ‘올해의 신인상-대상’과 2019년 ‘아시아신인상-해외신인상’을 받으며 시 쓰는 의사 김기준으로서 도약을 내디뎠다. 집필 활동 외 스쿠버다이빙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며 ‘자연 생태를 보호하는 시인’으로 알려졌다. 마취통증의학계의 저명한 의사인 김 교수는 수술을 앞둔 환자의 시작과 끝 최전방을 지킨다. 병원에서 느끼는 생명에 대한 연민을 고스란히 시로 담아내 위로를 건네는 그다. 한 편의 시 같은 인생을 살고 싶다는 김 교수와 이야기 나눴다.  

초여름의 바람이 선선하게 불던 어느 날 김기준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분주하고 바쁜 병원 분위기 속에서도 미소를 머금은 김 교수의 얼굴은 백 마디 말보다 큰 환대로 다가왔다. 시원한 냉수를 건네며 최근 일상에 대해 입을 떼는 그다. 

“주로 병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틈틈이 집필 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월간 시>에 매월 글을 기고하고 있는데 그동안 기고했던 글을 책으로 묶어 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주된 하루 일과는 새벽 3시에 일어나 간단히 명상 및 운동 시간을 갖은 후, 시 낭송 및 시 쓰기를 하고 있으며, 6시쯤 병원에 와서 중국어 공부를 합니다. 이후 병원 진료를 보고 있습니다. 이외에 시와 글쓰기 공부를 하고, 스쿠버다이빙 소식을 담은 페이스북 활동도 하며 평범한 일상을 지내고 있습니다. (웃음)”

책장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김 교수의 책장을 보면 그가 가진 활력과 즐거움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가히 짐작이 된다. 의학전문 서적부터 시작해 각종 문학, 바다, 자연 등 그 종류가 다양하게 채워져 있다. 배움의 즐거움은 누구도 뺏을 수 없는 그만의 안식처다. 신이 허락한 24시간을 조금도 허투루 쓰지 않는 그다. 의사, 시인, 다이버 등 다양한 역할 속에서도 어느 하나 놓치지 않으며, 그 일을 기쁘고 충실하게 해낸다. 그를 매료시킨 시와의 만남을 물었다. 

“어린 시절부터 자연과 문학을 좋아했습니다. 중학교 때 국어 선생님께서 저를 보시고 초하(初夏)라고 불러주셨는데, 저의 눈동자가 ‘초여름에 부는 바람’ 같다며 말씀해주신 것이 기억이 납니다. 지금 저의 호(號)로 사용되고 있죠. 피해갈 수 없는 마치 운명처럼 강한 끌림으로 시를 쓰게 됐습니다. 정말 감사한 기회로 등단해 시인이 됐습니다. 저의 인생에서 모든 순간마다 시와 자연은 늘 큰 위로와 안식처가 돼 줬습니다. 시인이 된 지금은 환자와 사람들에게 공감과 감동을 주는 것이 저의 소명이라고 느껴집니다.”
경상남도 김해에서 태어난 바다 소년 김 교수는 어린 시절부터 자연과 사물, 삶에 대한 남다른 감수성을 지니고 자랐다. 바다와 시를 사랑한 그는 마음 깊숙이 ‘선장’과 ‘시인’의 꿈을 놓치지 않았다. 오랜 세월이 흘러 2016년 시인으로서 이름을 올렸다. 시인으로서 첫걸음을 떼기도 전에 각종 수상식에 이름을 올리며 많은 관심 속에 강렬한 신고식을 치렀다.

“수상 이야기는 참 쑥스럽습니다. 감사한 일이죠. 시인이 된다는 것은 늘 꿈꾸고 동경해 온 일입니다. 선배이신 윤동주 시인부터 김소월 시인을 떠올리면, 때로는 시인된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이 컸습니다. 시와 시인은 운명이라는 말이 있듯이 시인으로서 삶을 반듯이 살아내고자 날마다 마음을 되새겼던 것이 떠오릅니다. 처음 시를 쓴 것은 병원에서 만난 환자 덕분입니다. 척추 마취를 앞둔 임산부와 수술 전에 만난 날이 생생히 기억납니다. 수술을 앞두고 긴장감과 초조함이 역력했던 환자의 손을 잡아주며 짧은 기도를 건넸죠. 작은 농담을 건네기도 하고요.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그 이후였을까요. 환자가 다시 저를 찾아와 감사의 인사와 함께 초유로 만든 비누를 건네줬습니다. 당시 제가 손에 알레르기가 있었는데, 그것을 기억하고 준비한 선물이라더군요. 산모가 남기고 간 선물과 그 마음 때문이었을까요.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북받친 감동을 시로 담아냈습니다. 그 시가 바로 <비누 두 장>입니다.”

김 교수에게 시는 공자의 사무사(思無邪)와 같다. ‘생각이 바르므로 사악함이 없음’의 그 의미처럼 무뎌지고 단단히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만드는 것이 그가 믿는 ‘시’의 힘이다. 그에게 시는 삶의 일부가 아닌 삶의 중심에서 큰 원동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 환자의 곁 가까이에서 생사의 순간을 마주하는 그는 생명에 대한 연민과 공감이 관념이 되지 않도록 날마다 마음의 굳은살을 떼어낸다. ‘인생은 시 한 편이 돼야 한다’라고 말하며 공감과 감성을 잃지 않기로 날마다 자신과 약속한다. 

배움의 즐거움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김 교수에게 지치고 지루한 일상마저도 시가 되며 즐거운 놀이가 된다. 의사와 시인, 병원과 집필 활동으로도 충분히 바쁠 그가 스쿠버다이빙에도 잔뼈가 굵은 20년 베테랑이라는 것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20년 전 팰로우 시절이었을까요. (웃음) 마취제가 쥐 심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하던 중 바다 속 압력에 의한 ‘질소 마취’를 알게 됐습니다. 그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산토리니 바다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이 스쿠버다이빙과의 첫 시작입니다. 이후에 미국수중지도자협회 스쿠버다이빙 강사 자격증과 해군해난구조대(SSU)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게 됐습니다.”

바다 세계와 그 속에 사는 생물들을 마주할 때면 물질보다 정신, 영혼, 사랑 등 근원적인 질문 앞에서 깊은 깨달음과 고요함을 느낀다는 그다. 캄캄한 밤중 잠수는 그가 빼놓지 않고 즐기는 시간이다. 오롯이 바다 깊은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나 자신과 만남이 그가 말하는 스쿠버다이빙의 매력이고, 스쿠버다이빙은 곧 ‘자기 존재에 대한 탐구’라며 괄호를 닫는 김 교수다. 바닷속에서 느낀 것을 시로 옮기는 것 또한 빼놓지 않는다. 김 교수의 바다 이야기를 듣노라면 바닷속에 들어온 듯이 당시 생생함이 가득하다. 무섭진 않느냐는 질문에 바다의 전갈로 불리는 스콜리온피시에게 찔릴뻔한 일화를 꺼내며 천진난만하게 웃는 그다. 바다와 시를 사랑하는 김 교수는 시를 통해 바다 환경 보호를 위한 메시지를 전하는 ‘자연 생태 보호 시인’으로 불리고 있다. 

일상과 취미의 균형을 잃지 않고 의사, 시, 스쿠버다이빙 모두를 거뜬히 해내는 김 교수를 보며 모두 감탄을 숨기지 못한다. 일을 하면서 취미에 몰입하는 게 쉽지 않기에 평소 시간과 자기 관리에 최선을 다하는 김 교수다. 중요하지 않은 일을 접고, 산책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꾸준한 메모 습관과 새벽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 그만의 노하우다. 다양한 취미와 자기계발이 의사들에게 필요한 이유와 긍정적인 경험이 무엇인지 물었다. 

“자기를 돌보는 것은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고독할 수 있는 권리와 온전히 자신만의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유를 갖는 것이 중요하죠. 병원의 하루는 숨 가쁘게 흘러갑니다. 빠르고 치열한 현장 중 하나인데, 그렇기에 자기 내면을 돌아보는 일이 꼭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의사이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가수 김민기의 <봉우리>라는 노래를 참 좋아하는데요. 모두가 봉우리 정상만을 바라보며 살아가죠. 그러나 인생은 단지 봉우리에 올라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굽이굽이 고개를 지나는 일이며, 그렇게 다시 바다로 간다는 노래 가사처럼 인생을 바라본다면 모든 것이 쉬워집니다. 일상에서 사소한 감동을 받는 것이 그 시작이죠. 가장 쉬운 방법이 ‘시’라고 생각합니다.”

김 교수는 빠르게 흘러가는 현대인들의 삶과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끼며 공감한다. 삶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하는 시를 쓰고 싶다. 그래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대사처럼 ‘의술, 법률, 사업, 기술이 모두 고귀한 일이고 생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이지만, 시, 아름다움, 낭만, 사랑… 이런 것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이 돼야 한다’고 거듭 입을 뗀다. 중년의 숙제 앞에 있는 김 교수는 ‘고종명(考終命)’ 후회 없는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준비한다. 한 편의 시가 되는 인생을 살자고 독려하고, 또 삶으로 본이 되는 그다. 

“여전히 새롭게 도전하고 이루고 싶은 꿈들이 있습니다. 시나리오 공부를 시작했고, 10년 후에는 시나리오 작가로 미디어 매체를 통해 공감과 위로를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웃음) 앞으로도 열정적으로 살면서 제게 주어진 의사로서의 소명을 다하며, 환자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전하는 일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습니다. 지식이 아닌 지성으로, 배움과 실천을 이루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순수함을 잃지 않고 최선과 성실의 기쁨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김 교수의 곁은 늘 위로와 공감의 힘이 있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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