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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 진단에 AI 도입해 '골든타임' 잡는다
발달장애 진단에 AI 도입해 '골든타임' 잡는다
  • 권민지 기자
  • 승인 2020.07.22 09: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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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인향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f-MRI 데이터로 발달장애 진단하는 인공지능 기술 개발

“아이가 말이 많이 느려요. 자폐일까 무슨 문제가 있을까 너무 걱정되구요. 검사라도 해야된다는데 용기가 안 나네요.”(45개월 여아를 둔 A씨)

“곧 네 돌인데 이번 년까지 말이 안 되면 무슨 검사를 해야할지, 자폐인 건 아닌지 아직 용기가 없어 적극적으로 찾아보지 못하겠어요.”(47개월 남아를 둔 B씨)

“놀이 언어 선생님이 절대 자폐는 아니라고 좋아질 거라고 했는데 병원에서 ‘경증 자폐 같다, 검사 받아보자’ 하시네요. 병원 예약하고 1년 뒤 진료 받은 건데 또 1년 뒤에 검사 받으라니까 골든타임을 놓칠 것만 같네요.”(41개월 여아를 둔 C씨)

온라인 맘카페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글들이다. 아이가 발달 장애 증상을 보여도 대부분의 부모들은 ‘발달장애 아동’에 대한 선입견이 두려워 선뜻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지 못한다. 병원 예약을 해도 진단을 받기까지 수 개월에서 1년 넘게 기다려야 하는 것이 현실인 상황. 그러다보면 ‘만 3세 이전’이라는 발달장애 골든타임을 놓치게 된다.

김인향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사진=한양대병원 홍보팀)
김인향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사진=한양대병원 홍보팀)

김인향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더 많은 발달장애 아동들이 조기에 진단받고 치료받을 수 있도록 발달장애인을 진단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기술을 연구 중이다. 기존에 전문가 면담과 행동 관찰을 통해 길게는 이틀에 걸쳐 진단이 필요했다면 의심 환자의 f-MRI(기능성 자기공명영상) 데이터를 인공지능이 분석해 진단 시간을 단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21일 한양대병원에서 김 교수를 만나 이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인공지능이 발달장애를 진단하는 과정은 어떻게 진행는지 설명해달라. 

“우선 환자는 20-30분 동안 MRI 촬영을 한다. 발달장애 진단을 위해서는 단순히 뇌의 구조를 보는 것보다 얼마나 기능을 잘하는지 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DTI나 T1 같은 MRI보다 f-MRI를 이용한다. 촬영한 MRI 데이터를 통해 뇌의 연결성을 본다. 뇌는 동시에 여러 부분이 작동하면 기능적으로 연결돼 있다고 보는데, 기능적으로 연결된 수천 가지의 연결성이 나온다. 소프트웨어를 돌려서 이 연결성을 추출한다. 환자의 연결성을 보고 발달장애인에 가까운지 비장애인에 가까운지 결과를 도출해낸다.” 

-기존의 발달장애 진단에 비해 장점은 무엇인가.

“짧은 시간에 객관적으로 진단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기존 진단 방식으로는 그날 아이 컨디션, 보호자와 얘기를 나누는 내용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길게는 이틀에 걸쳐 4시간에서 8시간씩 검사를 하니까 아이도 많이 지친다. 인공지능이 객관적인 데이터로 진단하므로 주관성이 덜 개입되는 장점도 있다. 임상시험으로 검증되고 보험 수가 체계 안으로 들어온다면 적은 비용으로 쉽게 진단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된다.”

-연구는 얼마나 진행됐나.

“올해가 연구를 시작한지 2차년도다. 아직 제품이 나와 있는 상태는 아니다. 필요한 뇌 파인딩을 정리하고, 인공지능과 MRI를 함께 다룰 줄 아는 전문가를 섭외해서 데이터를 분석하는 중이다. 정신건강의학 특성상 다른 분야보다 인공지능 도입이 까다로운 측면도 있다. CT의 경우 병변의 유무만 육안으로 확인하는 것이 가능한데 MRI는 환자와 비장애인의 결과를 쉽게 구분하기 어렵다. 뇌 연결성, 뇌 부피 등을 뽑아내는 단계를 거쳐야 MRI로 환자와 비장애인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다. 앞으로 3, 4차년도 연구기간이 남아 있는데 그때에는 개발한 것을 바탕으로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연구 개발을 통해 기대하는 효과는 어떤 것인가. 

“더 많은 환자들이 빨리 진단 받게 되는 것이다. 국내 조기 진단율이 매우 낮은 상황이다. 발달장애의 경우 골든 타임을 만 3세 이전, 해외에선 12개월 정도로 본다. 3세 이전에 진단해서 치료해야 치료효과가 가장 좋다. 하지만 보통 ‘언어가 좀 느린 것뿐’이라고 생각하다 초등학교 들어갈 때쯤 뒤늦게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선입견 때문에 조기 진단을 꺼리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지난 2017년 국립특수교육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부모 등이 자폐 증상을 인지한 지 3년이 지난 뒤에야 의사의 진단을 받는 경우가 전체의 3분의 1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이를 기준으로 평균 6세가 돼서야 진단을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조기 진단, 조기 치료가 특히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발달 장애는 성인이 돼서는 치료하기 어렵나?

“뇌의 가소성(뇌세포 일부분이 죽더라도 재활치료로 그 기능을 다른 뇌신경망이 대신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때문이다. 뇌의 가소성은 초등학교 이후부터는 떨어지게 된다. 가소성이 거의 떨어진 상태에서 치료를 해도 되돌리기 힘든 것이다. 발달의 측면에서 조기 진단이 특히 중요한 이유다.”

-‘발달장애 진단 인공지능’ 개발과 상용화 이후의 청사진을 듣고 싶다. 

“진단 다음은 치료일 것이다. 발달 장애인들의 증상에 따라 어떤 치료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없는 상황이다. 소수의 전문가 이외에는 어떤 치료가 필요한지 제대로 답변할 선생님이 없다. 발달장애 아동들도 아이들마다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똑같은 치료를 할 수도 없다. 기존의 여러 병원들에서 이뤄지고 있는 치료 가이드라인과 인공지능 시스템, EMR(전자의무기록)을 통합해서 AI를 돌려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도 생각 중이다.”

-본격적인 조사에 앞서 발달장애를 조기에 진단할 수 있는 자가진단법이 있을까?

“눈맞춤과 호명 반응이다. 아이가 눈을 잘 맞추는지, 이름을 불렀을 때 돌아보는지를 확인해볼 수 있다. 발달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고 더 많은 친구들이 빨리 진단 받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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