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환자, 나쁜 환자, 이상한 환자
좋은 환자, 나쁜 환자, 이상한 환자
  • 의사신문
  • 승인 2020.07.21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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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87)
전 성 훈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 성 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 법무법인(유한) 한별

‘두만강아 잘 있거라’라는 영화를 아시는가? 유치한 제목을 보고 저 북쪽의 선전영화인가 오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무려 거장 임권택의 감독 데뷔작이다.

29세 청년감독의 데뷔작이었음에도 이 영화는 1962년 개봉 당시 큰 화제를 끌었다. 황해, 문정숙, 허장강 등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출연한 항일영화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미국산 서부극이 유행하던 시기에 제작된 최초의 블록버스터 국산 서부극이었기 때문이다.

흔히 ‘만주 웨스턴’이라고 불리는 국산 서부극 영화들은, 1960년대 나름의 장르를 형성한 후 높아지는 관객들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해 1970년대 후반 사실상 퇴출되었다. 그러다가 30년 후인 2008년 걸출한 수작을 낳았는데, 이 영화가 바로 ‘놈놈놈’, 즉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다.

만주를 배경으로 보물이 표시된 지도를 사이에 놓고 쫓고 쫓기는 3명의 총잡이(정우성, 이병헌, 송강호)를 그린 이 영화는,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1966년작 마카로니 웨스턴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석양의 무법자”)”의 세련된 리메이크작이다. 필자가 변호사로서 돕게 되는 의뢰인을 좋은 의뢰인, 나쁜 의뢰인, 이상한 의뢰인으로 (마음속으로만) 나름의 분류를 하는 습관은, 아마 이 영화를 본 후에 생겼을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의뢰인은 좋은 의뢰인이다. 좋은 의뢰인이 어떤 것이냐고 묻는다면, 사건 진행에 협력적이고, 전문가의 조언을 존중하되 숙고하고 스스로 결정을 내리며, 최선을 다했을 경우에도 100% 마음에 드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음을 이해하고 있는 의뢰인이라 하겠다. 나쁜 의뢰인은? 정확히 반대인데, 사건 진행에 비협력적이고, 전문가의 조언을 경시하면서도 중요한 결정을 대신 내려달라고 하며,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변호사 탓을 하는 의뢰인이다.

그러면 이상한 의뢰인은? 나쁜 의뢰인의 요소 중 전부/일부에 ‘고집’이나 ‘예측불가능성’을 더한 의뢰인이다. 이상한 의뢰인은 전문가의 의견을 경시하면서 자신만의 기준(속칭 “뇌피셜”)을 고집하거나, 예측불가능한 의사결정을 내린다. 판사나 검사는 상식인이므로 이러한 경우 대부분 결과가 좋지 않은데, 이 좋지 않은 결과를 변호사 탓으로 돌린다. 이런 이상한 의뢰인은 변호사로서 조력하기가 매우, 매우 힘들다. 어찌 보면 ‘가장 나쁜 의뢰인’이다.

생각해 보면 환자도 좋은 환자, 나쁜 환자, 이상한 환자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의사의 진료에 협력적이고, 전문가의 조언을 존중하며, 최선을 다한 진료에도 불구하고 증상이 개선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이해하고 있는 환자라면, 좋은 환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반대라면 나쁜 환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

가끔씩은 ‘이상한 환자’도 있다. 이 환자들은 검증된 의료상식을 거부한 채 자신만의 기준을 고집하면서 의료과실을 주장하거나, 진료 당시 의사의 설명을 이해하고 스스로 결정했음에도 예후가 만족스럽지 않다면 의사의 탓으로 돌리는 예측불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번 글에서는 법원이 ‘이상한 환자’임을 인정한 민사 사건, 형사 사건을 한 가지씩 살펴보겠다. 우연이겠으나, 모두 응급환자와 관련된 사례이다.

먼저 민사 사건이다. 환자 A는 직장 문제와 애정 문제로 고민하다 자신의 차 안에서 수면제인 Doxylamine 150알을 먹고 자살을 시도했다. 2시간 후쯤 발견된 A는 즉시 B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었다.

당시 A는 호흡곤란, 횡문근융해증, 간부전, 경련으로 생명이 위독한 상태였다. B병원은 위세척을 하기 위해 A에게 위장관 튜브삽입을 시도했는데, A가 병상에서 심하게 몸부림을 쳐서 튜브삽입을 못하게 되자 의료진 7명이 달려들어 A의 팔, 어깨 등을 잡고 A에게 억제대를 설치했다. 그리고 B병원은 진정제를 2회 투여한 후 50분만에 겨우 위세척을 마치고 억제대를 제거했다.

다음날 새벽 A가 우측 어깨에 통증을 호소하여 엑스레이 촬영을 해보니, 우측 상완골두 골절상을 입은 상태였다.

A는 B병원의 응급조치로 생명을 건지고 퇴원했다. 그런데 A는 ‘B병원은 위세척 과정에서 환자가 부상을 입지 않도록 할 주의의무가 있는데 이를 게을리하여 어깨 골절상을 입게 했다’고 의료과실을 주장하면서 B병원에 1억 3,5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하지만 법원은 ‘목숨이 중하지 뼈가 중하냐? 의료과실 없고, 인과관계도 없다’라면서 원고의 청구를 깔끔하게 기각했다.

이번엔 형사 사건이다. 환자 C는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에 방문하여 진료받던 중 의료진에게 욕설을 하며 소란을 피우고, 채혈 중인 간호사에게 팔을 휘두르며 막무가내로 주사기를 빼라고 요구하여, 응급의료법위반으로 벌금 3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그러자 C는 정식재판을 청구했고, 똑같은 판결을 받았다. 다시 항소했으나 항소도 기각되었다.

이에 C는 대법원에 상고하면서 동시에 처벌근거인 응급의료법 조항이 위헌이라면서 위헌법률심판제청까지 신청했는데, 대법원은 상고와 신청을 모두 기각했다. 그러자 C는 다시 헌법재판소에 위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지만, 헌법재판소 역시 이를 기각했다.

이렇게 응급진료 중 난동을 부린 C를 겨우 벌금 300만 원으로 처벌하는데 5번의 사법기관의 판단과 4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되었다. 심지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서는 법에 따라 국선변호인/국선대리인까지 지정되었다. 비용은 당연히 국가가 냈다.

의사의 잘못이 의심될 때 절차를 거쳐 법원의 판단을 구하는 것은 국민의 기본권의 행사로서 문제 삼을 수 없다. 하지만 법만으로 세상이 돌아가는 살풍경한 상황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법에 호소하기 이전에 ‘상식’이란 것을 서로에게 기대한다.

위 두 환자들은 자신의 청구가 상식에 반한다는 것을 스스로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법원이 ‘이상한 환자’로 인정하기 이전에도 말이다.

필자는 일은 피하지 않지만 ‘이상한 의뢰인’만큼은 피하고 싶다. 의사는 진료를 거부하기 어려우므로 피하기가 더 힘들 것이지만, 그럼에도 이 글을 읽는 의사분들이 오늘 하루 ‘이상한 환자’만큼은 만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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