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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급차 막아선 택시기사, 엄벌만이 능사일까
구급차 막아선 택시기사, 엄벌만이 능사일까
  • 권민지 기자
  • 승인 2020.07.08 17:5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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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촉사고 낸 구급차 막아선 택시기사 “처벌해달라” 국민청원에 63만명 이상 동의
국회, 처벌강화법안 발의···의료계 “처벌도 중요하지만, 구급차 건보지원 등이 대안”

“응급구조사 있어 없어, 여기에? 환자가 급한 거 아니잖아, 지금. 지금 요양병원 가는 거죠?”

택시기사가 접촉사고를 낸 사설 구급차를 막아서는 바람에 구급차에 타고 있던 환자가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택시기사를 엄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3일 게시된 해당 택시기사를 처벌해 달라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8일 현재 60만명 이상이 동의했다. 국회에서는 이같은 여론에 편승해 구급차의 이송행위를 방해할 경우 이를 처벌하는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이번 사건의 또다른 핵심이 사설 구급차에 대한 불신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환자가 타고 있음에도 무리하게 구급차를 막아선 택시기사의 잘못이 가장 크지만, 택시기사가 그같은 행동을 하게 된 저변에는 사설 구급차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구조사나 의료진 없이 운행되는 소위 ‘깡통 구급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응급의료 서비스의 질 제고를 위한 지원이 바탕이 돼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지난달 8일 사고 당시 구급차량 블랙방스 영상.(사진=유튜브 캡처)
지난달 8일 사고 당시 구급차량 블랙박스 영상(사진=유튜브 캡처)

◆접촉사고로 10여분 실랑이, 뒤늦게 이송된 환자 사망···국민적 공분에 법개정안 발의 

이번 사건은 지난달 8일 폐암 4기 환자인 A씨(79·여)가 호흡곤란 증상을 일으켜 사설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구급차가 차선을 변경하다 택시와 가벼운 접촉사고를 일으킨 것이 발단이 됐다.  

구급차 기사는 “가벼운 접촉사고이니 응급환자가 위독한 상황이어서 병원에 빨리 모셔다드리고 얘기를 하자”고 말했지만, 택시 기사가 이를 막아섰고, 10여분 간 실랑이 끝에 A씨는 결국 택시 기사가 부른 119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후 5시간만에 사망했다.

실랑이 과정에서 택시기사는 “저 환자 죽으면 내가 책임을 진다”며 “여기에 응급환자도 없는데 일부러 사이렌 켜고 빨리 가려고 하는 거 아니냐”고 따져 물으며 구급차 뒷문을 열고 사진을 찍기도 한 것으로 나타났다. 

A씨의 보호자 B씨는 이같은 과정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리면서 “(택시 기사의) 경찰 처벌을 기다리고 있지만 죄목은 업무방해죄밖에 없다고 한다”며 “가벼운 처벌만 받고 풀려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무너질 것만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문제의 택시기사에 대해 형사법상 업무방해죄 혐의를 적용할 수는 있지만, 구급차 등 긴급용무 중인 자동차의 이동을 막을 경우 과태료 처분(20만원 이하)이 내려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해당 청원에 8일까지 63만명 이상이 동의하며 국민적 공분이 확산하자 정치권은 곧바로 화답했다. 김승수 미래통합당 의원은 구급차의 이송을 방해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응급의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처벌이 능사 아냐, 사설구급차 문제 논의해야 

의료계는 당장 구급차 이송을 방해한 데 대해 처벌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기회에 사설 구급차 문제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경원 대한응급의료지도의사협의회 이사장(강동경희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은 “현행법상 사설 구급차에도 응급구조사가 탑승해야할 의무가 있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며 "택시 기사도 그걸 따져 물은 것이다. 당시에 구조사가 있었다면 응급상황이라는 사실을 믿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경원 이사장에 따르면 현재 사설 구급차 업체가 구조사를 등록만 하고 현장에 동승하지 않는 경우, 지방자치단체의 집중 감사 시기에만 구조사를 채용했다가 해고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2개 업체가 한 명의 구조사를 고용한 것처럼 '유령지도사'를 등록해놓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실제로 2016년 보건복지부가 전국 민간이송업체 91곳을 현장 점검한 결과, 응급구조사 없이 구급차를 운행한 경우가 17.6%(16곳)를 차지한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구급차에 대한 건보 지원 필요···응급의료법 개정은 환영하나 좀더 다듬어야 

현재 국내에서 운영되는 구급차는 유형별로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2급 구조사가 탑승하는 △BLS(basic life support), 1급 구조사(혹은 간호사)가 타고 구급차 등급이 특수 1급 이상인 △ALS(advanced life support), 마지막으로 의사와 간호사가 함께 탑승하는 △CCT(Critical care transit)로 구분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이들 구급차 운영에 대해 별다른 재정적인 지원이 없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CCT 등에 대해 건강보험에서 지원하도록 하는 것도 구급차 운영의 질을 높이는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경원 이사장은 “지방자치단체, 보건복지부 공무원들이 열심히 관리·감독해도 법의 빈틈을 파고들어 운영하기 때문에 기존 방식으로는 이미 한계”라며 “CCT를 건강보험 항목에 포함하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고벽성 한양대학교 응급의학과 교수도 “병원 간 이송 과정에서 주로 활용되는 사설 구급차는 소방에서 관리하는 119 구급차보다 관리가 잘 안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시스템이 투명화될 필요 있고 더욱 관리할 필요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 국회에서 발의한 응급의료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의료계에서도 ‘불행 중 다행’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고벽성 교수는 "언제나 최악의 상황까지 고려해야하는 응급 상황에 '요양병원 가는 거냐'며 이송을 막은 것은 명백히 잘못"이라며 "의사도 아니고 중환자를 판단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택시 기사의 판단은 용납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자칫 사설 구급차가 사이렌만 울리면 '무소불위'가 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선 법률을 좀더 정교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경원 이사장은 “단순히 ‘구급차’의 이송을 방해하면 안 된다고 하지 말고 ‘어떤’ 구급차인지 정의해야한다”며 “이송 방해가 불가한 차량이 응급구조사가 탄 차량인지, 환자까지 탄 차량인지를 세밀하게 규정해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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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직의 2020-07-25 00:13:22
이경원씨가 택시기사가 저런 행동을 한게 사설구급차에 대한 불신도 컸을거라고 하는데, 경찰조사 보면 택시기사가 사고도 고의로 냈다는디요? 119였으면 범죄를 저지를 엄두도 못냈을거다는 얘긴가요? 저 택시기사는 어디가서든 어차피 범죄를 저지를 인간이었으니 괜히 119였으면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라는 뉘앙스 풍길 필요는 없죠. 그냥 그것과 별개로 사설구급차 문제를 다루면 되는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