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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전화진료를 좋아해
대법원은 전화진료를 좋아해
  • 의사신문
  • 승인 2020.07.07 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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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85)
전 성 훈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 성 훈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Gentlemen Prefer Blondes)’라는 영화를 아시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본 적은 없다. 하지만 들어는 봤다.’  거장(이라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위대한 감독인) 하워드 혹스가 감독한 이 영화는, 1953년 개봉하여 ‘초대박’을 쳤고, 출연한 여배우는 핀업스타에서 대스타로 변신했다. 그녀의 이름은 바로 마릴린 먼로.

특히 영화에서 마릴린 먼로가 핑크 드레스를 입고 ‘다이아몬드는 여자의 진짜 친구(Diamonds Are a Girl’s Best Friend)’를 부르는 장면은 그야말로 ‘전설’로 남았다. 마돈나, 니콜 키드먼,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등 수많은 후배 헐리웃 스타들이 영화나 뮤직 비디오에 그 장면을 담아 그녀에 대한 오마주(hommage)를 표시할 정도로 말이다.

신사는 금발을, 여자는 다이아몬드를 좋아한다는 50년 전의 비유는 현재에는 하품이 나오는 얘기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법원이 전화진료를 좋아한다면 하품할 상황이 아니다. 이는 자칫 비대면진료로 가는 디딤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의 진료가 진단만으로 끝나는 경우는 많지 않고, 대부분 진단에 따른 의약품 처방이 이어진다. 그런데 의약품 처방은 의료법상 ‘환자를 직접 진찰한 의사만’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비대면진료가 도입되기 위한 선결문제는 이것이다. ‘비대면진료를 ‘환자를 직접 진찰한 것’으로 볼 수 있는가?’  그런데 비대면진료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는 ‘전화진료’에 대한 법적 판단은 이미 여러 번 있었다.

산부인과 전문의 A는, 이전에 1회 이상 자신이 운영하는 병원을 방문하여 진료를 받고 살 빼는 약을 처방받은 바 있는 환자들에 대하여 ‘전화진료’한 다음, 처방전에 해당하는 내용을 전산 입력하고, 간호사는 그 처방전을 출력하여 특정한 약국에 전달하는 방법으로 진료행위를 했다.
검사는 이러한 A의 전화진료 행위를 의료법상 ‘직접 진찰 후 처방전 작성.교부’ 조항을 위반한 것으로 보고 2008년 A를 기소했고, 제1심, 제2심 모두 A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A는 대법원에 상고하면서, 동시에 헌법재판소에 의료법의 해당 조항이 위헌인지 확인해 달라고 청구했다.
이러한 A의 청구에 대하여, 헌법재판소는 2012년 ‘직접 진찰은 대면진료를 의미한다’고 결정했다. 즉 헌법재판소는 ‘비대면진료시 처방전을 작성.교부할 수 없다’는 취지로 결정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결정과는 반대로, 대법원은 2013년 ‘의료법상 ‘직접 진찰’에서의 ‘직접’이란 ‘스스로’를 의미하므로, 전화 통화 등을 이용하여 비대면으로 이루어진 경우에도 의사가 스스로 진찰을 하였다면 직접 진찰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결했다. 즉 대법원은 전화진료를 통한 처방전 작성.교부가 가능하다고 인정한 것이다.

이 파격적인 판결에 의료계와 보건복지부는 핵폭탄급 충격을 받았다. 의료계는 헌법재판소 결정은 사실상 원격진료가 불가능하다는 취지였으므로 안심하고 있었는데, 이 판결이 원격진료 도입 논의의 단초가 될까 우려했다. 보건복지부 역시 아무런 준비 없이 전화진료를 허용할 수는 없었으므로 ‘개별 사안에 대한 법률적 판단일 뿐’이라고 확대해석을 차단하면서, 곧바로 ‘전화진료는 의료법 제33조(개설의료기관 외에서의 의료업 금지) 등 위반에 해당하므로 어쨌건 허용되지 않는다’고 입장을 정리했다.

2015년 법제처 역시 ‘의사는 의료법 제34조 제1항에 따른 원격의료가 아니면 제33조 제1항에 따라 의료기관 내에서 환자를 직접 대면하여 진료하여야 한다’는 이유로 전화진료는 불가하다고 해석했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위 판결 후 7년이 지난 올해 1월, ‘전화 진찰을 하였다는 사정만으로 ‘자신이 진찰’하거나 ‘직접 진찰’을 한 것이 아니라고 볼 수는 없다’고 판결하여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리고 대법원은 올해 5월에도, ‘진찰 행위가 전화 통화만으로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최소한 그 이전에 의사가 환자를 대면하고 진찰하여 환자의 특성이나 상태 등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는 사정 등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한 번도 대면진찰한 적이 없는 환자에게 전화 통화를 통해 플루틴캡슐 등 전문의약품을 처방한 의사에 대하여 유죄 취지로 판결했다. 즉 기존의 입장을 재재확인하면서 더 구체화한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법원이 이 판결에서 “현대 의학측면에서 보아 신뢰할만한 환자의 상태를 토대로 특정 진단이나 처방 등을 내릴 수 있을 정도의 행위가 있어야 ‘진찰’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고 판시함으로써, 비대면진료가 허용될 수 있는 요건 중 하나로서 ‘환자 상태에 대하여 현대의학 수준에서 신뢰할 만한 판단이 가능할 것’을 명시했다는 점이다. 이는 여러 구성요소 중 충분히 검토되어 더 이상 바꾸지 않을 구성요소는 판결을 통해 하나씩 하나씩 쌓아가는, 대법원식 법리 구축 방법이다.

대법원은 최고 법해석기관으로서 ‘정책법원’의 역할을 수행한다. 소송이 제기되어야 비로소 역할 수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입법부나 행정부에 비해 수동적이고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대법원은 일정한 사회적 이슈에 대하여 법해석을 통해 방향을 제시한다. 그리고 대법원의 이러한 정책적 방향 제시는 즉시 하급심에 영향을 미친다.

대법원의 위와 같은 ‘전화진료 사랑’은 단순한 조문해석의 결과물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비대면진료에 대한 판단 내용이 반복되고 구체화되고 있고, 가장 최근의 판결은 무려 6년간 숙고하여 내린 판결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을 볼 때 대법원은 비대면진료라는 시대적 흐름에 대하여 향후 취할 입장을 일부씩 제시해 나감으로써 비대면진료와 관련하여 사후적으로 법원의 판단을 구하는 소모적인 분쟁을 예방하려는 ‘정책적 결정’을 내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향후 비대면진료와 관련한 의료계 내부 논의에 있어서, 비대면진료에 대한 대법원의 이러한 일련의 입장은 충분히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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