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비대면진료는 “두 생명을 상대로 하는 실험”
산부인과 비대면진료는 “두 생명을 상대로 하는 실험”
  • 홍미현 기자
  • 승인 2020.06.25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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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 사실상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두고 "탁상공론에서 나온 코미디" 반발
임산부가 ‘대면진료’를 원활하게 받을 수 있는 의료체계 구축이 우선돼야

전화 통화(비대면 진료)만으로 산모의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가능할까? 

전문가들은 사실상 임산부에게서 듣는 증상 설명과 임산부 스스로 체크한 체중과 혈압 정보 정도를 갖고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한다. 임산부를 대상으로 비대면 진료가 시행될 경우 자칫 산모와 태아 두 사람의 생명이 모두 위태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산부인과 전문의들 “비대면진료는 눈감고 진료하라는 것"

지난 18일 보건복지부는 오는 30일부터 2022년말까지 2년6개월 간 '분만취약지 임산부'를 대상으로 '재택의료 시범사업'을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이 사업은 산부인과 접근성이 낮은 분만취약지에 거주하고 있는 임산부를 대상으로 건강 관리와 함께 문제점의 조기 발견 등을 위해 대면 교육상담과 주기적인 모니터링, 비대면 관리서비스 등을 병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적정 수준의 수가도 제공한다.

그러나 이번 시범사업에 대해 정작 당사자인 산부인과 전문의들 사이에서는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 현실을 무시한 처사로, 이를 강행할 경우 "산모와 태아, 두 생명을 상대로 하는 실험이자 의료윤리에 위배되는 행위"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윤석완 성완산부인과의원 원장은 "산부인과는 산모와 태아 두 명을 모두 진료하는 곳으로, 산모의 안색을 봐야 빈혈 등 건강상태를 알 수 있고, 초음파를 통해 태아의 건강상태도 함께 확인해야 한다"며 "온 신경을 곤두세워 대면진료를 해도 모자랄 판에 전화진료를 하라는 것은 그야말로 코미디이자 탁상공론"이라고 말했다. 

임선영 (임선영)산부인과의원 원장도 "산부인과는 대면진료를 하더라도 변수가 많이 발생한다"며 "산부인과의 비대면진료는 눈감고 진료하라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오상윤 예진산부인과 원장 역시 "임산부는 안정적인 대상이 아닐 뿐만 아니라 뱃속 태아까지 포함하면 급진적이고 불안정한 대상자로 분류된다"며 "산부인과의 비대면진료 도입은 산모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이자 의료윤리에 크게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합계출산율 0.92, 출산수요 감소로 출산인프라 붕괴

지난 2017년까지만 해도 1.05명이었던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가임여성 1명당 출산율)은 지난 2018년 0.98명으로 1명 미만으로 떨어졌다.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국가 가운데 최하위 수준으로, 지난해에는 0.92명으로 더 떨어졌다. 

출산율 하락은 필연적으로 출산 수요 감소에 따른 출산 인프라 부족을 야기하고 있다. 김순례 전 미래통합당 의원이 지난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전국 시·군·구 226곳 중 71곳은 2018년 기준으로 출산 건수가 '0'을 기록했다. 특히 이중 30곳은 자동차로 1시간 이내 거리에 분만이 가능한 산부인과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의 이번 시범사업은 이처럼 산부인과가 없는 지역에 거주하는 임신부들을 겨냥한 정책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애초 취지와 달리, 산부인과의 특성상 제대로 된 진료가 이뤄질 수 없고 결과적으로 이같은 정책은 실효성을 거둘 수 없는 것은 물론, 자칫 재앙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 의료계, “문제점 잘못 짚어…대면진료 받을 수 있는 환경 만들어줘야”

의료계는 이번 시범사업과 관련해 정부가 "분만취약지의 문제점을 잘못 짚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분만취약지의 가장 큰 문제는 ‘분만 인프라'의 붕괴로, 그에 대한 해법은 임산부가 '대면진료'를 원활하게 받을 수 있는 의료체계 구축이 되어야 하는데 엉뚱하게 비대면 진료 도입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오상윤 원장은 분만취약지의 문제점으로 △낮은 분만 수가로 인한 병원 운영의 어려움이 분만병원 폐업으로 이어지는 점과 △도시와 비교했을 때 의료사고가 많이 일어날 수 있는 환경 등을 꼽으면서 "분만취약지의 분만 인프라 붕괴 예방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선 분만 수가 상향조정과 인건비 등에 대한 국가적 지원 등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특히 그는 "불가항력적인 산모·태아 사망이나 신생아 뇌성마비 등에 대해서는 일본처럼 100% 국가가 보상해야 분만 취약지 인프라 붕괴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분만취약지 임산부가 대면진료를 원활히 받을 수 있도록 교통편의 제공과 함께 고위험 임산부의 경우 분만병원·상급종합병원 인근의 '산모 스테이' 같은 시설도 갖출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임선영 원장도 "분만취약지에 비대면 진료를 시행하기에 앞서, 모자보건센터 등을 갖춰 산모들의 불편한 부분부터 해소해야 한다"고 했다.

산부인과의사회는 회원들에게 이번 시범사업의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전달하는 한편, 정부가 전문가 의견을 무시한 채 시범사업을 계속 시행할 경우 ‘사업거부’ 운동을 펼쳐나간다는 계획이다.

김동석 직선제 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산부인과에서는 산모와 태아, 두 생명을 모두 돌봐야 하는데 '전화 진료가 가능하다'는 발상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며 “정부가 '저출산'이라는 단어를 앞세워 산모들에게 도움되는 제도처럼 포장해 사업을 시행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숨어 있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낮은 수가와 함께 불가항력적 의료사고가 많아 산부인과가 기피과로 전락한 지금, 산부인과를 살리기 위한 해결과제가 우선돼야 한다”며 “분만취약지 산모들을 위한다면 비대면진료가 아닌, 공공병원이나 준종합병원에 산부인과를 갖추고 진료·분만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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