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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맥약침과 루이비통닥
혈맥약침과 루이비통닥
  • 의사신문
  • 승인 2020.06.22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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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84)
전 성 훈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 성 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 법무법인(유한) 한별

‘루이비통’을 아시는가? 대부분 잘 아실 것이다. 그러면 ‘루이비통닥’을 아시는가? ‘닥’자가 붙은 것으로 미루어, 루이비통이 무슨 의료 관련 사업도 하고 있나, 하고 생각하실 것 같다.
대한민국에서 영업 중인 치킨집(통닭집 포함) 수는 무려 3만 개에 가깝다. 이 미증유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몇 년 전 서울 소재 모 통닭집은 매우 고급진 가게 이름을 붙였다. 이름하여 ‘루이비통닥(LOUIS VUITON DAK)’.

게다가 이 통닭집은 통닭 포장 상자에 루이비통 로고를 넣었는데, 이 포장 상자를 아주 정성들여 만들었기에, 통닭을 사가는 손님을 좀 떨어져서 보면 영락없이 루이비통 가방을 들고 가는 것처럼 보였다.
기발한 아이디어에 폭소를 터뜨리는 것과는 별론, 이 통닭집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자 이를 알게 된 루이비통은 화가 났다. 수십 년간 쌓아온 명성과 공들인 디자인이 통닭 파는데 쓰이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루이비통은 이 통닭집을 상대로 ‘간판, 광고, 포장지 등에 해당 명칭과 로고를 쓰지 말고, 이를 위반할 경우에는 루이비통에 하루 50만 원씩 지급해야 한다’는 취지의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루이비통의 손을 들어 주었다. 법원 판결을 받은 후, 이 통닭집은 어려운 결단을 내려야 했다. 고심 끝에 통닭 포장 상자에서는 로고를 지웠지만, 기껏 알려진 유명세를 포기할 수는 없었는지, 가게 간판을 ‘루이비 통닥(LOUISVUI TONDAK)’으로 변경하고 영업을 계속했다.
그러자 루이비통은 ‘해당 명칭을 쓰지 말라는 법원의 명령을 위반했으니 돈을 지급하라’는 취지로 다시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이를 인정하여 이 통닭집에 ‘루이비통에게 1,450만 원을 지급하라’고 다시 판결을 내렸다.

두 번째 판결로 속칭 확인사살을 당한 이 통닭집의 말로까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법원이 이와 같이 ‘유사품’에 대하여 강력한 철퇴를 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침과 정맥주사는 다른가? 이에 대하여는 의료계와 한의계 모두 일치하여 ‘다르다’라고 할 것 같다. 그렇다면 법원의 판단까지는 필요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혈맥약침과 정맥주사는 다른가? 이에 대하여는 의료계는 ‘사실상 같다. 그래서 의료법위반이다’라고 할 것 같고, 한의계는 ‘다르다. 혈맥약침은 한의학적 원리에 따른 것이다’라고 할 것 같다. 양측 의견이 다르니, 분쟁이 생긴다면 법원의 판단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최근 이에 참고할 수 있는 대법원의 판결이 내려졌다.
한의사 A는 2012년 자신이 운영하는 요양병원에서 폐암으로 입원해 있는 환자 B에게 ‘항암혈맥약침’ 치료를 제공했고, 그에 대하여 본인부담금 920만 원을 지급받았다. B가 비급여 항목 지출을 이유로 보험회사에 보험금을 청구하자, 보험회사는 심평원에 혈맥약침이 관계법령에 따른 비급여에 해당하는지 확인을 요청했다.

심평원은 2014년 ‘혈맥약침술은 기존 약침술의 범주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별도로 신의료기술평가를 받아야 하고, 그럼에도 이를 받지 않았으므로, 관계법령에 따른 비급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이어서 ‘A가 수령한 혈맥약침술 비용 920만 원은 과다본인부담금에 해당하므로 B에게 환급하라’는 처분을 내렸다. 그러자 A는 이에 불복하여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장장 6년간의 소송이 막이 올랐다.
2015년 1심은 심평원의 손을 들어 주었으나, 2016년 2심은 이를 뒤집어 A의 손을 들어 주었다.
3년의 심리 끝에 2019년 대법원은 ‘혈맥약침술은 기존 약침술과 서로 동일하거나 유사하다고 볼 수 없으므로, A가 환자들로부터 비급여 항목으로 혈맥약침술 비용을 지급받으려면 신의료기술평가 절차를 통해 안전성.유효성을 인정받아야 한다’고 판단하고, 2심 판결은 잘못되었으니 다시 심리하라고 사건을 돌려보냈다.

사건을 돌려받은 2심 법원은 다시 심리를 시작했다. A는 궁리 끝에 ‘혈맥약침술이 신의료기술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인정하더라도, 혈맥약침술과는 별개로 혈맥약침액 비용은 법정비급여 항목에 해당한다’는 꼼수를 다시 추가했지만, 올해 2심 법원은 ‘아니다. 혈맥약침액도 함께 신의료기술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확인하는 판결을 내렸다.
A는 다시 대법원에 재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재상고를 3개월만에 기각했고, 이로써 사건은 지난 달 확정되었다.

기존 약침술은 침술의 기본 원리에 약물 투여를 더한 것이므로 ‘한의학적 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평가되어 (물론 의료계는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허용되어 왔다. 하지만 대법원은 위 사건에서 ‘기존 약침술과 혈맥약침술은 다르다. 그러니 혈맥약침술은 별도의 신의료기술평가를 거쳐야 한다’고 못박았다. 따라서 앞으로 혈맥약침술에 대한 신의료기술평가가 신청된다면, 혈맥약침술이 안전하고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효성이 발현하는 기제가 정맥주사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엄격하게 평가되어야 한다.

통닭집 주인은 ‘루이비통닥’과 ‘루이비 통닥’을 간판에 쓰면서 ‘이건 아이디어다!’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아니, 그건 꼼수야’라고 하면서 두 번이나 이마를 대차게 때렸다. ‘먹고 살기 위한 행위’에는 법도 다소 관대하지만, 지켜야 할 선을 넘는 행위에는 전혀 그렇지 않다. 하물며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의료행위에 대하여는 더욱 그렇다.

‘의료인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고 못 박은 의료법의 취지를 준수하기 위해, 그리고 이번 대법원 판결의 취지를 준수하기 위해, 앞으로 혈맥약침술은 엄격한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진세노사이드’ 없는 ‘산삼약침’ 수준으로 신의료기술평가를 통과할 수 있을지는 매우 의문이나, 적어도 ‘혈맥약침’이란 말을 들으면 ‘루이비통닥’이 떠오르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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