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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만 열면 설화(舌禍)···의료계 현실에 눈귀 닫은 '복지'부 장관
입만 열면 설화(舌禍)···의료계 현실에 눈귀 닫은 '복지'부 장관
  • 권민지 기자
  • 승인 2020.06.18 16: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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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언론서 방호복 사진만 나오니까 (더운데도) 선호하는 것” 발언 또 논란
"(의료진이) 재고 쌓아두려 해"···코로나 이후 현실과 동떨어진 발언 잇따라 구설
'복지' 전문가 장관의 한계? 의료계 "단순 실수 아냐···이참에 보건부 독립시켜야"
생각에 잠긴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사진=뉴스1)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사진=뉴스1)

"언론에서 전신 방호복 사진만 나오니까 그 분들(의료진)이 (무더위에도 가운 대신 방호복을) 선호한다." 

21대 국회 개원 후 처음으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또다시 의료진에 대해 편견을 드러내는 듯한 발언을 해 구설에 올랐다.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된 이래 박 장관이 수 차례 구설에 휩싸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같은 박 장관의 설화(舌禍)는 비보건 전문가로서 의료계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의료진이 무더위에도 언론보도 때문에 방호복 선호?···장관 발언에 의료계 '부글부글'

이번에 논란이 된 발언은 1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무더위 속에서 레벨D 방호복을 입고 근무하는 의료진들이 쓰러지는 등 사고가 발생하는 것을 지적하며 대책 마련을 주문하자 이에 대한 답변 과정에서 나왔다. 

박 장관은 “(보건복지부에서는) 초창기부터 방호복 수준을 2가지로 지침을 내렸다”며 “여름 대비용 수술용 가운도 있다”고 말한 뒤 "언론에서 전신 방호복 사진만 나오니까 그분(의료진)들이 (무더위에도 가운 대신 방호복을) 선호한다"고 덧붙였다. 복지부에서는 레벨D 방호복 이외의 대안(수술용 가운)을 제시했는데 의료진들이 언론 보도의 영향을 받아 더위에 취약한 방호복을 ‘선호’한다는 설명이었다. 

박 장관의 발언에 의료계는 또다시 들끓었다.

대구의 한 선별진료소에서 근무했던 공보의 A씨는 “(장관이) 현장도 모르고 문제인식도 없이 하는 얘기”라며 “검체 채취를 하다가도 환자가 옷을 잡아당기거나 하는 등 돌발상황이 발생해 감염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서 레벨 D를 입는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 사진을 보고 방호복을 입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염호기 대한의사협회 코로나19 대책본부 전문위원회 위원은 "장관으로서 적절하게 처신한 말인지 의문”이라며 “문제 해결을 위한 답변도 아니고 적개심이 담긴 말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현장에서 날씨가 더워서 간호사들이 쓰러지는 사고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만약 ‘힘들겠다’고 위로하고 원론적인 답변만 했다면 문제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현 한림의대 사회의학교실 교수(한국역학회 회장)도 “(문제가 된 발언은) 불필요한 얘기였다”며 “복지부 가이드라인에 레벨D와 가운을 둘 다 사용하도록 제시하고 있다는 말까지만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박 장관은 또 대구 지역에서 코로나 환자가 급증했을 당시 추가 병상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공공의료원에 비해 상급종합병원의 협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뉘앙스로 발언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박 장관은 “시설이 잘 갖춰진 상급병원은 암환자라든지 중증 환자를 다뤄야하는 역할도 있지만, 보다 시급한 감염병 환자를 받는 데 있어서는 (협조가) 늦었다”면서 “하지만 대구의료원 등 공공의료원의 대응 협조는 빨랐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환자를) 받아줘서 위기를 넘기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고 답한 것이다. 

◆"겨울이라 모기 없어" "(의료진이) 재고 쌓아두고 싶어한 것"···코로나 이후 잇따른 '설화'

이같은 박 장관의 ‘설화’는 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시작됐다. 

중국 우한에서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던 지난 2월, 중국인에 대한 입국 제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정부에 대해 ‘창문을 열어 놓고 모기 잡는 격’이라는 비판이 제기된 데 대해 박 장관은 브리핑에서 “지금은 겨울이라 모기는 없는 것 같다”고 발언해 빈축을 샀다. 

이어 같은 달 26일엔 국회에서 “(코로나 확산의) 가장 큰 원인은 중국에서 들어온 한국인이었다”라며 “애초부터 중국에서 들어온 우리 한국인이라는 뜻”이라고 말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보건의료 분야의 수장이 확산에 대한 책임을 국민들에 돌림으로써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발언을 함으로써 국민적 공분(公憤)을 산 것이다. 

압권은 3월에 나왔다. 국회 보건복지위 전체회의에 참석한 박 장관이 '(의료) 현장에서 보호장비 부족으로 힘들어하고 있다'는 여당 의원의 지적에 “(의료진 마스크 부족은) 넉넉하게 재고를 쌓아두고 싶은 심리에서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이라고 답한 것이다. 보호장비 부족을 의료계의 책임으로 돌린 해당 발언을 계기로 의료계를 중심으로 "장관을 경질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다. 

최근에도 지난 11일 서울대병원 선별진료소를 방문했을 때 “대구를 찾았을 때도 내게 한 공보의가 ‘전신 방호복을 주지 않으면 근무하지 않겠다’고 했었다”며 “4종 세트(수술용 가운, 안면보호구, 보건용 마스크, 장갑)로도 감염 예방이 가능하다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해 현장의 인식과 괴리가 너무 크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실수도 한두 번이지···잇따른 설화, 의료계 현실 이해 못하는 '비전문가'의 한계

박 장관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복지’ 전문가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과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를 거쳐 현 정부 출범과 함께 복지부 장관에 임용됐다. 

의료계에서는 박 장관이 잇따라 논란이 되는 발언을 쏟아내는 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의료계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기인한 '구조적인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비의료인·비전문가 장관’으로서의 한계라는 것이다. 

공보의 A씨는 “기존 정책을 보면 보건복지부에서 의료라는 것을 복지의 관점으로만 보고 있다”며 “시혜적인 정책만 생각하고 의료업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위험요인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계에서는 이번 논란을 계기로 최근 정부에서 추진 중인 질본의 청 승격을 골자로 한 정부 조직개편안에 보건부 독립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앞서 서울시의사회는 지난 11일 '보건부를 분리, 독립하라'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박홍준 서울시의사회 회장은 "(박능후 장관이) 주무 부처 장관으로서 비전문 분야인 감염병 관련 입장을 내놓는 과정에서 거듭 빈축을 사고 있다"며 "이미 한계를 드러낸 보건복지부 체제를 신속히 개편하고 보건부를 독립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현 교수도 “한국역학회에서는 메르스 때부터 성명서를 내고 보건부 독립을 주장해왔다”며 “여러 부처에 흩어져있는 보건 업무를 통합하고, 전문적인 분야는 전문가가 관리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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