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행성사정과 반쪽자식
역행성사정과 반쪽자식
  • 의사신문
  • 승인 2020.06.15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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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83)
전 성 훈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 성 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 법무법인(유한) 한별

대법원은 우리나라의 최고법원이다. 대법원은 시군법원-지방법원 지원-지방법원-고등법원-대법원으로 이어지는 계층 구조에서 최종판단권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1년간 제1심 법원에 약 630만 건(!)의 소송을 제기한다. 그리고 그 판결에 불복하여 제2심 법원에 약 20만 건을 항소하고, 그 판결에도 불복하여 대법원에 약 4만 8,000건을 상고한다. 즉 항소율은 약 3.2%, 상고율은 약 0.7%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대법원이 1년에 처리하는 4만 8,000건의 사건들 중 대부분은(70%~80%) ‘심리불속행’으로 기각된다. 심리불속행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사소한 사건도 상소하여 대법원의 판단을 받으려고 하는 우리 세태를 고려하여, 대법원은 대법원이 심리를 개시하는 요건을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는데, 이러한 심리 개시 요건을 못 갖춘 경우에는 ‘심리를 속행하지 않고’ 기각하는 것이다.
사건 내용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기각해 버리는 이런 심리불속행 제도에 대하여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라는 비판이 있지만, 대법원은 꿋꿋이 이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대법관 1명이 1년에 4,000건을 처리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대법원 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사소한 사건은 걸러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변호사 입장에서는 이렇게 ‘심리불속행’ 당하지 않으면 절반의 성공으로 본다. 일단 대법원이 판결문을 써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법원의 판결문이 나오는 사건은 1년에 1만 건 남짓한데, 이 1만 건의 사건들 중 의료 분야 판결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2019년에도 대법원은 많은 판결을 내렸다. 극히 소수의 의료 분야 판결들 중에서도 의료계의 흥미를 끌만한 2제를 살펴보겠다. 우연이겠으나, 모두 ‘정자’와 관련된 사건이다.

첫째 사례는 난감한 사례이다. 의사 A는 디스크로 극심한 통증을 겪고 있던 남자환자 B에게 제4-5요추간 추간판 확장후 추간판 절제술과 인공디스크삽입술, 그리고 제5요추-제1천추 부위 전방경유추간판 제거와 인공디스크 치환술(이하 ‘전방경유술’)을 시행했다.
그런데 B는 전방경유술 시행 이후 ‘사정장애와 역행성사정(사정시 정액이 요도를 경유하여 방광으로 역류하는 증상)’이 영구적으로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과 함께, 그로 인한 ‘남성불임증’ 진단을 받았다.
그러자 B와 그 아내인 C는 A가 전방경유술을 시행하면서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면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당시 B는 35세였다.

고등법원은 의사의 과실을 인정하고 손해배상을 명했으나, 대법원은 고등법원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고 돌려보냈다. 대법원이 든 이유는 이와 같다. ① 전방경유술은 사람 몸 앞쪽(배쪽 부분)에 절개를 하여 척추의 요천추 부분을 수술하는 것으로, 그 대표적 합병증은 회음부와 골반부에 분포하는 교감신경과 천골신경의 손상이다. ② 척추수술 중 방광 경부의 괄약근 조절에 관여하는 요추체 전면에 있는 상하복교감신경총이 손상되면 역행성사정이 발생할 수 있다. ③ 그러나 A가 후방경유술이 아닌 전방경유술을 선택한 것이 의사에게 인정되는 합리적 재량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거기에 주의의무 위반을 인정할 수 없다. ④ 또한 전방경유술 중에 상하복교감신경총이 손상되어 역행성사정의 후유증이 발생하였다고 보더라도, 그것만으로 A의 의료상 과실을 추정할 수는 없다. ⑤ B의 상하복교감신경총 손상은 전방경유술 중 박리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손상이라거나 그로 인한 역행성사정 등의 장해는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합병증으로 볼 여지가 있다.

위 판결은, 의료과오 사건에서 법리에 따라 피해자의 증명책임을 완화하여 주더라도 막연하게 의사의 과실을 추정하여서는 안 되고, ‘의사의 과실로 인해 악결과가 발생했다’고 추정할 정도의 ‘개연성’은 담보되어야 한다는 기존의 법리를 재확인한 의미 있는 판결이라 할 것이다.

둘째 사례는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사례이다. X와 Y는 혼인신고를 마친 부부였다. 남편 Y는 결혼 후 무정자증 진단을 받았다. 아내 X는 Y의 동의를 얻어 제3자로부터 정자를 제공받아 시험관시술을 통한 인공수정으로 임신한 다음 Z를 출산했다. 이후 X와 Y는 이혼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남편 Y는 아내 X와 Z를 상대로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소송을 제기했다. 즉 Y의 청구는, 이혼하게 되면 Z는 더 이상 내 자식이 아님을 확인해 달라는 것이다.
3년에 걸친 소송 끝에 대법원은 Y의 청구를 기각했다. 즉 아내가 혼인 중에 남편 아닌 제3자의 정자를 제공받아 인공수정으로 자녀를 출산한 경우에도 그 자녀는 남편의 ‘친생자’에 해당하며, 이혼해도 여전히 그 자녀는 남편의 자식이라는 것이다.

대법원이 든 이유는 이와 같다. ① 혼인 중 출생한 자녀의 부자관계는 민법에 따라 일률적으로 정해지는 것이지 혈연관계를 개별적.구체적으로 심사하여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② 인공수정 자녀에 대해 친생자관계가 생기지 않는다고 하면 그 부모에게 커다란 충격일 뿐만 아니라, 자녀에게도 회복하기 어려운 위험이 된다. ③ 인공수정 자녀의 출생 과정에서 남편은 동의의 방법으로 자녀의 임신과 출산에 참여하게 되는데, 남편이 인공수정에 동의했다가 나중에 이를 번복하고 친생부인 관련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남편의 심정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내와 다른 남자의 유전자를 받은 자식에 대해, 아내와의 애정이 유지되는 중에는 (내색은 않겠으나) ‘반쪽자식’으로는 느껴지겠으나, 아내와 헤어지게 된다면 ‘남의 자식’처럼 느껴지지 않겠는가. 그러나 사람의 출생은 동의하였다가 번복하면 되는 그런 간단한 문제가 아니고, 더욱이 동의를 번복할 남편의 자유보다 앞으로 성장할 자녀의 복리가 훨씬 중요하다.

최근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불임부부의 비율이 높아지면서, 인공수정으로 자녀를 출산하는 부부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하여 대법원은 출생한 자녀에 대한 법적 보호에 공백이 없도록 친생추정 규정을 강하게 적용했다. 그런 점에서 혼인 중 출생한 ‘인공수정’ 자녀도 ‘혼인 중 출생한 자녀’에 포함된다고 판단한 대법원의 위 판결은, 앞으로 의미 있는 선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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