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17:56 (금)
질본이 감염병만 관리하란 법 있나···전문가들 “만성질환·응급의료도 포함해야"
질본이 감염병만 관리하란 법 있나···전문가들 “만성질환·응급의료도 포함해야"
  • 권민지 기자
  • 승인 2020.06.12 17: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선우 의원 주최 국회토론회서 "국민건강 관리 총체적 담당해야" 주장
"만성병 관리는 시기상조" 복지부측 주장에 "복지부가 지원해줘야" 반박
12일 '질병관리예방청 왜 필요한가' 국회 토론회에 참석한 여당 의원과 발제·토론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12일 '질병관리예방청 왜 필요한가' 국회 토론회에 참석한 여당 의원과 발제·토론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질병관리본부의 청 승격을 골자로 한 조직개편에 착수한 가운데 이번 기회에 질병관리본부가 감염병 관리뿐 아니라, 만성질환, 응급의료 관리 등을 포함한 국민 건강관리를 총체적으로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2일 ‘질병관리예방청 왜 필요한가?’라는 주제로 국회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이용빈 의원과 기동민 의원 등을 포함해 여당 의원 14명이 참석했다. 

강 의원은 개회사에서 “대규모 감염병은 특성상 발병되고 나면 사회적 비용과 손실이 기하급수적으로 일어난다”며 “이 때문에 질병관리청이 아닌 질병'예방'관리청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감신 대한예방의학회 이사장은 “효과적인 국가 질병관리를 위해서는 감염병과 만성질환을 아우르며 국민 건강을 보호하는 질병관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감 이사장은 “비감염성 질환도 감염성 질환과 같이 개인의 생활습관이나 사회적 상황, 공중보건체계 등 다양한 요인이 발생 원인”이라며 “(감염성 질환만) 따로 떼어놓고 논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이유”라고 말했다.

감 이사장은 “질방예방관리청의 주요기능은 △국민의 건강 수준과 결정요인 조사 감시 △감염병 유행예방과 유행시 관리 대책 수립 △공중보건위기 대응 △주요 만성질환의 감시 관리 등이 돼야 한다”며 “질병예방관리청으로의 전환은 기능 강화 차원을 넘어 시대적 요청”이라고 말했다. 

김동현 한국역학회 회장(한림의대 교수)도 “지금 상황에서 질병관리본부 개편 논의가 나왔을 때는 단순히 기능과 역할 차원의 개편을 넘어 ‘공중보건의 관점과 가치’를 지향하는 의료 '개혁' 틀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올해 1~3월 초과사망률이 전국 6%, 대구는 10.6%, 서울은 6.5%, 경북은 9.5%를 기록했다”며 “감염병 위기가 만성질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보건의료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조건과 결부시켜 생각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 회장은 “공중보건의 관점에서는 질병예방과 건강증진을 위해 개인과 집단이 처한 사회적 조건을 중시한다”며 “이런 부분(사회적 조건에 대한 고려)이 우리나라 법 체계에서는 실종돼있어 보건의료를 결국 개인의 문제로 생각하게 한다”고 말했다. 

일례로 미국의 CDC는 1946년 ‘전염병센터(Communicable Disease Center)’라는 이름으로 처음 설립됐고, 1970년에는 ‘전염병관리센터(Center for Disease Control)’, 1992년에는 ‘질병관리 예방 센터(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로 세부 명칭이 변경됐다. 김 회장은 “미국의 CDC도 1946년 설립된 이후 업무가 확장돼왔다”며 “공중보건 원칙과 가치가 구현되는 정책과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정부조직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허탁 대한응급의학회 회장(전남대병원 교수)은 “감염병 예방 관리 중심인 질병관리본부에 응급의료에 대한 지원 기능도 추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허 회장의 발제 자료를 보면, 구급 이송이 필요한 환자의 체온이 37.5℃ 이상인 경우 이송 시간이 1시간 이상 소요된 비율이 올해 1월 0.7%에서 3월에는 4.2%까지 치솟았다. 작년 1월과 3월의 경우 동일하게 0.5% 수준으로 유지됐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다. 허 회장은 “기존 질병관리본부의 업무에 추가해 재난 대응에서 필수적인 응급의료 제공이 통합적으로 관리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백경란 대한감염학회 이사장(성균관의대 교수)은 “질병관리본부는 신종 감염병뿐 아니라 만성병 등 다양한 질병 예방관리 전문기관으로 질병관리본부가 거듭나야 한다”며 “국민 건강을 위한 질병예방관리, 감시, 방역, 연구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발언자 중 유일하게 정부측 인사로 참석한 나성웅 보건복지부 건강정책국장은 질병관리본부의 총체적인 질병 관리 필요성에 대해 ‘시기상조’라고 선을 그었다.

나 국장은 만성병 관리는 이제 '시작단계'라는 점을 강조하며 “(아직까지는) 복지부와 질본이 같이 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 분리되면 통합 시너지는 사라진다"고 주장했다. 특히 만성병에 대한 자원과 자료 역시 현재 건강보험공단과 복지부에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만성병에 대한 큰 그림은 복지부에 있다"고 말했다. 

나 국장은 또 “국민들은 (서비스 주체가) 복지부든 질본이든 상관없다”며 “개개인한테 훌륭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이름 하나 보고 갈등 구조로 접근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동현 한국역학회 회장은 토론이 끝난 뒤 질의 시간에 나 국장의 의견을 반박하고 나섰다. 김 회장은 “만성병에 대해서는 초기단계지만 버든(burden)이 커서 초기단계라 해도 10년, 20년을 두고 가기 어렵다”며 “떨어져 나가면 역할을 못할 것이라는 얘기 대신에 ‘복지부가 기존의 역량을 최대한 지원하겠다’는 말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여러 발언자들이 감염병 전문 인력 양성의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신성식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는 “질본의 전문성을 키우려면 내부의 유능한 ‘의사’ 공무원을 키워야 한다”며 “질본 내 6명의 국장 중에서 의사는 단 1명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나성웅 복지부 건강정책국장은 “의사가 행정을 한다면 좋겠지만 행정가가 질병에 어느 정도의 식견이 있고 경험이 있다면 할 수 있다”며 “충분한 경험을 바탕으로 솔루션을 찾아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