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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예방약 아니었어요?···‘콜린알포’ 급여 축소 놓고 시끌시끌
치매예방약 아니었어요?···‘콜린알포’ 급여 축소 놓고 시끌시끌
  • 배준열 기자
  • 승인 2020.06.12 16: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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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네페질과 병용요법 치료 외 효과 입증 안돼···의약 선진 A7 중 이태리만 치료제로 허가
환자들 사이에서 “치매 예방약”으로 인식···임상 현장서 치료보조제로 올바른 처방 기대

환자들 사이에서 일명 치매 ‘예방약’으로 불리던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에 대해 보건당국이 건강보험 급여범위를 축소하기로 했다. 치매 ‘치료’에만 기존 급여를 유지하고 나머지 이유로 복용하는 경우에는 선별급여를 적용해 환자의 본인부담률을 대폭 끌어올린 것이다.

의료계에서는 건강보험 재정을 감안해 비용 효과성이 불분명한 약제의 무분별한 사용을 억제하겠다는 취지에는 대체로 공감하면서도 치매에 있어 이렇다 할 치료제나 예방약이 전무하다시피 한 상황에서 그나마 유일한 대안으로 알려진 제제에 대해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 것 아니냐는 불만도 나온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원장 김선민)은 11일 제6차 약제급여평가위원회(이하 약평위)를 개최한 뒤 심의 결과를 공개했다. 심의 결과, 선두 주자인 종근당의 글리아티린연질캡슐과 대웅바이오의 클리아타민연질캡슐을 비롯해 국내에 234개의 품목이 등재되어 있는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에 대해 급여 재평가를 실시해 치매에서만 기존 급여를 유지하고, 그 외에는 선별급여를 적용해 본인부담률 80%를 적용하기로 했다.

약평위가 인정한 콜린알포세레이트의 효능효과1은 뇌혈관 결손에 의한 2차 증상 및 변성 또는 퇴행성 뇌기질성 정신증후군으로, 기억력 저하와 착란, 의욕 및 자발성 저하로 인한 방향감각 장애, 의욕 및 자발성 저하, 집중력 감소 등이다. 반면, 선별급여로 전환된 효능효과2는 감정 및 행동 변화, 정서불안, 자극과민성, 주위무관심 등, 효능효과3은 노인성 가성우울증 등이다.

콜린알포세레이트는 지난 1989년 이탈리아 제약사인 이탈파마코가 개발한 뇌기능 개선제로, 뇌신경 손상으로 인해 저하된 신경전달 기능을 정상화하고, 손상된 뇌세포에 직접적으로 작용해 신경세포의 기능을 개선하는 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진료 현장에서는 해외 임상 결과에 따라 치매 치료를 위해 도네페질과 병용 처방됐다.

부작용도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치매 인구 증가와 맞물려 치매 치료는 물론 예방 차원에서 처방이 증가했다. 특히 오리지널 약의 특허권이 풀린 지난 2016년부터 수많은 제네릭(복제) 의약품이 출시되면서 처방이 급격히 증가, 지난해 기준 국내 처방액수는 약 3500억 원대로 추산된다.

제약업계에서는 이번 약평위의 급여 재평가 결과에 따라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의 시장 규모가 축소될 것으로 예상한다. 치매진단환자에게 인지장애 등의 증상 개선을 목적으로 처방됐을 경우 종전처럼 약제비의 30%만 부담하면 되지만 치매진단을 받지 않았을 경우에는 선별급여를 적용해 본인부담율이 80%로 올라가 비용 부담 때문에 자연히 처방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콜린알포세레이트가 ‘치매 환자’들에게 이루어진 처방액은 전체의 17% 수준인 600억 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작년 한 해 콜린알포세레이트 처방을 받은 약 185만 명 중 중증치매 환자는 약 11만6000명, 치매 환자는 약 21만 명으로 실제로 치매 치료를 위해 콜린알포세레이트를 처방받은 환자는 약 32만 6000명 수준이다.

나머지는 경도인지 장애가 약 70만2000명, 나머지 뇌 관련 질환이 약 73만4000명, 기타(불안장애, 우울증 등) 질환에 대해 약 8만7000명이 처방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치매 진단을 받지 않은 환자들 사이에서 더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콜린알포세레이트의 효능과 효과 논란이 제기됐음에도 우리나라에서 건강보험 급여가 광범위하게 적용되어 비용 부담이 적은 이유로 직접적인 치매 치료 효과보다는 치매 예방이나 영양제 같은 개념으로 의료 현장에서 처방이 많이 이루어졌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에 약평위가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에 대한 처방을 엄격히 하도록 한 배경은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가 대량으로 처방되고 있음에도 사실 이 약제의 비용 대비 효과성은 뚜렷하지 않아서다.

콜린알포세레이트가 세간에 ‘치매 예방약’처럼 알려지긴 했지만 전문가들에 따르면 도네페질과 병용요법을 통해서만 유의미한 치료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 외에 더 이상 뚜렷한 효과를 보여주는 연구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실제로 신약 약가 결정 또는 약가 재평가를 할 때 참고하는 의약 분야 주요 선진국인 ‘A7’ 국가(캐나다까지 포함하면 A8) 중 오리지널 약제가 개발된 이탈리아를 제외하면 다른 모든 국가에서는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를 우리나라처럼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이 아닌 건강기능식품으로 분류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콜린알포세레이트의 비용 부담이 적어 환자들의 ‘니즈’에 따라 내과는 물론 외과에서까지 경쟁적으로 처방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건강보험 재정에 손실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고, 결국 정부가 도입한 기등재의약품 재평가 제도의 첫 번째 심사 대상이 됐다. 일각에서는 이번 약평위를 앞두고 비용 효과성이 부족해 급여목록에서 삭제될 수 있다는 관측까지 제기됐지만 결국 급여범위가 축소되는 선에서 절충된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급여 재평가 결정에 대해 반발의 움직임도 나타났다. 전 세계 유수의 글로벌 제약회사들이 치매 치료제 개발을 공언했고 일부에서 긍정적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지난 2003년 에빅사 이후 17년 동안 미국 FDA의 신약 허가 승인을 받은 치료제는 단 하나도 없는 실정이다. 사실상 치료제 개발이 불가능하다는 관측까지 제기되고 있다.

특히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 중인 우리나라의 경우 이와 맞물려 치매환자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까지 시판된 뇌기능 개선제 가운데 가장 많은 임상 근거를 보유한 콜린알포세레이트의 급여를 제한한 것은 현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 중인 ‘치매 국가책임제’의 취지와도 역행한다는 지적이다.

한편으로 이번 급여축소를 통해 비로소 콜린알포세레이트가 치매 예방약이 아닌 치매 치료 ‘보조제’로서 임상 현장의 올바른 처방이 유도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대한치매학회 박건우 이사장(고려대 안암병원 신경과 교수)은 “콜린알포세레이트의 치매 예방 효과가 입증된 연구가 지금까지 단 한 건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그동안 임상 현장에서는 치매치료에 있어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비약물학적 치료 요법을 충분히 시행하지 않거나 환자가 실제로 치매인지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곧바로 약물 처방이 이루어진 경우가 꽤 많았다”며 “이번 약평위 결정을 통해 치매치료의 좀 더 올바른 가이드라인이 세워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만 치매 전 단계로 알려진 경도인지장애에 대해서도 여과없이 선별급여를 적용한 것에 대해서는 우려를 제기했다. 고령의 경도인지장애 환자 중 약 10%~15%는 치매로 연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 이사장은 “치매진단을 받지 않았어도 경도인지장애 중 일부는 치매가 원인일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진이 환자들의 상태를 좀 더 면밀히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고 무조건 선별급여를 적용함으로써 충분히 치료받을 기회를 박탈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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