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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방역체계 전환 성급했다"···의료전문가들 국회서 지적
"생활방역체계 전환 성급했다"···의료전문가들 국회서 지적
  • 권민지 기자
  • 승인 2020.06.04 11: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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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영 의원 주최 코로나 대비 국회토론회, 의료전문가 11인 등 참석
물류센터 업무과정 개편 등에 대한 대비 없이 생활방역 전환해 허점
2차 대유행 막기 위해 방역데이터 정비는 필수···의료인력 확충도 시급
3일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코로나19, 2차 대유행 어떻게 대비해야하나' 토론회에 참석한 의료전문가 11인과 여야 인사들이 '덕분에 챌린지' 포즈를 취하고 있다.
3일 '코로나19, 2차 대유행 어떻게 대비해야하나' 국회 토론회에 참석한 의료전문가 11인과 여야 인사들이 '덕분에 챌린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코로나19 2차 대유행에 대비하기 위해 11명의 의료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댔다. 이들은 생활방역체계로의 전환 과정에서 드러난 빈틈을 지적하는 동시에 의료 현장에 대한 지원을 호소했다.

신현영 의원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신현영 의원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코로나19, 2차 대유행 어떻게 대비해야하나’라는 주제로 3일 국회에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를 포함해 이용빈 의원 등 여당 인사 12명과 이명수 미래통합당 의원, 의료 전문가 11인 등이 참석했다.

신현영 의원은 개회사에서 “국내 많은 전문가들이 올 가을 코로나19 2차 대유행 시기가 앞당겨질 수 있다고 관측한다”며 “(지금은) 선제적 대응을 하기 위해 감염병 관리체계와 방역 현장 상황을 보완해야하는 시기”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토론회에서 학계에서 주신 개선 과제를 수용해 2차 대유행에 대비한 법적·정책적 뒷받침을 적극 추진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태년 원내대표도 축사에서 “오늘 토론회 결론이 법과 제도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민주당이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공통, 생활방역체계로의 전환 “철저한 대비 없이 성급했다”

전문가들은 이날 토론회에서 ‘정부가 성급하게 생활방역체계로 전환했다’고 입을 모았다.

엄중식 가천의대 감염내과 교수는 물류센터와 같이 밀폐된 공간에서 사람들이 밀집해 일하는 직장의 경우, 업무 과정 자체를 새로운 체계에 맞게 개선한 뒤에 생활 방역 체계로 전환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엄 교수는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거리두기를 유지하면서 감염병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작업환경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면서 “방역 물품들이 제대로 공급된 상태에서 안전하게 일을 하면 시간 당 어느 정도의 물류를 처리할 수 있는지, (거리두기를 위해) 어느 정도의 공간이 필요한지, 소비자들이 연장된 배송시간에 대해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또 “대기업의 경우에도 확진자가 발생한 후의 대응 매뉴얼은 있지만, 이전 단계에서의 방역 매뉴얼은 어떤 지침도 없다”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가겠지만 이런 부분들이 보완되지 않으면 추가 확진을 막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상일 울산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K-방역에 대해 아주 성공적인 사례로서, 전 세계에 수출해야한다고 얘기하지만 성공이라고 보기에는 이른 판단”이라며 생활방역체계로 전환하는 과정에서의 정부 실책을 지적했다. 이 교수는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생활방역 체계로 전환할 수 있는 기준으로 세 가지 조건을 제시했지만, 그 기준은 보건학적인 근거에 따라 마련된 것이 아니다”라며 “정부가 체계를 전환하려면 어떤 근거를 내세워야 하니 만들어낸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현 한국역학회 회장은, 생활방역체계로 전환되면서 많은 전문가들이 제안했던 ‘시설별 위험도 평가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김 회장은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는 교회, 콜센터와 같은 밀집 작업장, 유흥시설 등 시설 중심으로 전파됐다”며 “주요 전파 경로와 관련해 고위험시설에 대한 위험도를 어떻게 평가할 것이냐에 대한 부분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한 자리에 모인 의료 전문가 11인.
한 자리에 모인 의료 전문가 11인.

◆방역 정책 추진의 주춧돌, 전문가들 최다 공통 의견 “방역 데이터 정비 필요”

이날 토론회 참석한 전문가들이 가장 많이 공통적으로 제기한 의견은 '방역 데이터 정비'였다. 전영일 통계개발원장, 백경란 대한감염학회 이사장, 조성일 서울의대 보건대학원 교수, 이상일 울산의대 예방의학과 교수, 김석찬 가톨릭의대 호흡기내과 교수 등 총 5명의 전문가가 방역 정책 추진에 있어 방역 데이터 정비가 가장 '기초'라고 지적했다. 

김석찬 교수는 방역 데이터 시스템의 부재를 짚었다. 김 교수는 “(코로나 초기) 중환자실 호흡기 전문의 선생님들에게는 당시 코로나 중증환자 규모, 인공호흡기가 필요한 환자 규모, 환자 상태 등에 대한 자료가 전혀 없었다”면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중앙방역대책본부에서도 자료가 제공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데이터 부재 속에 당시 의료진들은 직접 전국의 중환자 음압병실과 직접 연락해 매일 집계하기에 이르렀다. 김 교수는 “우리 의료진들이 이제는 자료까지 만들어가며 환자를 전원 받아야 하는 상황이냐”며 “당시 (환자 데이터 집계를 통해) 지역 내 전원은 어느 정도 이뤄졌으나 지역을 벗어나는 경우 환자 전원이 절대로 원활하지 않았고, 그 과정을 거치면서 환자들이 많이 희생됐다”고 말했다.

이상일 교수는 “(현재는) 방역 관련 자료들이 쌓여가고 있지만 잘 정리되지 않아 질이 낮다”며 “(자료들이) 역학 모델링하기에 충분할 수 있도록 보충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역학 모델링 자료와 같은 양질의 자료들이 실시간으로 생산되고 있지 않다”면서 “코로나19에 대한 ‘학습’을 할 수 있도록 데이터 역량을 키워야한다”고 말했다.

백경란 이사장은 “정부와 의료진 사이의 정보공유와 정부 부처간 정보공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백 이사장은 “환자 질환력 조사를 위해 의료진이 심평원 자료에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입원 시 역학자료를 공유할 수 있다”며 “정부 내에서는 역학 조사 주체와 정부 보고체계를 단일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모두가 토론회에 집중하는 중에도···오후 확진자 통계를 확인하고 있는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

◆메르스는 두 달, 코로나는 다섯 달째···의료 자원 확충·지원 필요한 시점

이왕준 대한병원협회 코로나대응본부 실무단장은 “대유행이 와서 방역 시스템이 '셧다운' 되는 게 아니라 현재 상황을 그대로 버티고 있으면 몇 달 안에 시스템이 자폭할 수밖에 없다”며 “의료 인력 확충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 단장은 “격리병동에서 7명 환자를 보는 데에 최소 21명 간호사를 전담배치해야한다”며 “이는 간호 등급 2등급의 4배 인력역량”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인력 소모량이 많은데 코로나19는 벌써 5개월째 지속되고 있는 상태. 이 단장은 “격리병동 간호사들이 못하겠다고 쓰러지면 다른 간호사들에 대신 가라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이 단장은 코로나 사태 속에서도 “수가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단장은 “맹장이 터진 코로나 확진 환자를 음압수술실에서 수술하는 데에 총 10시간이 걸렸고 23명의 의료인력이 스탠바이했다”며 “이런 상황을 어떻게 일반 맹장수술과 똑 같은 비용을 적용하냐”고 말했다. 이 단장은 “‘감염병 수가’로의 전환이 되지 않으면 어떤 병원도 코로나 환자를 안 보려고 할 것”이라며 “폭탄돌리기 하는 상황을 막으려면 수가체계에 대한 전환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엄중식 교수는 “병원이 운영되기 위해서는 의료인력뿐 아니라 폐기물 관리자, 청소 노동자, 행정인력 등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지만 필요한 인력들을 병원에서 채용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엄 교수는 “채용이 안 되다 보니 기존 직원들이 장시간 일하게 되고 결국 위험도가 증가한다”며 “채용에 대한 보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동현 회장은 “대구에서 대규모 집단감염이 발생했을 때는 (발생지가) 한 군데라서 전국가적으로 매달려서 컨트롤 할 수 있었지만, 여러 군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감염이 발생했을 때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예비 임상인력 확보에 대한 계획이 있어야한다”면서 “의료인력들의 실전·가상 훈련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최소한 올해만큼은 방역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한다”며 “원격의료 등 논쟁을 불러일으킬 만한 정책은 내년으로 미뤄두는 게 어떨까한다”고도 말했다. 김 교수는 “최근 ‘한국판 뉴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보건의료 뉴딜’부터 시작해야한다”며 “방역 인프라를 위해서는 전폭적인 지지를 사회적 합의를 통해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발언하는 권준욱 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
발언하는 권준욱 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국립보건연구원장)도 참석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경청했다.

권 부본부장은 “생활방역체계가 부드럽게 정착되기 힘든 것은 우리나라보다 앞서 성공한 나라가 없기 때문”이라며 “내부적으로도 방역 전략에 대해 숙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수도권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하고 있는데 감염의 연결고리를 못 찾고 있는 경우가 있는 데다, 확진자 수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는 방역 전략의 방향 전환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권 부본부장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의상황”이라면서 “오늘 주신 말씀들 세부적으로 검토해서 방역 정책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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