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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감염 터져야 집합금지···서울시의 '뒷북' 행정엔 다 이유가 있다
집단감염 터져야 집합금지···서울시의 '뒷북' 행정엔 다 이유가 있다
  • 권민지 기자
  • 승인 2020.05.29 17: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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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노래방 집합금지, 확진자 발생 13일 후에야 비로소 집합금지 명령
방역 수칙 위반 확인돼야 집합금지 가능하고 구체적인 발동 기준은 ‘전무’
박원순 서울시장.(사진=서울시 제공)
박원순 서울시장.(사진=서울시 제공)

서울시가 특정 시설에서 대규모 확진자가 발생된 이후에야 집합금지 명령을 내리는 소위 ‘뒷북’ 대응을 반복하면서 서울시에 집합금지 명령을 내리는 일관된 원칙이나 기준이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태원 클럽에서 최초 확진자가 발생한 것은 지난 8일이었다. 서울시 연번 638번 환자 등 이날 하루에만 13명 단체 확진을 받았다. 서울시는 바로 다음날인 9일 긴급 브리핑을 통해 클럽, 감성주점, 콜라텍 등 모든 유흥시설에 대해 집합금지 명령을 내렸다. 

대규모 확진자 발생 이후에야 집합금지 명령을 내리는 뒷북 대응은 코인 노래방에서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9일 코인노래방을 방문한 도봉구 10번 환자가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러자 서울시는 22일 서울시 내 코인노래방에 집합금지 명령을 내렸다. 집합금지 명령을 내리기까지 13일의 시차가 있었던 것이다. 

◆방역수칙 위반 확인돼야 집합금지 명령 가능···명령 발동 기준도 명확치 않아 

이처럼 확진자가 대거 발생한 뒤에 집합금지 명령을 내리는 대신, 선제적으로 집합금지 명령을 내려 감염원을 차단할 수는 없는 것일까.

취재 결과, 집합금지 명령을 내리기 위한 서울시의 절차상 선제적인 대응은 사실상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절차상 집합금지 명령이 발동되려면 ‘방역 수칙 위반 사실이 적발’되는 단계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 서울시 관계자들의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익명을 요청한 서울시 관계자 A씨는 “코인노래방에 대한 집합금지 명령은 (확진자 발생 열흘 뒤인) 19일까지 이뤄진 코인 노래방 방역 수칙 이행 점검에 따라 내리게 된 것”이라며 “서울시 내 전체 코인노래방 569곳 가운데 44%가 7대 방역 수칙을 1개 이상 위반한 것으로 확인됐고, 이후 시정 여부를 2차 확인했으나 위반 상태가 확인되어 22일 집합금지 명령이 발동됐다”고 설명했다. 

도근호 서울시 문화정책과 주무관은 “방역 수칙 위반이 적발된 이후, 시정 계도를 하였는데도 계속해서 이를 거부하고 위반 행위를 지속할 시에 집합금지 명령을 발동할 수 있다”면서 “집합금지 명령이 내려지려면 방역 수칙 위반이 우선적으로 확인돼야 한다”고 말했다. 

본지 취재 결과, 집합금지 명령이 발동되기까지는 대부분 ‘방역 수칙 위반 적발→시정 계도→2차 적발→집합금지 명령 발동’에 이르는 절차를 거치게 되어있었다. 다만, 다중이용시설을 관리하는 부서별로 집합금지 명령을 발동하는 세부 절차나 기준에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정일 서울시 시민건강국 질병관리과 과장은 “시설에 대한 인허가를 담당하는 소관 부서별로 집합금지 명령을 각각 내린다”면서 “종교 시설은 문화정책과, 병원은 의료정책과, 사회복지시설은 사회복지정책과 등에서 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도근호 주무관도 “종교 시설 같은 경우에는 집합금지 명령을 내리면 헌법에서 보장하는 종교·신념의 자유가 제한된다는 특징이 있다”면서 “이처럼 시설별 특징이 다르기 때문에 집합금지 명령을 발동하는 절차나 과정은 다르다”고 밝혔다. 

◆집합금지 명령에 대한 기준 자체가 '부재'

문제는 부서별로 집합금지 명령을 내리는 명확한 ‘기준’ 자체가 없다는 점이었다.

가령 코인노래방 1개 업소에서 방역수칙 위반 사항이 적발됐다고 해서 전체 코인노래방에 대해 집합금지 명령을 내리는 것은 불합리하다. 이에 기자가 ‘적발된 업소가 전체 업소의 몇 %이상이 돼야 집합금지 명령이 발동하는지’ 묻자 서울시 관계자 A씨는 “코인노래방의 경우 전체 업소의 몇 % 이상이 돼야 집합금지 명령을 내리는지에 대한 기준은 없다”고 말했다. 

집합금지 명령을 '총괄'하는 부서도 없는 실정이다. 김정일 시민건강국 질병관리과 과장은 ‘감염병 관리에 대해서는 시민건강국이 총괄하는 부서가 아니냐’는 질문에 “집합금지 명령에 대해 총괄하는 부서는 없다”고 답했다. 김 과장은 단지 “감염병예방법 47조에 법적 근거와 절차가 명시돼있다”는 설명만 반복했다. 

하지만 '감염병예방및관리에관한법률'에 따르면 47조1호에 ‘특정 장소에 대한 일시적 폐쇄’ ‘출입금지’ 등을 명시하고 있기는 하나 폐쇄나 출입금지 조치가 '어떤 조건' 하에 내려지는 데에 대한 언급은 없다.

◆메르스는 주로 ‘병원 내 감염’···‘사회 시설 내 감염’에 대한 경험은 미비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선 선제적인 집합금지 명령을 발동할 필요가 있는데도, 이에 대한 일관된 기준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이번 사태가 전례가 없는 까닭에 여기에 대응할 대응책이 미처 마련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유행으로 우리 사회가 감염병 대응에 대한 대응능력을 상당 부분 향상시키긴 했지만, ‘병원 내 감염’이 특징이었던 메르스와 달리, 코로나19는 폐쇄된 공간에서 단체 활동을 하면서 감염이 발생하는 ‘사회 시설 내 감염’이 주를 이루고 있다.  

즉, 메르스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의료기관 내 감염병 예방 수준은 향상될 수 있었지만, 지역사회 시설에서 감염이 발생한 경험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특정 시설에 대한 집합금지 명령 발동 기준이 세부적으로 마련되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메르스 당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삼성서울병원에서 지난 18일 간호사 4명이 확진을 받았지만 추가 확진자는 3명에 그쳤고 22일 이후로 더 이상 확진자는 나오지 않고 있다. 

◆의료계 “기준에 따라 단계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했어야”

의료계는 이태원 클럽에서 대규모 확진이 발생한 이후 지속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의 단계적 완화”를 주문해왔다. 시설별 특징에 따라 다른 방역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대한의사협회는 이태원 클럽발 감염이 확산되고 있던 11일 성명을 내고 ”단시간에 집단적이고 폭발적인 감염 확산이 가능한 클럽, 대형주점 등의 유흥시설과 위락시설 등에 대해서는 행정력을 동원하는 고강도의 관리가 필요하다”고 밝히고 점진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염호기 의협 코로나19대책본부 전문위원회 위원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는 강화하는 기준도 있어야 하지만 완화하는 기준도 있어야 한다”며 “지역사회 감염률이나 지역사회 밀접도, 생계와의 관련도 등을 따져서 단계적으로 완화했어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시에서 7대 방역수칙 이행 여부를 기준으로 두고 집합금지 명령을 내리는 데 대해 염 위원장은 “7대 방역 수칙이 굉장히 복잡한 것도 문제”라며 “부처별로 (시설에 대한 규정을) 다르게 규정하고 있어서 ‘사우나는 안 되고 목욕은 된다’는 식”이라고 꼬집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 차원에서도 집합금지 명령이 뒤늦게 내려졌다는 지적에 대해 내부적으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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