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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일방통행식 원격의료 추진에 전공의들도 '반기'
정부의 일방통행식 원격의료 추진에 전공의들도 '반기'
  • 권민지 기자
  • 승인 2020.05.22 15: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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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협 “시·청·타·촉 없는 원격의료, 오진 최대 피해자는 환자" 성명
직접 만져보고 변화 감지해야 환자 살려···사고발생시 책임 누가 지나
"원격의료 확대는 의학의 기초와 치료의 근간 뒤흔드는 것" 주장

코로나19 사태를 틈타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원격의료 정책에 대해 일선 전공의들도 반기를 들고 나섰다. 정부는 사실상 원격의료를 '비대면 진료'라는 이름으로 바꿔 논란을 피해가려 하지만 의료계 내부의 반대 목소리는 점점 더 커져가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22일 성명을 통해 "원격의료 확대 사업을 통해 정부가 기대하는 것이 정말 환자들을 위한 '인술'인지 미지의 산업기반을 위한 '상술'인지 묻는다"며 최근 정부가 본격적으로 추진 의지를 드러낸 원격의료 도입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대전협은 “최근 코로나19 확산으로 정부가 임시적으로 허용한 전화상담·처방이 원격의료 제도화의 시작이 아니냐는 의료계의 우려가 커지면서, 전공의들 역시 ‘시·청·타·촉’ 없는 랜선 진료가 가져올 오진과 피해에 주목한다”고 말했다.

대전협에 따르면 실제로 일선 의료현장에서 환자들과 가장 밀접하게 교류하는 전공의들은 공통적으로 비대면 진료로 인한 오진 발생 가능성에 대해 우려했다.

외과 전공의 A씨는 “CT 상에서 장으로 가는 혈류가 정상적이더라도 환자의 배를 ‘만져보았을 때’ 압통이 있고 반발 압통까지 심해지는 그 순간의 변화를 감지해 수술을 결정하는 것이 의사”라며 “언제 환자를 수술방에 데리고 들어가느냐가 환자의 장을 10cm 자를지, 100cm 자를지 결정하고 이것이 곧 환자의 삶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A씨는 “비대면 진료 상황에서 의사로서 배운 대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면죄부가 주어질 수 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응급의학과 전공의 B씨도 “전공의 수련 중 첫 번째 깨달음은 환자는 결코 모든 것을 이야기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환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중에 의학적인 키 포인트(key point)가 분명히 존재하고, 이는 환자를 직접 보지 않으면 찾아낼 수 없다”고 말했다.

외과 전공의인 박지현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은 “가슴이 답답한 증상 하나에도 역류성 식도염과 만성폐쇄성폐질환 그리고 심근경색까지 감별해내는 것이 의사와 환자의 진찰 과정”이라며 “진찰 과정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전문가의 말을 무시하고 원격의료를 시행했을 때 환자 안전에 문제가 되는 상황을 책임질 수 있느냐”라고 말했다. 

전공의들은 비대면 진료 시 환자에게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에 제기될 수 있는 책임소재 문제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현재로선 그에 대한 해법이 마련돼 있지 않아 사실상 의사가 모든 책임을 감당해야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박지현 대전협 회장은 “합병증이나 사고 발생 시 그 몫은 오롯이 환자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의사에게 돌아간다”며 “그런 상황에서 이제 어떤 의사가 환자를 보겠다고 할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공의 B씨도 “원격, 비대면 진료로 제한된 환경에서 제한된 정보로 진료하게 되면 이에 따른 책임은 대면 진료 시와 같을 수 없다”며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것뿐 아니라 그에 따르는 문제에 대해서도 충분한 토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같은 전공의들의 우려는 단순한 기우가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법에 기반한 판례 등을 감안할 때 현실화될 가능성이 매우 큰 시나리오란 지적이다. 

대전협은 “최근 전화 통화만으로 전문의약품을 처방하는 것이 신뢰할 만한 환자의 상태를 토대로 한 진료가 아니라는 대법원의 판단이 있었다”면서 “전공의들은 이 와중에도 보건당국이 환자에게 위협이 되는 상황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에 분노한다”고 주장했다. 

원격의료 도입은 최근 10년 사이 정권이 바뀌는 동안에도 수 차례 논란이 되어왔던 의료계의 뜨거운 감자다. 최근엔 최근 여당이 주최한 포럼에 강연자로 나선 청와대 사회수석이 원격의료 도입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언급한 것을 계기로 논란이 재점화됐다.

하지만 의료계는 당사자인 의료인들과 아무런 협의없이 이뤄지는 정부의 일방통행식 정책 추진은 결국 환자를 큰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며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전협은 “최근 정부의 원격의료 확대 사업은 우리가 배운 의학의 기초이자 치료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며 “원격의료는 ‘선한의료’ ‘선도형 경제’도 아닌 단순 전화 진료이며, 초대형 병원과 일부 기업의 의료 독점으로 이어지는 또 다른 재난의 징후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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