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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 건강보험이 쏘아올린 '병원 대형화', 새로운 의료갈등 불씨되다
전 국민 건강보험이 쏘아올린 '병원 대형화', 새로운 의료갈등 불씨되다
  • 이용균 에이치앤컨설팅 부사장(연대보건대학원 겸임교수)
  • 승인 2020.05.20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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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특집 [의사신문 60년, 의료계 역사의 순간]
② 병원 대형화··· 건강보험 확대로 의료수요 급증, 대기업형 병원 등장
수도권 환자쏠림 가속화, 해외환자 유치 허용으로 의료 글로벌화 시작

한국의료를 잘 아는 일본의 병원전문가는 한국병원의 특징을 ‘병원의 대형화’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전세계 병상수 상위 병원 12곳 중 4곳이 한국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 처음 설립된 서양식 병원은 1885년도 광혜원이다. 개인적으로, 이후 한 세기 반동안 발전해온 한국병원의 성장을 시대별로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병원의 태동기(1885년~1970년)이다. 1885년 광혜원이 개설된 이후 동대문병원(1887년), 전주예수병원(1898년) 대구동산병원(1899년), 광주기독병원(1905년) 등이 차례로 개원했다. 한국병원의 태동기(1.0시대)에는 기독교병원 중심으로 성장, 발전하였다. 이 시기 최초의 민간병원은 백병원인데, 1932년도에 설립되었다. 이후 백병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재단법인으로 전환하였다.

둘째, 의료법인시대(1973년~1989년)이다. 한국병원 ‘2.0시대’라 할 수 있는 이 시기엔 의료법인병원이 도입됐다. 앞선 태동기를 거치면서 국내 의과대학에서 수련한 의사들이 소규모로 개인병원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병원 수가 증가한 시기이다. 개인 병원들은 1973년 일본식 의료법인제도를 정부가 도입하면서 ‘의료법인 시대’의 새로운 양상으로 발전하였다. 그 당시 다수의 개인병원들이 의료법인병원으로 전환하였는데, 그 배경에는 조세상 인센티브제(법인세, 취득세)가 주요 동인이었다.

셋째, 한국병원의 전 국민 의료보험시대(1989년~2010년)이다. 한국병원 ‘3.0시대’에 해당한다. 1989년 전국민 의료보험이 도입될 당시 병원공급 병상 수는 7만7000병상으로 인구 천명 당 공급병상수가 2.8병상 수준으로 열악한 상황이었다. 정부는 전국민 건강보험시대에 의료사각 지대를 없애기 위해서 OECF(일본해외경제협력기금)차관을 들여와 전국 군 단위 지역까지 차관병원을 건립토록 지원하였다.

전 국민 의료보험이 도입되면서 의료수요가 팽창하고 병상공급이 함께 증가하면서 의료서비스 이용률이 획기적으로 증가해 ‘병원의 전성기’가 시작되었다. 이 시기에 대기업형이라 할 수 있는 서울아산병원(1989년)과 서울삼성병원(1994년)이 개원했다.

특히 이전까지 의료서비스의 중심축은 의료공급자 중심으로 운영되었지만, 두 병원이 의료시장에 진입하면서 의료공급자에서 의료소비자로 중심축이 이동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시기의 특징은 한마디로 양적 성장이다. 그 예로 PET-CT는 2000년 단 1대에 불과했지만 2010년도 10년간 144대로 증가하였고, MRI는 2000년도에 비해서 267.7%, CT는 27.9%가 늘어났다. 또한, 이 시기부터 국내에서 환자들이 수도권의 환자쏠림과 ‘의료쇼핑’ 현상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마지막으로 한국병원의 글로벌화 시대(2010년~현재)이다. 국내에서 2010년부터 의료기관의 외국인 환자의 유치ㆍ알선이 허용되면서 의료의 글로벌화가 시작되었다. 의료관광객의 유치를 정책목표로 한 의료관광 비자제도 등 해외환자 유치정책이 이듬해에 도입되었다. 그 이전에는 의료영역을 국민의 건강 추구를 위해서 국가가 보장하는 공공재로 인식하여 건강보험 중심의 정책을 추진해 온 것을 감안하면 새로운 정책전환점이었다.

이같은 한국의료 ‘4.0시대의 또 다른 현상은 본격적인 ‘대형병원의 시대’가 열렸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이때부터 국내 병원 중에서 진료수입 1조 클럽에 가입하는 의료기관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그 대표격인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등이 2000년대 초반에‘1조 클럽’에 가입했다.

한국병원의 글로벌화 시대가 열렸지만 의료가 갈수록 산업화되는 데 따른 갈등은 여전히 남아있다. 국내 의료의 글로벌화와 의료산업화에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의료서비스 고도화와 산업화를 통해서 의료경쟁력 제고 효과, 고용창출 등 순기능을 강조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의료산업화에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의료서비스는 국민의 권리로서 국내 공공의료가 취약하기 때문에 의료산업화는 의료형평성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 2015년에 발생한 메르스(MERS) 사태는 국내 의료산업의 대형화의 문제점이 외부의 시각을 통해 드러난 경우라 할 수 있다.

즉, 당시 우리나라를 방문한 WHO(세계보건기구) 합동평가단에서 국내의료체계의 문제점으로 의료쇼핑 문화와 대형병원으로 환자 쏠림현상 등 의료전달체계에 대한 부분을 주요 문제점으로 지적하였다.

이에 정부는 민간합동으로 의료전달체계 개선협의체를 구성하고, 협의체의 주요의제(agenda)로 △일차의료 역할정립 및 활성화 △대형병원 쏠림완화 △지역 중소병원 역할 강화 △의료기관간 협력 모델 등을 목표과제로 제시하였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협의체의 활동성과를 평가하면 각 아젠다별로 관련단체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되어 합의도출에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절반의 성공도 거두지 못한 셈이다.

대표적인 예로, 의료기관별 병상의 합리적 배치를 위해서 병원은 입원중심, 의원은 외래중심으로 기능을 제시하여, 병원은 외래환자의 축소와 의원은 입원병상의 축소가 필요하였지만 한걸음도 진전하지 못했다. 또한 지역병상총량제도 지방자치단체장과 중앙부처의 입장에 차이가 노출되어 진전이 없었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제기되고 있는 비대면진료, 의료기관 기능변화 및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위한 정책합의와 집행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현재 국내의료 공급을 소유주체별로 구분해 보면 공공기관, 법인, 개인이 3대 공급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병상 기준으로 의료공급의 비중으로 살펴보면 공공의료기관은 10% 수준이고, 민간의료기관인 의료법인과 학교법인(비영리기관), 개인(영리기관)이 90%를 차지하고 있다. 이 같은 한국의 공공의료기관 공급 비중은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그 동안 수차례 공공의료 확대 드라이브 정책을 꾀했지만 언제나 공공병원의 증가율보다 민간병원의 증가율이 높게 나타나 정책실패(policy failure)현상이 발생하였다.

그 결과 국내 의료법인의 공공법인화에 대한 아이디가 수차례가 제기되었다. 국내 의료법인은 일본식 의료법인 중에서 재단형 의료법인제도를 도입하였는데, 그 특징은 의료법인은 투자지분 불인정, 이익배당 제한이다. 현재 국내 의료법인은 민법상 비영리기관이지만 법제상 다소 애매한 위치에 놓여있다. 민법상 비영리기관에 해당하는 법인으로는 학술, 종교, 자선, 기예, 사교, 기타 영리 아닌 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법인이 있다. 의료법인은 기타 비영리기관으로 이윤추구 금지, 소유자 지분 불인정 규정이 적용되고 있으며, 의료법인의 퇴출구조(exit plan)가 미비하여 논란이 되고 있다.

사실 국내 의료법인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일본에서도 ‘의료기관의 영리화’는 사회적으로 뜨거운 이슈이다. 일본에서는 의료기관 영리성에 대한 사회적 이슈를 영리성에 시비보다 의료의 영리적 행동과 서비스 내용을 본질적인 문제점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코로나사태는 진행형이다. 지난 4년 전 발생한 메르스(MERS)는 국내 의료전달체계의 문제점이 드러난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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