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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통일된 목소리 못낸 의사들, 똘똘 뭉친 약사들에 패하다
[창간특집] 통일된 목소리 못낸 의사들, 똘똘 뭉친 약사들에 패하다
  • 김종근 전 대한개원의협의회장(김종근외과의원 원장)
  • 승인 2020.05.19 15: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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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특집 [의사신문 60년, 의료계 역사의 순간]
① 의약분업··· 올 7월 시행 20주년, 건보와 함께 의료계 대변혁 몰고와
협상 과정중 복지부에 밉보여··· 한때 개선됐던 의료제도마저 원상복귀

우여곡절 끝에 진통을 겪으며 시행된 의약분업 제도가 2020년 7월이면 시행 20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의약분업제도는 의료보험제도와 더불어 서양의학 도입 이래 한국 의료계의 의료관행과 행태에 대변혁을 몰고 온 대표적인 제도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중요성에 비추어 볼 때 전문가들의 주도 아래 환자 치료에 지장을 주거나 치료원칙에 위배되는 방안이 마련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하지만 당시 시행에만 초점을 맞춘 김대중 정부가 비전문가인 시민단체들을 앞세워 편법을 동원해가며 제도 시행을 일방적으로 밀고 나가는 바람에 전문가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채 형평성이 결여된 제도로 실시하게 되었다.

어느덧 시행 20년에 즈음하여 추진 배경 및 실시과정을 되돌아봄으로 앞으로 의료정책에 임하는 의사들의 자세를 되짚어 보는 계기로 삼는 것도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1953년 12월에 제정된 약사법 부칙 제 3조에 따라 의사가 약을 조제하고 약사에 대해선 의사의 처방 없이도 임의조제를 허용하는 과도기적 법체계를 운영하여 왔다.

이에 대한의사협회는 약의 자유판매로 인한 폐해의 심각성을 수 차례 지적해 왔다. 의약분업 시행 전이라도 최소한 항생제, 스테로이드 제제, 향정신성의약품만이라도 약국의 자유판매를 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전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약국의료보험이라는 제도를 통해 의사의 지시나 감독 없이 약사들이 문진을 통해 진단 행위를 자행하고 임의조제하는 약사들의 무면허 의료행위가 극에 달해 의료종주단체인 대한의사협회로선 이를 하루 빨리 시정하여 의료계의 질서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연유로 국민건강의 지킴이로 자부해온 대한의사협회로서는 ‘약의 오·남용으로부터 국민건강을 수호해야 한다’는 의약분업의 ‘명분’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이미 의협은 1980년부터 매년 대의원총회에서 의약분업을 집행부 수임사항으로 결의해왔고, 집행부는 의약분업 실시에 대비하여 의약분업이 약의 오·남용 방지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어 치료원칙에 위배되거나 지장을 초래해서는 안 된다는 대원칙을 세워놓고 특별위원회로 의약분업대책위원회를 설치, 운영하며 대비해 왔다.

의료 직역간에 이해가 엇갈리고 사회 여건상 실시가 지체되던 의약분업은 엉뚱하게 한약 주도권 다툼으로 야기된 한약분쟁 해결과정에서 급물살을 타게 됐다. 즉, 약사들은 한약조제권을 차지하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의약분업을 주장하게 되었고, 한의사들은 약사들에게 조제권을 주기 싫어 한약 조제만 전문으로 하는 한약사 제도 신설을 주장하면서 결국 한의학의 의약분업 실시를 전제로 의약분업 시행안이 포함된 약사법 개정안이 1993년 12월 16일 국회를 통과한 것이다. 개정안엔 1997년 7월에서 1999년 7월 사이에 의약분업이 시행되도록 법에 명시되었다.

이에 의거해 김대중 정부는 1996년 11월 8일 국무총리실 산하에 의료개혁위원회를 설치하고 의약분업을 중장기 추진 과제로 선정했다. 당시 서울대 의료관리학교실의 김용익 교수가 중심이 되어 실시를 서두르게 된다.

의약분업이 성공적으로 정착되려면 정부가 주도하고 실시주체인 의사와 약사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함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당시 두 단체는 의약분업 실시에 임하는 자세에서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먼저 약사회는 그 전에 있었던 한약분쟁시 한약의 조제권을 차지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의약분업을 주장했지만 내심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자유로이 반(半)의사행위를 할 수 있는 당시 제도의 변화를 결코 원치 않았었다. 하지만 약사회는 한약분쟁시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분열상을 노출하여 한의사들에게 완패 당한 것을 교훈삼아 의약분업 추진 시에는 집행부를 중심으로 굳게 뭉쳐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이는 정부의 비호 아래 의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것을 얻어내는 결과를 가져왔다.

대표적으로 알약을 주더라도 알 수대로 조제일수를 인정해주고 분업 초기에 주사약제도 약사들이 취급하게 하여 조제료를 주던 것을 들 수 있다. 심지어 의사회의 격렬한 반대로 무산되었지만 준비과정 중에는 약사들의 손실을 보전해 줘야 한다는 구실 아래 항생제의 일부를 일반의약품으로 분류해 놓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반면 의사협회는 대외적으로는 의약분업에 찬성했지만 막상 실시가 다가오자 기존에 약을 취급하면서 얻었던 이익이 사라지는 데 대한 불만이 확산됐다. 내부적으로 반대 기운이 표출되면서 각 과별로 새로운 단체가 생겨나 각기 다른 주장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겉으로는 제대로 된 의약분업을 하자면서도 의사들의 주장이 하나로 통일되지 않자 정부나 시민단체들에는 의약분업을 원치 않는 것처럼 인식됐다.

더구나 당시 의약분업은 대통령 공약사항으로, 여당으로서는 반드시 실행해야 할 과제였다. 정부는 약사회를 붙잡기 위해 약사회에 치우친 시행 방안을 마련할 수 밖에 없었고 이 과정에서 의사들은 상대적으로 많은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의료계는 역사상 최초로 전국의사 총파업이라는 극약 처방까지 썼지만 총파업 해결 협상과정에서 보인 미숙한 대처로 복지부의 미움을 사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의료보험 시행 과정 중 의사들의 노력으로 개선된 제도마저(예를 들어 야간가산율) 하루아침에 원상복귀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의료계는 이처럼 의약분업 시행 과정에서 겪은 경험을 통해 나라의 정책이 국민을 위한 최선의 방안을 찾기 보다는 정부의 뜻에 따라 다르게 결정될 수도 있다는 점을 깨우쳐야 한다. 또한 정책이 어떤 과정을 통해 누구에 의해 결정되는지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엉뚱한 방향으로 ‘헛힘’을 쓰면 시행착오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의사 회원들의 뜻을 한곳으로 모아 한목소리를 낼 때 우리 의료계의 힘은 몇배 더 강해질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 집행부를 우습게 보면 상대편도 똑같은 시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한다.

* 참조, 김종근 편; 현장에서 본 90년대 의약분업사, 2007년, 한국의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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