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어느덧 동행이 되어버린 부자(父子) 의사
[특집]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어느덧 동행이 되어버린 부자(父子) 의사
  • 홍미현 기자
  • 승인 2020.06.08 15: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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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최고(最古)의 동네병원 ④] 父子가 운영하는 송 신경정신과의원
3대째 의사집안···송수식 박사, 27년간 TV 출연하며 의약분업서 큰 역할
송성용 원장 "아버지가 의사 될 '터' 만들어줘"···아내도 정신과 전문의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 하지만 선을 넘지 않고 서로의 진료를 존중하는 곳.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서울 종로의 ‘송 신경정신과의원’ 이다. 

이곳은 국내에서 정신과 분야의 대표 '명의'로 꼽히는 송수식 박사와 그의 아들 송성용 원장이 함께 운영하고 있다. 지난 1996년 송 박사가 단독으로 개원해 운영하다 지난 2006년부터 아들 송성용 원장이 합류해 부자가 함께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부자가 대를 이어 의사가 되거나 함께 병원을 운영하는 경우는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3대째 의사 집안은 아직도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이들 가문은 '3대째' 의사인 것으로 유명하다. 송성용 원장의 할아버지부터 시작해 3대째인 송 원장에 이르기까지 모두 의사의 길을 걷고 있다. 게다가 송 원장의 아내도 정신과 전문의다. 이제는 '정신과 의사'를 가업으로 삼고 있는 셈이다. 

3대에 걸쳐 의사를 천직으로 삼게 된 데에는 남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특히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병원을 운영하다 보면 각자의 병원을 운영할 때와는 다른 나름의 노하우도 필요할 것이다. 송 박사와 송 원장을 직접 만나 3대째 의사 집안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송수식 박사, 어릴 적 아버지 도와 환자 상처 꿰매

아버지 송수식 박사는 정신과 분야의 명의로서 오래전부터 의료계 안팎에 이름을 알렸다. 27년간 TV 프로그램을 통해 시청자들의 ‘건강’ 길라잡이 역할을 하면서 정신의학을 대중적으로 이끌어 낸 인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의료계 내에서도 주요 보직을 맡아 의료계 변화의 중심에 서 있었다. 

송 박사가 의사의 길을 걷게 된 건 순전히 그의 아버지 덕분이었다. 부친은 일제강점기 시절 보건의료 정책의 일환으로 일정한 지역 안에서만 의원을 개업해 의사활동을 할 수 있었던 ‘한지의사’였다. 

그는 "아버지는 새벽에도 찾아오는 환자들을 마다하지 않았다"면서 "사람을 살린 뒤 흠뻑 젖은 옷을 입은 채 집에 들어오는 아버지의 모습이 좋았다"고 회상했다. 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존경하는 인물을 써 내라고 했을 때 우리가 흔히 아는 위인이 아닌 부친의 이름을 써넣을 정도였다.

의료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보니 환자를 치료할 손이 항상 부족했다. 지금 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송 박사는 고등학생 때부터 자연스레 부친의 옆에서 환자의 상처를 꿰매고 치료했다.

송 박사는 "원래 의사보다 연예인의 길을 가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부친의 진료실에서 보고 배운 의술은 그를 의료인의 길로 이끌었고, 결국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하게 됐다. 그는 우리나라 의사면허 110번을 받았다. 

◆우여곡절 끝 정신과 전공해 맹활약한 , 곁에서 지켜본 아들은 3대째 의사의 길로 

막상 의과대학에 진학했지만 송 박사가 실제 의사가 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정직하고 '대쪽'처럼 곧은 성격 때문이었다. 의대 학부 3학년 때 '등록금 인하' 데모를 하다 퇴학을 당한 것이다.

한동안 동대문시장에서 미역장사를 하며 인생을 배웠다. 이후 다행히 복학할 수 있었지만, '데모 주동자'라는 꼬리표가 이번엔 인턴 시험 불합격 사유로 이어졌다. 다행히 무의촌 진료실에서 만났던 정신과 전공 은사 덕분에 '스트레이트 인턴' 제도를 통해 정신과 의사가 됐다.  

송 박사의 대쪽 같은 성격은 의료계에 들어와 비로소 빛을 발했다. 대한신경정신과개원의협의회를 설립해 초대 회장을 맡았고, 2000년 의약분업 당시에는 전국의사 총파업을 이끌어 냈다. 특히 ‘당신의 아내가 처방전을 들고 온 동네를 돌아다녀야 되겠습니까’라는 그의 슬로건에 힘입어 정신과는 '의약분업 제외 진료과'로 분류되기도 했다. 

동네 환자를 치료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고 자란 송 박사가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듯, 이번엔 의료계에서 맹활약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본 아들이 그 영향을 받았다. 송성용 원장 또한 3대째 의사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송 원장은 "어린 시절, 할아버지 댁에 가면 의료기구를 가지고 놀게 했다"며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직접 '의사가 되어라'고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두 분의 행동은 이미 내가 의사의 길을 걷기 위한 터를 만들어준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의사가 된 덕분에 의사인 지금의 아내도 만나게 됐다.

특히 송 원장은 아버지의 전공과목까지 이어받았다. 그는 "아버지가 정신과 의사로 워낙 유명하다보니, 대학 시절부터 정신과 선생님들과 관계도 많았다"며 "또 매일 6시에 퇴근하고 주말이면 가족과 함께 여유를 즐기는 아버지를 따라 정신과를 선택하게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사람에 대해 관심이나 호기심이 많고,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면 잘 들어주는 성격도 정신과를 전공하게 된 이유 중 하나라고 한다. 환자와 소통하면서 환자의 삶에도 관심을 둬야 하는 정신과 의사가 자신과 잘 맞았기 때문이다. 

◆父子" 의사의 길, 단 한번도 후회한 적 없어"···프라이버시 철저히 지키며 병원 운영 

송 박사와 송 원장은 의사의 길을 가고 있는 것에 대해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내가 가야할, 이미 정해진 길이 ‘의사’였다"며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다"고 입을 모았다. 

가족 사이에도 의료기관을 함께 운영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같은 전공분야라면 더더욱 그렇다. 진료부터 처방, 병원 경영에 이르기까지 서로간에 의견이 충돌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부자는 함께 병원을 운영하는 동안 별다른 갈등 없이, 묵묵히 지역 환자들을 돌보는 데 집중하고 있다. 

비결은 ‘예의와 존중’이다. 송 박사는 비록 아들이지만 송 원장을 '책임원장'으로서 예의를 갖춰 대우한다. 진료나 처방 등에 대해서도 일절 간섭하지 않는다고 한다. 각자의 방식대로 환자들을 돌보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에 서로 프라이버시를 철저히 지킨다는 것이다.

아들과 함께 병원을 운영하는 장점으로 송 박사는 “긴 시간동안 많은 환자를 진료해 온 노하우를 전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진료 케이스를 서로 공유·논의하면서 배울 수 있어 좋다"고 설명했다. 또한 "처음엔 햇병아리 같던 아들이 어느덧 진정한 정신과 의사로 커가는 과정을 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내 진료과목을 가업으로 이어줘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송 원장도 아버지와 함께 해온 시간에 만족해했다. 그는 "아버지의 환자를 예진하는 경우가 있는데, 나중에 환자 진단 결과를 토론하는 시간을 가지며 배워나갈 수 있었다"면서 "아버지가 아닌 다른 원장이면 자기 진료에 대한 내용을 물을 수도, 공유할 수도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다양한 환자군이 형성이 된다는 것도 좋은 점이라고 한다. 즉, 나이든 환자는 비슷한 시대와 삶의 풍파를 겪은 송 박사를 찾아 마음을 달래는 반면, 젊은 층 환자들은 송 원장을 찾는 경우가 많아 다양한 세대가 이들 병원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4대째 의사집안 탄생할까···송 원장 "의사 사회도 힘들지만 아들이 한다면 말리지 않을 것"

송 신경정신과는 지역 의원임에도 전국 각지에서 환자가 찾아온다. 지방 환자 비율이 40%를 차지할 정도라고 한다.

과거엔 이들 병원을 찾는 사람의 90% 정도가 신경증 환자였다고 한다. 즉, 사고나 감정 등 현실 판단 능력을 잃은 정신병이 아닌, 삶의 의욕이 없거나 불안증, 불면증 등의 환자가 주를 이뤘다. 이에 비해 최근에는 사회가 각박해지고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지면서 공황장애나 불면증, 우울증(자살)등 환자가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했다.

송 박사는 "정신과는 '환자의 인생과 삶'을 다루는 진료과로, 의학적인 실력과 경험은 다르다"며 "연륜과 인생의 깊이를 느낄 수 있어야 진정한 정신과 의사가 된다"고 말한다. 이에 송 원장은 "환자의 삶을 들어주고 공감하는 것이 정신과 의사가 가장 먼저 갖춰야 할 자세"라며 "환자의 편에서, 환자의 말을 듣고 거짓없는 진실된 진료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자의 진료 철학엔 다소간의 차이가 있지만 두 사람 모두 환자의 입장에서 환자를 치료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이들 부자 모두 의사 아버지를 보고 자란 끝에 의사의 길로 접어들었지만 결국 의사가 되기로 한 건 아버지의 권유가 아닌 본인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아들에게는 의사가 되라는 얘기를 하지 않았던 송 박사가 요즘 손주가 뒤를 이어주기를 은근히 바라는 눈치라고 한다. 

송 원장은 "아버지의 바람은 3대가 함께 의사 가운을 입고 사진을 찍는 것"이라면서 "(제 입장에서도) 현재 고등학생인 아들이 의사를 한다면 말리지는 않을 것"이라며 웃었다.

그는 "의사인 동시에 정신과를 선택한데 대해 단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며 "의사 사회가 점점 어렵고 힘들어지고 있지만 내 일에 자부심을 갖고 살아온 덕분에 만족감이 높다"고 했다. 그러면서 "할아버지와 아버지, 내가 그랬던 것처럼, 스포츠팀의 닥터가 되고 싶어하는 아들에게도 이 같은 정신이 이어질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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