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할 땐 언제고"···급물살 타는 ‘원격의료’ 도입 움직임에 의료계 '자가당착' 반발
"반대할 땐 언제고"···급물살 타는 ‘원격의료’ 도입 움직임에 의료계 '자가당착' 반발
  • 홍미현 기자
  • 승인 2020.05.14 18: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청와대 수석 "긍정적 검토" 발언 나오자 기재부 차관 "적극 검토 필요" 맞장구
강원도 시범사업, 신청 0→7곳···서울대병원장 "온라인 대면의료 도입할 시기"
의료계 반발 목소리 확산···최대집 "대면진료가 원칙···도입강행시 투쟁 나설 것"

코로나19 사태와 집권여당의 총선 압승을 계기로 현행법상 금지돼 있는 원격의료를 허용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이 점차 가시화되는 분위기다. 대통령과 경제부총리가 '한국형 뉴딜'을 통해 비대면 의료를 포함한 비대면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잇따라 밝힌 데 이어, 이번엔 청와대 관계자가 원격의료를 직접 언급하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과정에서 정부가 직접 당사자인 의료계와는 아무런 논의를 하지 않고 있어 코로나 사태 이후 원격의료와 관련해 별다른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던 의료계의 불만이 쌓이고 있다. 

원격의료와 관련해 가장 최근 논란이 된 것은 김연명 청와대 사회수석비서관의 발언이었다. 김 수석은 지난 13일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포스트 코로나 전망과 문제인 정부 과제’를 주제로 열린 더불어민주당 21대 국회의원 당선인 혁신포럼 강연에 연사로 나서 “원격의료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강연은 비공개였지만 일부 발언이 외부로 알려졌고, 김 수석은 강연이 끝난 후 기자들에게 "한시적으로 허용한 전화 상담진료가 17만건 정도 나왔다"며 "자세히 분석해서 장단점을 따져보겠다"고 말했다. 정부 차원에서 원격의료에 대한 검토가 있었는지에 대해선 "긍정도 부정도 아니다"라고 답해 여운을 남겼다. 

14일에는 김용범 기획재정부 제1차관이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3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 결과 브리핑에서 “기재부도 비대면 의료 도입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기본 입장을 지속적으로 견지하고 있다”며 이같은 기조를 이어받았다.

김 차관은 지난 7일 브리핑에선 '한국판 뉴딜'이 원격의료를 제도화하는 것은 아니라며 원격의료 도입에 조심스러운 입장을 나타냈었다. 하지만 이날은 "그동안 밝혔던 원격의료 도입과 관련한 입장이 김 수석의 발언과 방향성에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청와대와 같은 입장임을 분명히 했다. 

분위기가 달라진 건 정부뿐만이 아니다. 지난 13일 중소벤처기업부는 제4차 규제자유특구 규제특례등심의위원회를 통해 원격의료를 실증하는 강원 디지털헬스케어 특구에 사업자 13곳을 추가 지정했다고 발표했다.

추가 지정된 곳엔 민간의료기관인 1차 병원 7곳이 포함됐다. 지난해 7월 디지털헬스케어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된 강원도는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실시할 의료기관을 모집했지만 신청자가 없어 사업이 취소될 위기를 맞았지만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7곳의 참가자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정부가 점점 노골적으로 원격의료를 허용하려는 움직임을 내비치자 그동안 잠잠했던 의료계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14일 자신의 SNS를 통해 “환자 진료의 목적은 환자에게 최선의 진료를 제공하는 것으로, 대면진료가 원칙”이라며 “대면 진료가 불가한 곳에서 예외적으로 허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회장은 특히 “원격의료는 환자의 의료 이용 편의성 기준이나 비용 효과성 기준으로 평가돼서는 안된다”며 "세계 어느 나라 정부가 코로나19에 목숨을 걸고 진료하는 의사들이 반대하는 정책을 시도하려고 하느냐. 엄청난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정부가 코로나19 혼란기를 틈타 원격의료 도입을 강행할 경우 ‘투쟁’에 나설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원격의료 도입에 공식적으로 반대입장을 표명했던 박근태 대한개원내과의사회 회장도 이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원격의료는 내과와 직접 연관이 있는 제도로, 대면진료 원칙을 훼손하는 원격진료는 반대”라며 “원격의료가 시행되면 오진의 위험성과 함께 의료전달체계가 붕괴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동석 대한개원의협의회 회장도 본지와의 통화에서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 확산 시국에 원격의료 추진을 운운하는 정부에 대해 '코로나 방역이나 제대로 하라'고 이야기하고 싶다"고 꼬집었다. 

특히 김 회장은 “그동안 정부가 원격의료를 도입하기 위해 수차례 시도했지만, 결국 '진료는 대면진료가 원칙이라는 것을 훼손시킬 수 없다'는 것이 정치권의 주장이었고, 현재 여당도 과거 원격의료 도입에 반대해왔다”며 현 정부가 원격의료를 추진하는 것은 자가당착임을 지적했다. 

강석태 강원도의사회 회장은 정부의 일방통행식 정책 추진에 불만을 드러냈다. 강 회장은 “디지털헬스케어 특구 사업과 관련 강원도는 '의료계와 합의점을 찾자'고 하지만, 사실상 독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의료계도 도와줄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일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강 회장은 “'슈퍼 여당'이 들어선 마당에 원격의료 도입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밀어붙일 수도 있지만, 전화진료와 원격진료는 엄연히 다르다”며 “제도 시행에 앞서 원격진료의 대상 환자나 오진 등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 나타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의료계와 충분히 논의하고 합의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원격의료 추진 방침과 관련해 아직 의협은 협회 차원의 공식적인 입장은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박종혁 의협 대변인은 “원격의료는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할 문제로, 정부가 의료계 의견에 귀를 기울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정부에서도 원격의료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도입되지 않았던 이유는 '국민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이었다“면서 ”의료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돼야 국민 건강에 도움되는 의료제도가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원격의료 도입에 ‘반대’ 입장이 다수인 개원가와 달리 병원계에서는 정부의 이같은 입장에 대해 일부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김연수 서울대병원 원장은 지난 13일 ‘코로나 사태 이후 세상이 어떻게 바뀔 것인가’를 주제로 열린 유튜브 웨비나(웹 세미나)에서 “메르스, 코로나19로 수백명이 목숨을 잃어 가슴이 아프지만, 이를 교훈삼아 더 나은 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다면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며 “앞선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규제에 발목잡혀 원격의료를 시행하지 못하는 국내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이어 "미국이나 일본은 물론 중국, 동남아까지 원격의료를 시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아마존, 구글 등 신성장 동력으로 확대 중"이라며 "이번 경험을 발판 삼아 온라인으로 대면하는 의료를 도입해 볼 시기"라고 제안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