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한동네서 63년, 떠난 주민도 찾아오는 동네 터줏대감
[특집] 한동네서 63년, 떠난 주민도 찾아오는 동네 터줏대감
  • 권민지 기자
  • 승인 2020.05.21 05: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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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최고(最古)의 동네병원 ③] 1957년 성북구 동소문동에 개원한 '김앤김안과'
대한안과학회장 역임한 고 김정환 원장이 설립, 아들 김재도 원장이 이어받아
안과질환 흐름 한눈에 보여···이사가서도 찾아오는 환자에 "그게 오래된 병원 장점"
김앤김안과 원장실 김재도 원장의 책상.
김앤김안과 원장실 김재도 원장의 책상.

책상 앞엔 포스트잇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종이마다 안질환 병명과 의학용어들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김재도 김앤김안과 원장은 선친이 1957년에 개원한 이 병원에서 이미 30여년 동안 안과 진료를 보고 있는 베테랑 안과 의사다. 하지만 여전히 공부에 여념이 없었다.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에 자리한 김앤김안과는 이 지역 사람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소위 동네의 '랜드마크'다. 6·25전쟁의 포화가 채 가시기도 전, 현재 병원 건물이 있는 곳 길 건너편에서 처음 개원해 같은 동네를 쭉 지켰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특히 '김앤김'이라는 병원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곳은 한때 두 김씨, 즉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운영해 더욱 유명해졌다. 

지난 8일 오후에 찾아간 병원은 꽃가루가 흩날리는 시기여서인지 5층짜리 건물이 환자들로 북적거렸다. 진료 중에 짬을 낸 김재도 원장은 원장실에 들어서자마자 책 한 권을 꼭 안은 채 기자의 질문에 답했다.

김재도 원장이 두 손에 꼭 쥐고 있던 책. '김정환박사 화갑기념논문집'과 고 김정환 원장의 흑백사진 몇 장.
김재도 원장이 두 손에 꼭 쥐고 있던 책. '김정환 박사 화갑기념논문집'과 고 김정환 원장의 흑백사진 몇 장.

김재도 원장이 두 손에 꼭 쥐고 있던 책은 지난 1988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안과학교실 동문회에서 발간한 ‘김정환 박사 화갑기념논문집’이었다. 그 안에는 1957년 김앤김안과를 처음 연 고 김정환 원장의 초등학교 시절부터 세브란스 1학년, 고려대병원 교수 시절까지 지나간 세월이 담겨있었다. 책 사이사이에 빛 바랜 종이사진이 끼어있었다. 흑백 사진 속 고 김정환 원장은 뚜렷한 이목구비가 눈에 띄는 ‘청년’이었다. ‘아버지가 그립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재도 원장은 잠시 침묵하다 “그립죠”라고 짧게 한마디 했다. 대한안과학회장을 역임했던 고 김정환 원장은 지난 2006년 2월 별세했다.

고 김정환 원장과 김재도 원장.
고 김정환 원장과 김재도 원장.

김재도 원장은 고 김정환 원장과 12년 동안 부자(父子)가 함께 진료를 봤다. ‘근무지에서 아버지와 함께 일하면 불편하지 않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 원장은 “따로 인사드리지 않아도 항상 뵐 수 있어 좋았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김재도 원장은 아버지와 함께 병원에서 진료를 보던 시절의 기억을 하나둘씩 더듬었다. 1980년 전국민 의료보험이 도입된 뒤 아버지가 백내장 수술을 중단했다고 한다.

김 원장은 “당시에는 의료보험이 도입되면 의사들이 망하는 줄 알았다”면서 “의료보험이 도입된 뒤 선친께서 백내장 수술을 더 이상 안 하셨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한동안 중단했던 백내장 수술을 아들인 김재도 원장이 병원에서 일하게 되면서 다시 시작했다고 한다. 김 원장은 “선친께서 못했던 것을 제가 이어서 하게 되니 굉장히 좋아하셨다”고 말했다. 

아버지 김정환 원장은 연세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고려대학교 병원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지금의 김앤김안과(개원 당시 '김정환안과')를 개원했다. 김재도 원장은 “예전에는 대학 교수들이 병원 운영을 할 수 있었다"며 "낮에는 대학에서 강의하고 밤에는 개원 병원에서 진료를 했다”고 말했다. 병원이 성북구 동소문동에 자리잡게 된 것은 당시 아버지의 학교와 가까웠던 영향이 크다. 

의대에 진학한 김재도 원장이 안과를 선택한 데에는 역시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김 원장은 “아무래도 보고 자란 게 그거(안과)니까 안과의사를 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가톨릭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성모병원에서 수련했다.

막상 안과를 전공하게 된 김 원장은 “대부분의 질환이 육안으로 확인된다”는 점을 안과의 장점으로 꼽았다. 그는 “내과는 촉진, 청진, 검사 소견으로 질환을 확인하지만 안과는 백내장, 망막, 시신경 등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오진이 적다”며 “뇌하고 연결된 신경계통 질환을 제외하고는 90%이상이 육안으로 확인된다”고 말했다. 

안과 선택에 이어 아버지와 한 병원에서 진료를 보게 된 것도 아버지의 권유 때문이었다고 한다. 김 원장은 “제가 모범생이었고 부모님 말씀을 워낙 잘 들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며 웃었다. 

한 곳에서 병원을 오래 운영하다 보니 진료를 보러 오는 환자들의 변화 흐름이 보인다. 김 원장은 “과거에 많았던 아폴로눈병, 유행성 각결막염 등 '접촉' 전염에 의한 눈병은 굉장히 줄었다”며 “사스나 메르스 이후 개인 위생 습관이 좋아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신 환경 변화로 인한 알레르기, 안구건조증은 늘었다고 한다. 노인인구 증가에 따라 노인성황반변성도 늘었다. 젊은이들의 녹내장도 늘었는데, 이는 “진단기술이 발달해서 그만큼 진단이 잘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원장은 또 “과거에는 백내장 수술을 못해 실명까지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 백내장으로 실명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졌다”고 말했다. 

김재도 원장은 어느덧 ‘70세’를 앞둔 병원과 ‘함께’ 늙어가는 환자들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백내장 수술을 받고 경기도 평택으로 이사를 가신 한 어르신께서는 2~3시간 걸려서 약을 타러 병원으로 오신다”면서 “‘근처 안과로 가시라’고 말씀 드리면 ‘알았다’고 답해놓고 또 다시 오신다”고 말했다.

오래 된 동네병원이 주는 특유의 편안함, 안정감 때문일까. 다소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이런 환자들이 싫지 않은 모양이었다. 김 원장은 “그게 오래된 병원의 장점 아닐까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김앤김안과 건물 외벽. 'since 1957'이 눈에 띈다.
김앤김안과 건물 외벽. 'since 1957'이 눈에 띈다.
고려대병원 교수 재직 시절 고 김정환 원장.
대한안과학회장 역임 당시 고 김정환 원장.
진료 보는 젊은 시절의 고 김정환 원장.
수도의과대학 제2부속병원 앞에서 고 김정환 원장.
진료 보는 김재도 원장.
진료 보는 김재도 원장.
고 김정환 원장의 증명사진.
고 김정환 원장의 증명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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