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도 원 어브 뎀일 뿐
의사도 원 어브 뎀일 뿐
  • 의사신문
  • 승인 2020.05.11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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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79)
전 성 훈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 성 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 법무법인(유한) 한별

‘당신은 진화론에 찬성합니까?’라는 질문에 어떻게 답하시겠는가. ‘찬성한다’고 답했다면, 당신은 대한민국 국민 중 97%에 속한다. 과학계(생물학계)에서도 다윈 이후 오랜 기간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화석들과 같은 ‘물증’의 지원사격으로 현재에는 진화론이 거의 정설로 자리잡은 것 같다.
오랜 역사를 가진 창조론이 쉬이 주저앉았겠는가. 2005년 미국 펜실베니아주 도버교육위원회는 ‘지적설계론’을 학교에서 과학시간에 가르치라고 결정하였다. 그러자 ‘창조론’을 지지하는 학부모들이 그 결정을 취소하라며 법원에 소송을 냈다.

도버 자치구는 인구 2000명의 작은 마을에 불과했지만, 진화론과 창조론에 대하여 법원이 판단하는 드문 사안이었기에 해당 재판은 미국 전체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그리고 재판 결과는 학부모들의 승리.
법원은 ‘지적설계론은 창조론자들이 창조론을 과학교과서에 싣기 위해서 위장한 이름에 불과’하고, ‘지적설계론은 증명할 수 있는 방법도, 반증할 수 있는 방법도 없어서 과학이 아니라 특정종교의 교리에 불과’하기 때문에 ‘국가와 종교를 분리한 헌법에 위반되므로 과학시간에 가르칠 수 없다’고 판결하였다.

미국에서는 현재까지도 기독교 근본주의가 무시 못할 지지를 받고 있지만, 적어도 진화론에 대해서는 이 도버교육위원회 판결을 정점으로 공개적인 반대는 힘을 잃었다.
진화론 역시 하나의 학설이고, 학설은 다양한 연구와 논증을 통하여 진화한다. 한 때 황당한 소리로 치부되던 학설이 축적된 연구결과를 통하여 ‘뒤집기 한판’이 일어나기도 한다. 갈릴레이는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했지만, 지동설은 얼마지 않아 당당하게 천동설을 뒤집어 버린 것처럼 말이다.

중요한 점은 모든 진화(evolution)가 진보(advance)는 아니라는 것이다. 즉 진화에는 거대한 방향성이 없고, 더 진화하고 덜 진화한다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 때 그 때 상황에 맞는 ‘짧은 방향성’만이 존재할 뿐이고, 상황에 적응한 결과물이 연속될 뿐이다.
이와 같은 의미로 동시대 법적 판단의 정수인 대법원의 판례는 ‘진보’하지 않고 ‘진화’한다. 대법원을 구성하는 대법관들 개인은 일정한 가치관(예를 들어 동성애 찬반, 사형제 찬반 등)을 가지고 있지만, 그 판단의 집합체인 대법원의 판례는 거대한 방향성이라기보다는 시대상을 반영한 짧은 방향성에 가깝기 때문이다.

최근 2년 사이에 사무장병원에 대한 새로운 법리를 설시하는 대법원의 판례가 3번이나 나왔다. 이는 매우 이례적인데, 왜냐하면 특정 분야에서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하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법리를 설시하는 대법원 판결은 자주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빈도로 대법원의 판례가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사무장병원 사건들이 많고, 대법원까지 가면서 치열하게 다퉈진다는 뜻이다.
그러면 사무장병원에 대한 대법원 판례의 방향성은 어떠한가? 한 마디로 사무장병원에 대한 대법원의 판례는 ‘진화’하고 있다. 왜 진화라고 판단하는가? 그것은 사무장병원에 고용된 의사의 족쇄들을 풀어주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형사 분야에서, 사무장병원을 개설한(즉 사무장에게 고용된) 의사가 자신의 명의로 공단에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하여 지급받은 돈을 사무장이 관리·처분하고 의사는 월급만 받은 경우, 예전부터 대법원은 의사를 ‘공단에 대한 사기죄의 공범’으로 처벌해 왔다.
그런데 2018년 대법원은 이러한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사무장병원을 개설한 의사가 ① ‘교통사고환자’를 진료하고 자동차보험회사에 자동차보험진료수가의 지급을 청구한 경우나 ② ‘실손의료보험의 피보험자’를 진료하고 피보험자(환자)에게 진료사실증명을 발급해 준 경우에는 각각 보험회사에 대한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즉 사무장병원에 고용된 의사가 책임져야 할 한도를 넘어서 기계적으로 처벌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둘째로 민사 분야에서, 1인1개소법 위반 병원의 경우 공단은 그 병원이 공단에 청구하여 지급받은 요양급여비용을 예외 없이 부당이득으로 보아 전액 환수해 왔고, 대법원 역시 이를 인정해 왔다.
그런데 2019년 대법원은 사무장이 개설한 ‘정통’ 사무장병원에 대하여는 이러한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중복개설병원(1명의 의사가 2개 이상의 병원을 개설.운영)이나 명의차용병원(의사가 다른 의사 명의로 병원을 개설·운영)에 대하여는 공단이 지급한 요양급여비용을 부당이득으로 환수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따라서 (정통 사무장병원은 제외하고) 중복개설병원, 명의차용병원에 고용된 의사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액수의 부당이득 반환청구를 당하는 상황은 사라지게 되었다.

셋째로 노동 분야에서, 병원 직원들이 형식적 개설자인 의사와 근로계약을 체결했지만, 실제로는 사무장이 이들에 대한 채용을 결정하고 이들을 지휘·감독한 사안에서, 하급심은 의사가 사용자로서 이 직원들에 대한 임금 및 퇴직금 지급의무를 부담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2020년 대법원은 직원들의 실질적 근로관계는 의사와 성립된 것이 아니라 사무장과 성립되었으므로, 사무장이 직원들에 대한 임금 및 퇴직금 지급의무를 진다고 판결했다. 사실상 근로자인 사무장병원 고용 의사가 책임져야 할 한도를 넘어서, 형식적 사용자라는 이유로 사용자로서의 의무까지 지워서는 안 된다는 합리적인 결론을 내린 것이다.

항상 보수적이고 변화에 인색하다는 평을 듣는 대법원이 사무장병원에 대하여 2018년, 2019년, 2020년에 연이어 형사, 민사, 노동 분야에서 변화된 입장을 내놓은 것은 급변하는 시대상을 반영하기 위한 ‘진화’이다.

이러한 대법원의 진화가 한편 반갑기도 하지만, ‘모든 의사결정과 책임은 의사가’라는 과거의 권위가 흩어진, ‘의사도 원 어브 뎀일 뿐’이라는 현재의 세태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여 한편 서글프기도 하다. 권위와 책임이 함께 있던 때가 좀 더 의사다웠다는 생각이 드는 건, 필자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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