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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발 호흡기 전문의원 탄생하나···당사자인 의료계는 '글쎄'
코로나발 호흡기 전문의원 탄생하나···당사자인 의료계는 '글쎄'
  • 홍미현 기자
  • 승인 2020.05.04 11: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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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정례브리핑서 호흡기질환 전담할 일차의료기관 선정방안 제시
의료계, 취지 공감하지만 지원방안 등 구체성 떨어져 현재로선 회의적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상대적으로 감염병 전파 우려가 높은 호흡기 질환 환자를 별도로 분리해 관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특히 최근 정부가 코로나19 의심환자를 포함한 호흡기 질환 환자를 전담할 의료기관을 선정하는 데 있어 ‘의원급 의료기관’을 활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이같은 논의가 현실화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의료계는 이같은 방안의 실효성 등을 놓고 다소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코로나19 환자를 빠르게 발견해 격리하고 방역 조치를 하겠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현실적으로 일선 의료기관의 참여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부 지원도 제대로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정부 "보건소만으론 접근성 떨어져···호흡기 전문 일차의료기관 선정 고민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김강립 1총괄조정관(보건복지부 차관)은 최근 정례브리핑을 통해 “호흡기 질환을 별도로 분리, 의료기관을 감염의 위험에서 차단하고 환자 이용의 불편함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조정관은 또 “보건소를 중심으로 하되 보건소만으로는 접근성이 떨어진다”며 “호흡기를 전문적으로 보는 일차의료기관을 선정하는 등 합리적인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정부는 이번 코로나19 사태 발발 초기에 이처럼 호흡기전문 진료를 담당할 일차의료기관을 선정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정부는 코로나19 전담기관인 보건소의 의료인력 부족이나 지역 격차에 따른 환자 대처 미흡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일차의료기관의 활성화를 계획했다. 사업에 참여할 의료기관은 '자원'을 받아 선정하고, 이들 의료기관이 호흡기 환자만 전담하면서 보호 장구·장비 지원과 함께 ‘인센티브’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었다.

이같은 계획은 이른바 '슈퍼 확진자'라 불렸던 31번 확진자가 나온 이후 국내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면서 더이상 진척되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국내 코로나19 추가 확진자가 한 자릿수로 떨어지는 등 사태가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자 정부가 다시금 이 제도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회의적인 의료계, 정부 대책의 구체성 부족 지적

의료계 전문가들은 이같은 정부 계획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다소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현재로선 계획의 구체성이 떨어져 의료기관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대학병원 감염내과 A 교수는 “의원급 의료기관이 코로나19 등 감염병을 자체적으로 검사하는 시스템을 갖출 수 있을지 등 구체적인 내용이 없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어 “의원급 의료기관들이 시스템을 갖춰 현실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지,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되는지 등을 현실적으로 따져봐야 실현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다”며 “감염병 확산에 대비하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여러 방안 중 하나지만, 실현 가능성에는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대학병원 호흡기내과 B 교수는 “정부가 의료계 현실을 전혀 모르고 내놓은 '탁상공론'에 불과한 제도”라고 지적했다. 그는 “코로나19가 호흡기 질환이긴 하지만, 바이러스가 목이나 혈관, 심장 등에 침투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며 “전문클리닉을 만든다고 해서 코로나19 감염을 최소화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감염병 전문병원 설립·의료기관 지원 계획 선행돼야

의료계에서는 현재로선 호흡기 전문 일차의료기관을 선정하는 것보다 먼저 ‘감염병 전문병원 설립’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 먼저라는 지적이 나온다. 

B 교수는 “정부 지정 국민안심병원인 성남 분당제생병원에서는 폐렴 증세로 응급실을 찾은 암환자의 방문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대거 발생하면서 40일이 넘게 의료기관을 폐쇄했다”며 “감염병 전문병원을 세워 감염병에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굳이 호흡기 질환을 전담할 일차의료기관을 만들겠다면 이들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 계획부터 수립하는 것이 먼저라고 의료계 전문가들은 말한다. 

B 교수는 “이 사업은 일차의료기관이 맡기엔 많은 어려움과 제약이 따를 뿐만 아니라 정부가 자원한 의료기관들에게 어디까지 지원해줄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며 “쉽지 않은 사업”이라고 했다.

또다른 대학병원 호흡기내과 C 교수는 “코로나19가 감기와 비슷한 증상을 보일 뿐만 아니라 경증의 환자가 많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의원급에서 감시체계를 운영하는 것은 적절하다"면서도 "아직 치료약과 백신이 없는 상황에서 코로나19 양성자가 나올 경우 해당 의원에 대한 조치와 추가 지원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확실한 계획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외에 우리나라 국민들이 여전히 종합병원을 선호한다는 점, 특히 고령자들의 경우 기저질환으로 인해 이미 종합병원에 다니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새로운 호흡기 증상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일차의료기관을 찾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당사자인 일차의료기관 의료진들 사이에서도 정부의 이번 대책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이 나오는 가운데, 일부는 기대감을 표하기도 했다. 

내과 개원의 D씨는 "기존의 혈압·당뇨 등 환자들을 포기하는 대신 호흡기 전문 진료 의원으로 선정되면 다른 환자들에도 피해가 간다"며 "자원자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보건소의 기존 일반진료 기능을 없애는 대신 보건소가 감염진료를 전담하되, 환자가 증가했을 경우 민간의료기관의 도움을 받는 방안을 제안했다. 

반면, 가정의학과 개원의 E씨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환자가 줄어들어 심각한 경영난을 겪는 의료기관들에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는 평가를 내놨다. 그는 "감염병이 발생할 때마다 의료인 수가 부족해 국립의대 설립이나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데, 감염병이라는 비상시국에는 민간의료가 나서는 것이 맞다"면서도 "다만 정부가 의료기관에 합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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