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한 피의 댓가
뻔뻔한 피의 댓가
  • 의사신문
  • 승인 2020.04.27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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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78)
전 성 훈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 성 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 법무법인(유한) 한별

의사라는 직업은 예전부터 고소득을 올리는 직업으로 평가되어 왔다. 어떤 의사들은 이견을 제기하겠지만, 아직까지는 이러한 사회적 평가에 큰 변화는 없다. 물론 의사 자격을 얻기까지 들인 노력과 시간이 타 직업과 비교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의사 자격을 얻은 후에도 의료행위의 본질상 업무시 고도의 집중력을 요한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그에 대한 사회적 보상이 큰 것은 그리 이상하지 않다.

고소득을 바탕으로 성실하게 일하여 온 의사분들 중에는 상당한 부를 축적하신 분들이 많다. 이런 분들은 은퇴를 고려할 시기가 되면 두 가지를 고민하게 된다. 바로 노후대비와 상속이다.
노후대비는 최근 연금제도가 강화되고 다양한 금융상품이 출시되어 그 준비가 크게 어렵지 않다. 그러나 상속은, 절세 등의 법적 이슈는 차치하더라도, 피상속인(재산을 물려주는 사람)이 평생 동안 형성해 온 ‘관계’를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가 나타나기에 쉬운 문제가 아니다. 쉽게 말하여 ‘나는 너를 이만큼 중하게 생각한다’가 수치(돈)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또는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가족이라 하더라도 한 푼도 주고 싶지 않은 것이 인지상정이기도 하다.

필자는 평소 주변의 의사분들로부터 상속에 관한 다양한 상담을 요청받곤 한다. 간단한 것은 구두로, 종합적 검토가 필요하면 자문계약을 체결하고 의견서로 조력을 드리는 것은 다른 상담과 동일하다. 그런데 최근 특이한 상담을 요청받았다. 자세한 내용은 언급하기 어려우나, 그 요지는 ‘많지 않은 나이에 자수성가하여 큰 부를 이룬 의사가, 자신의 사망시 고교시절 어머니와 이혼한 아버지에게 상속재산이 가지 않게 하는 법적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것이었다.

필자는 의뢰인이 밝히지 않는 내용은 ‘법적 조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분에 대하여만’ 추가적으로 묻는다. 필자는 대리인이거나 조력자이지, 수사기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건에서는 자문의견의 제공을 위해 필요했기에, 조심스럽게 ‘왜 그러한 검토가 필요한지’ 물었다. 그에 대한 답은 ‘자신이 지병이 있어서, 확률은 낮겠지만 자신이 부모보다 먼저 사망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으니, 이에 대비하려는 것’이라는 것이었다.

변호사는 조력하는 사람이지 평가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의뢰인과 그 부친과의 관계를 변호사가 깊이 알 필요도 없다. 필자는 의뢰인의 요청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는 방향으로 법적 방안을 설계하여 제시해 주었고, 의뢰인은 그 결과에 만족했다.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아무리 예전에 이혼했다 하더라도, 자식이 생부를 그와 같이 대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드는가? 아니면 부양의무를 일부 불이행한 아버지에게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가?

이러한 ‘미부양부모의 상속권’이 최근 이슈가 되고 있다. ‘구하라법’에 대해 들어보았을 것이다. 유명 아이돌 가수가 갑작스레 생을 마치자, 그녀가 9세일 때 가출하여 양육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친권까지 포기했으며 연락도 거의 되지 않던 그의 어머니가 그녀의 사망 4개월 후 그녀의 재산의 50%의 지급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는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고, 그녀의 오빠는 ‘자녀에 대한 양육의무를 저버린 부모가 자녀의 재산에 대한 상속을 주장하지 못하도록 해 달라’는 것을 주요내용으로 한 국민동의 청원을 국회에 등록했다. 그리고 등록일로부터 30일 내에 10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아 ‘구하라법’은 최근 정식으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회부되었다.

이러한 ‘부모 같지 않은 부모’의 상속청구에 대한 사람들의 비난은 2010년의 천안함 사건, 2014년의 세월호 사건 등에서도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최근의 사건으로 올수록 비난의 목소리가 더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시절 상속법 수업 중 교수님이 하셨던 말씀 중 아직도 기억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상속은 피의 댓가’라는 것이다. 즉 상속은 피를 물려받았거나 피가 섞인 사람으로서 당연히 얻는 권리이고, ‘노력의 댓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기원을 전후한 시기 인간의 평균수명은 20세에 불과했고, 산업혁명과 과학혁명을 거친 19세기에도 40세 남짓에 불과했다. 그래서 인간은 동물로서의 본능에 따라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전할 자식에게 집착해 왔고, 수천 년간 재산을 피의 댓가로 상속하고/받는 것이 당연시되어 왔다. 심지어 권력도 그러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대 수천, 수만의 봉건왕조의 왕들도 왕조를 창립한 왕을 제외하고는 피의 댓가로 왕이 되었을 뿐, 다른 이유로 최고의 지위에 오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현재는 세상이 변했고, 사람들의 인식은 더 크게 변했다. 예전에는 (부부 간의 애정과는 별론으로) 어떻게든 혼인은 유지하면서 어떻게든 자식은 키워냈다. 그러나 최근에는 ‘쿨한’ 이혼이 증가하면서 자식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고,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자식이 늘어나고 있다. 덕분에 ‘양육비이행관리원’이라는 생소한 기관까지 설립되었고, ‘배드 파더스’라는 명예훼손성 사이트가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낳아준 것만 해도 고마워해라’라는 부모의 엄포는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잘 키울 자신 없으면 왜 낳았냐’라는 자식의 항변이 득세하는 세상이다. 200년 전의 혁명의 시대를 거치면서 사람들은 ‘천부인권’을 깨달았고, 전례 없는 풍요의 시대를 살면서 ‘사람으로’ 태어나면 충분한 것이 아니라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당위가 지배적 가치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상적.물질적 기반 위에서 이제는 ‘낳아주는 것’보다 ‘키워주는 것’이 더 중요한 세상이 되었고, ‘그래도 혈육인데’라는 본능보다 ‘키워주지도 않았으면서’라는 원망이 더 무거운 세상이 되었다.

물론 누군가를 상속권자에서 배제하는 것은, 그것도 부모와 자녀를 서로의 상속권자에서 배제하는 것은 중대한 내용이므로 앞으로 실제 입법 과정에서 충분한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현행법하에서 ‘부모 같지 않은 부모’가 뻔뻔하게 ‘피의 댓가’를 챙기는 행태를 방치하는 것은 ‘의무 없이 권리 없다’는 상식에도, 국민적 법감정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구하라법’에 대한 국회의 전향적인 논의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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