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사 5월호 낭만닥터 인터뷰(황인철 서울의료원 산부인과 과장)
서울의사 5월호 낭만닥터 인터뷰(황인철 서울의료원 산부인과 과장)
  • 의사신문
  • 승인 2020.04.21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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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같은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산부인과는 동네 미용실 같으면 좋겠습니다” 


황인철 서울의료원 산부인과 과장


‘아기 받는 남자’ 이외 황인철 과장을 수식하는 말은 ‘요리하는 의사’다. 병원에서는 산모들과 10개월의 여정을 함께하며 아이를 받아내고, 집에서는 아내와 자녀 그리고 지인들을 위해 요리한다. 그에겐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하고 즐거운 일상이다. 겨우내 주춤했던 입맛을 돋우는 계절, 어느 봄날에 그와 맛있는 수다를 나눴다.

황인철 과장은 ‘요리하는 산부인과 의사’로 각종 방송 출연과 요리 특강, 요리책까지 출간했다. 몇 년 전에는 작은 음식점을 차려 정식 요리사로서 진료실과 주방을 오갔다. 어려서부터 ‘엄마가 이 세상에 없으면 저 음식 누가하지?’라고 생각할 만큼 손맛 좋은 모친의 요리를 어깨너머로 맛보고 배우다가 직접 앞치마를 두른 그가 대중에게 알려진 계기는 블로그였다. 블로그 ‘아기 받는 남자의 아주 특별한 요리 레시피‘를 시작하자마자 반응이 뜨거웠다. 매일 수천 명이 그의 블로그를 찾았고, 급기야 파워블로거가 됐다. ’남성 산부인과 의사‘, ’요리하는 의사‘라는 정체성은 누리꾼들의 이목을 끌기 충분했다. 다양한 레시피에 녹아있는 황 과장의 스토리텔링은 요리 사진만큼이나 맛깔났다. 그렇게 거진 10년, 그는 베테랑 산부인과 의사이자 요리 전문가로 살아왔다.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일상을 보내던 그에게 최근 브레이크가 걸렸다. 코로나19의 여파 때문이다. 현재 황 과장이 일하는 서울의료원은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일반 환자를 받지 않는다. 내원 환자 모두 다른 병원으로 전원시켰다. 그와 함께 아기를 기다리던 산모들도 다를 바 없다. 그는 ‘산부인과 의사 20년 만에 처음으로 당직이 없다’며 말문을 연다. 모처럼 한가한 상황에 여유가 느껴지지만, 왠지 모를 무거움이 느껴지는 말투였다. 

“코로나19로 칼퇴라는 걸 해보는 중입니다. 그동안 병원에서 양수 마를 날이 없었다면, 요즘엔 집에서 손에 물 마를 날이 없어요. 집에서 요리만 하게 됐으니까요. (웃음) 본의 아니게 여유가 생기고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었어요. 이건 분명 좋은 점이지만, 의사로서 걱정이 크죠. 무엇보다 제가 보던 산모들을 다른 병원으로 보냈기 때문에 마음이 불편해요. 산부인과 의사는 산모의 분만까지 책임져야 임무 완료인데, 중간에 다른 병원으로 보냈으니 걱정돼요. 처음엔 이런 상황에 화도 났지만 비상시국이니만큼 적응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종종 방송 출연을 제외하면 집과 병원, 비교적 단조로워진 일상 덕에 황 과장은 요즘 맛있게 먹고 있다. 본격적인 요리 토크가 시작되니 그만의 요리 팁이 쏟아진다. 모든 레시피를 쉽고 간단하게 설명하는 그에게 ‘안 되는 사람은 안 되던데…’라고 요리 초보 기자가 푸념하자, ‘음식은 짜거나 태우지만 않으면 다 먹을 수 있다’며 그는 모친이 했던 말을 인용해 위로를 건넨다. ‘하면 된다’는 긍정의 응원도 잊지 않는다.  

“요리는 거창하지 않아요. 그저 우리가 먹는 것을 만드는 겁니다. 처음에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사 먹는 것보다 비용이 더 드는 것 같고, 한두 번 해봤는데 맛이 없고… 그래서 요리하길 포기하는데요. 그런 분들에게 딱 3가지를 알려드리고 싶어요. 첫 번째, 나만의 간장을 만들어라. 두 번째, 무조건 해봐라. 세 번째, 가족을 위해 요리하라.”

한식에 간장은 필수 양념이다. 시판용 간장은 똑같은 맛이지만, 내가 만든 간장은 내 입맛에 더욱 안성맞춤인 법이다. 황 과장은 입맛에 맞는 간장을 만들고 나면 무기가 생긴 듯 ‘오늘은 조림을 해볼까? 찜을 해볼까?’ 도전 의식이 생긴다고 말한다. 첫 시도라면 우선 비율은 1(간장) : 1(설탕) : 1(물)이다. 자신의 입맛에 달다면 설탕양을 줄이고, 짜면 물양을 늘리면 된다. 이 과정에서 재미를 붙였다면 다음엔 각종 과일을 갈아 넣어도 좋다. 멸치육수나 버섯을 활용한 채소육수를 넣어도 좋다. 황 과장은 나만의 간장이 요리에 대한 흥미를 유발할 것이라고 장담한다. 이어 ‘요리는 망해봐야 한다’고 전한다. 물론 사람마다 망하는 횟수는 다를 테지만, 밥을 태워봐야 제대로 된 밥을 지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요리 철학이다. (물론 황 과장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또 나의 아내, 남편, 자녀 등 가족을 위해 요리하면 가장 큰 응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하기야 생판 모르는 남보다 더 나은 존재가 아니겠는가. 

“아내가 둘째를 임신했을 때 좋다는 음식, 맛있는 음식을 주구장창해줬어요. (웃음) <아내가 샤워할 때 나는 요리한다>라는 책은 샤워 후 아내와 먹을 수 있는 간단한 맥주 안주 같은 요리 레시피를 담은 책이기도 하죠. 가족을 위해 또는 지인들을 위해 요리를 하면서 실력이 는 것 같아요. 특히 남성들이 의외로 요리를 잘해요! 주말에 한번, 간단한 볶음밥을 만들어서 가족끼리 드셔보세요. 가족들은 분명 또 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맛있다’, ‘질했다’고 해줄 겁니다. 그걸 동기부여로 삼아 지속적으로 요리에 도전해보시길 바랍니다.”

원재료의 맛을 살리는 요리를 추구하는 그에게 신선한 재료는 당연하다. 주로 마트보단 전통시장을 찾고, 고기는 꼭 정육점에서 구입한다. 황 과장이 요즘 꽂힌 음식은 삶은 고기 요리다. 대개 삼겹살이나 돼지갈비 등 구운 고기 요리에 익숙하지만 고기 본연의 맛을 즐기려면 찌거나 삶는 방법이 좋다고 말한다.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샤브샤브처럼 얇게 썰어 채소와 함께 찜기에 넣고 찌면, 본연의 고기 맛과 채소 맛을 즐길 수 있다. 좋아하는 소스만 살짝 곁들이면 근사한 저녁 식탁이 완성된다. 

“지금은 봄이니까 취나물이 맛있어요. 취나물을 삶아서 들기름에 볶고,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넣고 또 볶습니다. 여기에 불린 쌀을 넣고 볶아요. 적절하게 물을 넣고 냄비밥을 지으면 맛있는 취나물밥이 됩니다. 알배추 겉절이나 석박지도 그때그때 담가먹고요. 지난 주말에는 화덕 식으로 구워낸 고르곤졸라가 맛있었어요. 또 물김치처럼 하얗게 담근 깍두기(*무를 깍둑 썰어 소금에 절인 채로 액젓, 김치 풀, 청양고추 등을 넣고 버무린다), 어머니한테 배운 콩나물김치밥(김치를 볶다가 불린 쌀을 넣고 밥이 뜸이 들 때 콩나물을 올려 잔열로 익힌다), 상추밥(밥의 뜸을 들일 때 상추를 올린 후 슥슥 저어 간장과 곁들여 먹는다)… 요즘엔 툭툭 만들어내는 한 그릇 요리를 즐겨 먹어요.”
‘요리는 사랑’이라고 말하는 그는 무엇보다 자신의 요리를 나눌 수 있어 행복하다. 가족 또는 지인들과 삼삼오오 모여 맛있는 음식과 기분 좋은 대화를 나누면 더할 나위 없다. 훗날 그의 꿈은 사랑방 같은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같이 수다를 떨고, 커피를 마시고, 배고프면 밥도 해 먹는 공간 말이다. 그렇게 사계절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을 황 과장은 꿈꾼다. 

“저는 요리로 좋은 영향을 받고 있어요. 사실 의사라는 직업은 스트레스가 많잖아요?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돼서 주말에 뭘 해볼 엄두를 못 내는 분들도 많아요. 의대, 인턴, 레지던트, 남자라면 공보의, 이후 의사로서 자리 잡기까지… 스무 살부터 쉼 없이 달려오면서 분명하고 싶은 일 하나쯤은 마음에 품고 있을 겁니다. 경험상 마흔부터는 그 일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동료, 선후배 선생님들도 요리뿐만 아니라 다양한 취미를 가지시면 좋겠어요.”

황 과장과 인터뷰를 진행한 장소는 산부인과 분만실에서 나오면 바로 펼쳐지는 야외 정원이었다. 2년 전 <MBC 스페셜> 저출산 위기 극복 프로젝트 편에 등장한 곳이다. 당시 그는 야외 정원에서 산모들과 함께 친구처럼 어울렸다. 그 모습이 불현듯 머릿속을 스쳤다. 요리 이야기에 너무 몰두해서였을까. 산모들에게 사랑받는 산부인과 의사로서의 그를 잠시 잊고 있었다. 산모들의 호평이 언제나 그의 뒤를 따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마지막 주 수요일마다 ‘수다방’을 운영하며 산모들끼리 인연을 이어주고, 분만 후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을 촬영해 가족의 첫 사진을 남겨준다. ‘생명의 탄생, 빛나는 기록, 만나다’라는 테마로 산부인과 한 켠에 그간 촬영한 사진들을 전시한 공간을 마련하기도 했다. 산부인과 의사로서 산모뿐 아니라 산모의 가족까지 살뜰하게 품어온 황 과장이다. 

“아픈 환자를 봐야 하는 직업이 의사인데… 사람이 아픈 게 참 싫더라고요. (웃음) 그런데 딱 한 곳, 산부인과는 달랐어요. 대개 건강하게 아이를 낳고 축하받으며 댁으로 돌아가시잖아요. 그게 참 좋았습니다. 일반 병실에서는 의료진이 해맑게 웃는 일이 거의 없지만 산부인과에서는 가능했어요. 물론 상태가 안 좋은 산모들, 건강한 산모들이라도 위태로운 상황이 오지 않게끔 긴장감을 안고 최선의 의료 행위를 합니다. 산부인과 의사로서 정말 행복하지만 최근 저출산 문제는 무척 심각해요. 향후 코로나19 여파도 무시할 수 없겠죠. 한 명의 산부인과 의사로서, 제가 속한 공공의료기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산부인과 의사로서, 더군다나 산과 의사로서 무거운 책임감이 뒤따를 수밖에 없을 터. 하지만 그를 스친 수많은 산모와 아이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려 한다. 조산 산모와 응급차에서 고군분투하던 그때, 이후 건강히 출산한 당시 산모가 아이와 함께 찾아왔던 그때, 아이에게 자신을 “널 낳아준 아빠야”라고 소개했을 때…. 이러한 감동의 순간순간이 쌓여 지금의 황 과장을 만들었다. 

“산모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면서, 서로 신뢰를 쌓으며 10개월의 여정을 함께하는 의사이고 싶어요. 또 10개월 동안 산모에게 가장 큰 힘이 되는 남편도 여정을 함께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바라건대 산모들이 동네 미용실처럼 병원에 와주시면 좋겠어요. (웃음) 파마하며 수다 떨 듯 편하게 병원을 오가시다가, 건강히 분만하고 댁으로 돌아가시길 바라요. 다시 산모들을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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