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로 태어나고 싶지 않아요!
실수로 태어나고 싶지 않아요!
  • 의사신문
  • 승인 2020.04.20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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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77)
전 성 훈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 성 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 법무법인(유한) 한별

코로나 19도 극복한 우리나라지만, 현재 극복하지 못한 심각한 문제가 있다. 바로 저출산 문제이다.
우리나라의 2019년 합계출산율은 0.92명으로, OECD 국가 중 유일한 ‘1명 미만’ 국가이다. 2018년에 0.98명으로 OECD 꼴찌에 더해 처음으로 ‘1명 미만’에 진입하여 충격을 받았는데, 2019년에 그 기록을 우리가 자체갱신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이렇게 세계 최저 출산국이 된 것은 정부가 주도한 가족계획이 ‘지나치게’ 성공했기 때문이다.

‘실수로 태어나고 싶지 않아요!’라는 카피문구를 기억하시는가? 뭐라 표현할 수 없는 표정의 1살 가량의 발가벗은 남자아이가 앉아 있는 포스터 상단에 쓰여진 이 카피문구는, 1987년 여성용 경구피임약 광고에 실린 것이다. 필자는 (당시에는 어렸지만) 나이 먹은 뒤에 이 표현이 얼마나 충격적인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실수로 태어난 아이’라니.

그런데 현실에서는 아이가 실수로 태어나면 소송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런 소송을 통상 ‘원치 않는 아이(unwanted child) 소송’이라고 한다. 그리고 원치 않는 아이 소송은 보통 ‘원치 않는 임신 소송’, ‘원치 않는 출산 소송’, 그리고 ‘원치 않는 삶 소송’으로 구분한다.

첫째 원치 않는 임신(unwanted pregnancy) 소송은 의료진의 피임처방, 불임시술 또는 임신중절수술의 과실로 인하여 ‘건강하지만 계획하지 않은’ 아이를 출산했음을 이유로 ‘부모가’ 의료진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이다.

둘째 원치 않는 출산(unwanted birth) 소송은 의료진의 산전진단 등에서의 과실로 인하여 ‘장애가 있는’ 아이를 출산한 경우 부모가 임신중절수술을 할 선택권을 박탈당했음을 이유로 ‘부모가’ 의료진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이다.

셋째 원치 않는 삶(unwanted life) 소송은 원치 않는 출산 소송과 같은 경우에서 의료진의 과실이 없었다면 자신이 태어나지 않았을 것임을 이유로 ‘장애가 있는 아이가’ 직접 또는 그 부모가 대리하여 의료진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이다.

여기까지 읽은 분은 몇 가지 의문이 들 것이다. 첫째 아이의 양육비와 교육비, 무엇보다 출생 자체를 부모에게 손해라고 할 수 있는가? 둘째 부모에게 임신중절수술을 할 선택권을 인정할 수 있는가? 셋째 보다 근원적인 의문으로, 아이가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자신의 출생을 스스로 손해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
이것은 법학에 앞서 철학적 고민이 필요한 의문들이다. 법학적 판단과 함께 이러한 철학적 고민이 담겨 있는 ‘원치 않는 아이 소송’ 판결들을 몇 가지 살펴보자.

먼저 원치 않는 임신과 관련하여, ① 정관절제술을 받은 뒤에 실시한 정액검사에서 정관절제술이 성공적으로 시행된 것으로 나타났지만 얼마 뒤 임신이 된 사안과, ② 난관결찰술 시행 후 6년이 지났는데 임신이 된 사안에서, 법원이 ‘수술상 과실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원고 청구를 기각한 사례들이 있다.

반면 ③ 부부가 제왕절개술 시행 전에 병원에 수술승낙서를 제출하면서 불임수술을 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이 요청을 의료진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병원의 과실로 불임수술이 이뤄지지 않았고, 그러한 사정을 모르고 있다가 셋째 아이를 임신하여 출산한 사안을 보자.
이 사안에서 법원은 예상치 못한 임신으로 인한 부모의 정신적 고통을 인정하여 위자료로 부부에게 각각 1,000만 원씩을 인정했고, 진료비와 분만수술비도 손해로 인정했으나, ‘자녀에 대한 부양은 부모로서 당연한 의무이므로, 손해로 볼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양육비와 교육비는 손해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④ 위 사안과 동일한 내용의 별개 사안에서는, 법원은 위자료, 진료비와 분만수술비는 똑같이 인정했고, 나아가 ‘불임시술을 선택하는 것도 인간의 존엄과 행복추구권, 자기결정권에 의해 마땅히 존중되어야 한다’는 이유로 양육비와 교육비도 손해로 인정했다. 위 사안과 결론이 다른 이유는 아마도 판사의 가치관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원치 않는 출산과 관련하여, ⑤ 산전 혈액검사 결과 다운증후군과 개방형 신경관결실증에 관한 항목이 양성반응이 나오자, 산모는 병원 의료진의 권유에 따라 양수천자방법에 의한 염색체검사를 받았다. 그런데 그 판독 과정에서 병원 의료진의 과실로 태아의 7번 염색체 장완의 일부결실을 발견하지 못했고, 7번 염색체 이상으로 정신지체, 발육지연 등을 가진 아이를 출산했다.
부부는 병원 의료진을 상대로 위자료를 청구했고, 법원은 ‘예기치 못한 상태에서 장애아를 출산한’ 정신적 고통을 이유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다. 유의할 것은, 부모의 ‘낙태결정권 침해’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원치 않는 삶과 관련한 사안을 보자. ⑥ 산모가 가족력을 고려하여 병원에서 산전진찰을 받으면서 기형아 검사를 요청했는데, 병원 의료진은 원고에 대하여 A.F.P. 검사만을 시행한 후 정상아로 진단했다. 이후 산모는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를 출산했다.
이후 그 장애아동은 ‘병원 의료진이 더 정확도가 높은 트리플 마커 검사를 하지 않고 판별확률이 낮은 검사만을 시행하여 자신의 모친이 기형아를 낙태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해 자신이 출생하게 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치료비와 양육비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물론 소송은 부모가 대리했다.

이에 대하여 대법원은, 첫째 다운증후군은 임신중절수술이 허용되는 질병이 아니어서 장애아동의 부모가 적법하게 낙태할 결정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 둘째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 가치의 무한함에 비춰볼 때 어떤 인간이 타인에게 ‘자신의 출생을 막아줄 것’을 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는 볼 수 없다는 점, 셋째 장애를 갖고 출생한 것을 임신중절수술로 아예 출생하지 않은 것과 비교하여 손해라고 할 수 없다는 점 등을 들어, 장애아동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렇게 대법원은 ‘원치 않는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에서 이에 대한 손해배상을 부정하고 있다. ‘실수로 태어난 아이’란 없다는 것이다. 현실은 더 복잡한 것이겠으나, 생명의 절대성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대법원으로서는 당연한 결정이다. 생명은 존엄한 것이라는 이상과 초저출산 극복이라는 현실 어느 것을 고려할 때에도, 우리에게 더 이상 ‘실수로 태어난 아이’는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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