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자존심 상해?
왜, 자존심 상해?
  • 의사신문
  • 승인 2020.04.13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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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76)
전 성 훈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 성 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 법무법인(유한) 한별

100년 전 스페인 독감이란 것이 있었다. 인플루엔자 A형(H4N1)인 이 바이러스는, 예상과 달리 스페인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발생지는 프랑스, 미국, 중국 중 하나일 것으로 추정된다(스페인은 상당히 억울할 것 같다).

1918년 봄에 처음으로 유행한 스페인 독감은 1차 유행에서도 많은 희생자를 냈지만, 같은 해 가을에서 겨울까지의 2차 유행에서 고병원성으로 발전하여 전세계적으로 대재앙을 일으켰다. 당시 세계 인구는 18억 명 정도였는데, 무려 2,000만 ~ 8,00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단 6개월만에 세계 인구의 1.1% ~ 4.4%가 사망한 것이다.
당시 일제강점기였던 우리나라는 어땠을까? 조선총독부의 통계연감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서반아 감기’ 또는 ‘무오년 독감’으로 불린 스페인 독감에 1918년 당시 우리나라 전체 인구 1,759만 명의 약 16%인 288만 명이 감염되어, 그 중 14만 명이 사망했다. 전체 인구 중 사망률은 0.8%로, 세계 평균치보다 낮았다.

100년이 지난 지금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는 과거 스페인 독감의 악몽을 떠올리게 한다. 무시 못 할 치사율에 높은 전염성을 가진 코로나 바이러스가 급속히 확산하자, 세계 여러 나라들은 외국인의 입국을 차단하고 ‘전국민 이동제한’ 같은 극약처방까지 동원하여 확산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전 메르스 사태 때에는 우왕좌왕하기도 하였고, 관련 정보조차 제대로 공개하지 않아 세계 각국들으로부터 갖은 질타를 당했다. 하지만 우리는 한번 실수하면 확실하게 개선하는 나라 아닌가. 이후 우리나라는 감염병 관리 체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했고, 그 결과 아직은 조심스럽기는 하나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 사태에서 ‘먼저 불을 끈 자의 여유’를 누리고 있다.

프랑스 역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혼란을 톡톡히 겪고 있다. 이미 한 달 전인 지난달 17일부터 필수적인 사유 없는 이동과 여행을 전면 금지했고, 식료품점과 약국 이외의 모든 상점 영업을 중단시킨 상태이지만, 현재 프랑스의 확진자는 13만 명에 이르고, 사망자가 13,000명에 달하는 상황이다. 강력한 조치를 취한다고 취했는데, 효과가 미진한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프랑스 의료인들은 평소 우리나라보다 자국의 의료 수준이 높다고 자부했을 것이다. 그런데 프랑스의 코로나 치명률이 10.6%로 우리의 5배가 넘으니, 어떻게 보면 ‘체면 완전 구긴’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쯤 되니, 프랑스에서도 ‘정신승리’를 외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 같다. 지난 6일 프랑스의 유명경제지인 레제코의 온라인판에, 비르지니 프라델이라는 조세 전문 변호사가 ‘코로나19와 확진자 동선 추적: 개인의 자유를 희생시키지 말라’라는 제목으로 ‘한국과 대만은 오래 전에 개인의 자유를 버린 나라들’이라는 내용의 칼럼을 게재한 것이다.
이 변호사는 칼럼에서 ‘최근 프랑스 정부가 스마트폰으로 확진자를 추적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려 한다’면서 ‘이는 개인의 자유를 중시해 온 프랑스의 자랑스러운 전통에 부합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한국과 대만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코로나19의 방역에 성공적이었지만, 불행히도 프랑스는 그러지 못했다’라고 주장했다. 거기까지는 납득이 간다.

그러나 그녀는 이어서 ‘그러나 이 두 국가는 개인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모범적 모델은 아니다. 중국은 디지털 감시와 시민 억압 기술을 개발했으며, 한국도 이를 따라하고 있다. 한국은 감시와 밀고에 있어서 세계에서 두 번째 가는 국가이다’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그녀는 ‘수천 명의 한국인들은 학교에서 고발 기술을 배우고, 담배꽁초 무단투기부터 부정부패, 간통에 이르기까지 동료 시민들의 잘못을 고발해 돈을 받고 있다’면서 ‘이들 국가는 프랑스 문화에는 없는 초감시.고발 문화를 갖고 있다. 이들 국가는 오래 전에 개인의 자유를 버린 나라들’이라고 주장했다.

이 글이 ‘침소봉대’와 ‘정신승리’의 양축을 기반으로 쓰여진 글임은 더 얘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프랑스 내부에서도 같은 평가가 나오는데, 르피가로 도쿄 특파원인 레지스 아르노 기자는 ‘아시아 국가에 대한 프랑스 엘리트의 오만방자함이라는 세균을 박멸하고 우리의 자유에 대해 더 고민할 기회가 되었다면 코로나19가 조금이라도 유익했을 것’이라고 자국 엘리트의 ‘정신승리’를 비꼬았다. 또한 프랑스 내에서도 그녀의 이러한 시각에 대해 ‘모순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프랑스 정부가 이동제한령을 실시해 기본권 중의 기본권인 통행의 자유를 제한한 것은 뭐라고 설명하겠느냐는 것이다.

경제 규모에서 우리 앞에 있는 나라들은 이제 선진국과 강대국밖에 없다. 이런 나라들에 대해, 우리는 대부분 ‘지난 200년간 그들이 잘했고, 우리는 못해서 이런 차이가 난 것이다’라고 실력차를 인정했고, 그렇기에 우리나라는 따라잡기 위해 미친 듯이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라는 일종의 국가 위기 상황에 처하자, 각국들이 가진 ‘나라의 힘’, 즉 ‘국가라는 공동체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제도와 국민의 인식’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 그 결과는 우리가 보고 있는 바와 같다.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의 국가 시스템이 의외로 부실했던 것이다. 우리의 지난 노력들은 헛되지 않았고, 우리는 우리의 생각보다 힘 있는 나라를 만들어 놓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실수에서 배우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2002년 월드컵 4강에 진출했을 때에도 유럽 선진국들의 인식은 ‘쟤네 뭐야?’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20년 후인 지금, 전세계가 같은 시험지를 받아들게 된 ‘코로나 시험’에서 우리는 당당히 수석을 차지했다. 그리고 ‘한국은 스마트폰이나 파는 나라’라고 생각했던 유럽 선진국들은 이번 코로나 사태를 보고 우리나라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을 것이다.

앞으로도 수년, 십수년 정도의 상당한 기간 동안은, 즉 그들이 완전히 인정할 때까지는, 우리는 코로나 이외의 다른 이슈로도 앞서 본 프랑스 변호사와 같은 선진국 일부 엘리트들의 ‘정신승리’를 자주 겪게 될 것이다. 그때마다 우리는 씩 웃으면서 한 마디만 해주자. ‘왜, 자존심 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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