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13:08 (토)
총선 앞두고 쏟아지는 ‘코로나 공약’, 의료전문가가 매긴 점수는?
총선 앞두고 쏟아지는 ‘코로나 공약’, 의료전문가가 매긴 점수는?
  • 권민지 기자
  • 승인 2020.04.10 05: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요 정당 5곳 발표한 '10대 공약'에 모두 코로나19 관련 내용 담겨
질본 승격·공공의대 설립 등 제안···의료계, 내실 없는 말잔치 경계

코로나19의 전세계적 확산 와중에 치러지는 이번 21대 총선은 ‘코로나 선거’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총선을 앞두고 주요 정당 5곳에서 발표한 '10대 공약' 가운데 코로나19와 관련한 공약이 없는 정당은 없다. 

이처럼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관련 공약이 쏟아져나오고 있지만 의료계는 정작 코로나19를 비롯해 앞으로 또다시 닥칠지 모를 신종 감염병 예방에 도움이 될 만한 실효성 있는 대책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지적한다. 

◆질본 '청' 승격···의료계, 무늬만 승격 안돼 "인사권과 예산권 부여해야”

지난 2015년 메르스 사태에 이어 이번 코로나 사태에도 신종 감염병에 대응하기 위해선 질병관리본부의 위상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정치권은 이러한 의료계 안팎의 여론을 수용해 이번 총선 10대 공약에 담았다.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은 질병관리본부의 '청(廳)' 승격을 10대 공약에 명시했다. 국민의당도 질본을 ‘질병예방통제청(가칭)’이라는 이름으로 확대 개편해야 한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질본의 청 승격은 수많은 코로나 공약 가운데 유일하게 주요 3개 정당이 공통적으로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어 눈길을 끈다. 

과거 전례를 살펴볼 때 실현 가능성도 적지 않다. 지난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가 유행한 이후 복지부 내 국립보건원이 질병관리본부로 확대 개편됐고, 2015년 메르스를 거치면서는 1급이었던 질본 본부장이 차관급으로 격상된 바 있다. 

하지만 의료계는 단순히 '무늬'만 바꾸는 식이 돼서는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박홍준 서울시의사회 회장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면서도 “단순히 청으로 승격하는 것에 끝내는 것이 아니라 청으로 승격된 이후 제대로 돌아갈 수 있는 시스템과 환경 조건을 만드는 일이 따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그러기 위해선 "인사권 부여가 그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이어 "질본이 하나의 전문기관으로서 기능하고 그 안에서 전문가들이 전문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근무환경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상혁 경남도의사회 감염대책본부장 역시 단순히 청으로 승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후의 시스템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전했다. 마 본부장은 "비상사태가 생기면 관계 장관들을 소집해 회의를 주재하는 권한, 방역에 관한 모든 권한을 주지 않으면 청 승격은 의미가 없다"며 "인사권과 재정권(예산권)을 독립시켜야한다. 보건복지부가 손을 대면 안 된다”고 말했다.

◆공공의대 설립···설립이 능사 아냐, 걸맞은 대우 해줘야

정의당은 전국민 건강불평등 해소를 위해 공공보건의료를 확대하고 공공의과대학을 설립하겠다는 공약을 10대 공약으로 내놨다.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로 내건 공약이지만 의료계는 단어로 국민들을 현혹시키는 '포퓰리즘'이라고 평가했다.

박홍준 서울시의사회 회장은 공공의대 설립 공약을 두고 “총선용 말장난”이라고 했다. 박 회장은 “공공의대를 만들어도 의사를 배출하는 데에는 10년, 20년이 걸리는데 의사 열 명, 스무 명 더 나와봐야 무슨 의미가 있냐”면서 “'공공의대'를 말하기 전에 '공공의료'부터 제대로 바꿔야한다”고 밝혔다.

또 “자기 지역구에 의대가 없다고 공공의대로 만들어야한다는 식의 주장은 지역 이기주의적인 ‘퍼주기’ 개념”이라며 “’공공’ 자만 붙이면 공공의료가 강화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 방역 시스템을 손봐야 공공의료가 강화되는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러한 의료계 내부의 요구를 반영해 대한의사협회(회장 최대집)는 9일 ‘한국형 공공의료 모델 정립을 위한 공공의료TF’를 구성하기도 했다. 공공의료TF 간사인 성종호 의협 정책이사는 “이제는 임상현장에 있는 의사들이 직접 공공의료에 대한 의견을 수렴해 한국형 공공의료 및 관련 제도를 만들어야 할 때”라며 “공공의료와 민간의료를 분리하는 기존의 이분법적 접근방법을 지양하고 실효성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상혁 경남도의사회 감염병대책본부장은 “공공분야에서 의대를 만든다고 해서 민간에서 못한 일을 해결할 수 없다”면서 “10여년 뒤에 (공공의대를 통해) 의사를 배출해도 대우가 좋지 않아 다들 떠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의학과, 의예과 대나무숲’이라는 SNS 페이지에서 공공의대 설립에 대한 견해를 묻는 게시글에 의대생들은 “면허만 따고 외국으로 튀세요”라거나 “애초에 대우만 잘해주면 되는 걸 어떻게든 쥐어짤 용도로 그놈의 공공(을 운운한다)”이라는 등의 댓글을 달기도 했다.

이 곳에 댓글을 남긴 한 의대생은 “공공의료가 잘 돌아가게 하려면 의과대학 세워서 키울 게 아니라 민간만큼, 혹은 그에 준하는 대우를 해주면 가실 분들이 있을 것”이라면서 “형편없는 대우를 하니 안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민 주치의제도···“영국이 코로나 잘 막았나" 반론

“코로나19확산, 주치의가 없기 때문이다.”

정의당이 발표한 ‘전국민 주치의제’는 전국민에게 주치의를 만들어줌으로써 코로나19 같은 감염병 확산 또한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에 대한 의료계의 반응은 싸늘하다. 감염병을 예방하는 방역 조치는 국가차원에서 나서야 해결될 일인데, 민간 의료진들의 노력만으로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박홍준 서울시의사회 회장은 “방역은 보건소를 기반으로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비상시에 보건소가 방역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평시에도 공공의료기관으로서 방역 예방에 집중하는 것이 옳다”며 “평시에는 일반진료를 하다가 비상시에만 급히 선별진료소를 도입하는 식으로는 방역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해외 선진국의 사례를 마냥 따라할 것이 아니라 영국처럼 대표적으로 주치의를 운영하는 나라들이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 먼저 살펴봐야 한다는 반론도 나온다. 

마상혁 경남도의사회 감염병대책본부장은 “주치의제도를 기반으로 한 영국 같은 나라가 코로나를 잘 막았냐”며 “선진국의 제도만 보고 정책을 따라하기 전에 위기 상황이 생겼을 때 전문가의 말을 귀담아듣는 것이 먼저”라고 말했다.

박형욱 예방의학과 전문의 역시 자신의 SNS에 “소위 강력한 주치의 제도를 시행하는 영국에는 코로나19가 확산되지 않았느냐”라며 “(전국민 주치의제는) 논리 필요 없이 주장만으로 뭐든 만들어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