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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비 아닌 갈비와 굿값 아닌 굿값
갈비 아닌 갈비와 굿값 아닌 굿값
  • 전성훈
  • 승인 2020.04.06 17: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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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75)
전 성 훈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 성 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 법무법인(유한) 한별

전 세계는 지금 코로나 전쟁 중이다. 사망자가 15,000명을 넘어선 이탈리아, 확진자가 30만 명을 넘어선 미국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전 세계에서 창궐하고 있다.

감염병 예방을 위해 사람들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것이 최선책임을 잘 알고 있는 전문가단체로서, 의협은 가장 먼저 ‘사회적 거리두기’의 시행을 정부에 요구했다. 그리고 정부는 이를 수용하여 현재 2주 이상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세계 어떤 국민보다도 관계지향적인 한국인들에게 최근의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는 그 자체로 스트레스이다. 심지어 지금은 계절의 꽃인 봄이 아닌가. 개학이 연기되면서 아이 돌보기 폭탄을 맞은 천만 학부모들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전 국민이 코로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최근의 상황에서 머리 아픈(?) 법률 이야기는 심히 부적절한 것 같다. 그래서 이번 글의 주제는 이것이다 : ‘우리나라 대법원은 이런 것도 정한다.’
법조인들이 가장 명예로운 직위로 칭하는, 근엄하고 딱딱한 이미지의 대법관들이 정말 이런 것을 고심해서 판결 내렸을까 싶은 사건을 두 가지 소개한다.

첫째, 당신이 먹고 있는 갈비는 대법원이 정한 것이다.
2004년 ‘원조이동갈비’라는 간판을 걸고 크게 영업을 하던 갈비집 사장 A가 있었다. 동시에 A는 지방의 백화점과 대형할인점 등에 소갈비를 납품했는데, 미국산 소갈비를 17㎝ 길이로 잘라 갈비를 만들고, 길이가 이에 못 미치면 살이 조금 붙어 있는 미국산 소갈비에 식용접착제로 부챗살 등 다른 부위를 붙여 갈비를 만들었다. 물론 이것도 ‘이동갈비’라고 하면서 납품했다. 2년 여간 A가 이렇게 ‘제작하여’ 판매한 갈비는 무려 159억 원 어치.

A는 축산물의 명칭과 성분을 허위로 표시한 혐의(축산물가공처리법 위반)로 구속기소되었는데, 2005년 대법원은 ‘갈비살이 전혀 없는 갈비뼈’에 살코기를 붙인 1.3억 원 어치에 대해서만 유죄로 인정하고, 나머지 ‘갈비살이 조금 붙어 있는 갈비뼈’에 살코기를 붙인 158억 원 어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갈비살이 일부라도 붙어 있었으니 갈비는 맞다는 것이다.
소비자단체 등은 ‘명백히 소비자를 속인 행위인데 무죄라니 납득할 수 없다’라고 반발했지만, 판결은 판결이었다. 그리고 판결 이후 이러한 ‘갈비 창조’ 행위는 합법적인 것으로서 널리 일반화되었다. 그래서 현재까지 살이 조금 붙어 있는 ‘국내산’ 갈비뼈에, ‘수입산’ 살코기를 붙여 만든 ‘국내산 왕갈비’가 널리 유통되고 있다. 이것이 일부 변호사들이 ‘신은 천지를 창조했고, 대법원은 갈비를 창조했다’라고 말하는 ‘갈비 판결’이다.

지금 흉부를 잡아보시라. 시중에서 유통되는 갈비에 그렇게 긴 살코기가 달려 있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필자의 추측으로는, 대법원은 갈비를 무척 좋아하는 한국인들이 갈비를 못 먹게 될 경우의 ‘갈비 쇼크’가 제2차 오일 쇼크에 못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국민 식생활 안정을 위해 결단을 내린 것 같다. 게다가 식용접착제(트랜스글루타미나아제)는 인체에 무해하기도 하고.

둘째, 대법원은 무속인이 사기꾼인지 아닌지 판단하기도 한다.
B의 아내 C는 심한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었다. 남편 B는 아내 C에 대해 항상 걱정하던 차에, 어떤 절에서 알게 된 자칭 무속인 D를 알게 되었다. D는 B에게 ‘자신이 기도와 기치료를 하여 C를 낫게 해 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사람이 심약해져 있으면 쉽게 속아 넘어가는 법, 지옥에서 부처 만난 심정이었는지 B는 이후 7년 동안 D가 달라는 대로 각종 기도비, 굿값 명목으로 돈을 보냈다. 심지어 D가 ‘아들에게도 액운이 있다’, ‘작은 딸로 귀신이 씌었다’라고 하자 자식들에 대한 굿값도 보냈다. 이렇게 7년 간 보낸 돈이 무려 1억 원이 넘었다.

그러나 C의 증상은 (당연히) 차도가 전혀 없었고,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D는 B에게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C의 퇴원일이 x월 x일로 정해졌다는 계시를 받았다’라고 하면서, B에게 기도비 2,000만 원을 내고 C를 퇴원시킨 후 자신과 함께 생활하도록 했다. B는 그대로 따랐지만, 아무런 치료를 받지 못하여 증상이 더욱 악화된 C는 퇴원 후 혼자 도로 위를 걷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아내를 잃은 B는 그제서야 D를 사기로 고소했다. 그리고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D가 받은 기도비(굿값)는 B가 속아서 지급한 것이다. 즉 D는 사기꾼이다’라고 판단했다. 즉 대법원은 ① D는 간호조무사로 일하다가 이혼 후 마사지업소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을 뿐, 신내림을 받은 무속인이 아니며 기치료를 해 본 경험도 없었던 점, ② D는 B에게 ‘아들에게 액운이 있으니 골프공에 아들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어 골프채로 쳐서 액운을 쫓아내야 한다’라고 했고 실제로 절 부지 내에 있는 실외 골프연습장에서 그대로 하였던 점, ③ D는 돈을 송금받을 당시 사실혼관계에 있는 남성과 함께 절에 건물을 신축하고 있어 공사비용 등이 필요한 상태였던 반면, D가 송금받은 돈을 B를 위해 기도 등에 지출했음에 관한 자료는 전혀 없는 점 등을 들어, D의 행위는 전통적 관습에 의한 무속행위나 통상적 종교행위로는 볼 수 없으므로 D는 무속인이 아니고 사기꾼이라고 판단했다.

참고적으로, 법원은 통상 무속인의 기도비, 굿값 등을 일종의 정신적 테라피 비용으로 보기에, 굿이나 기도가 효험이 없다고 하더라도 원칙적으로 그 비용의 반환을 구할 수 없다. 쉽게 말해 어차피 마음 편하자고 치른(버린) 돈 아니냐는 것이다. 그렇지만 위 사건과 같이 무속인이 아닌 사기꾼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다르다.

재미있지만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그리고 답답하지만 가슴 아픈 위 두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나라 대법원은 갈비를 창조하기도, 무속인 중 사기꾼을 솎아내기도 한다. 진료를 원하는 환자를 피할 수 없는 것이 의사의 숙명이듯이, 사건이 배당되면 판결을 피할 수 없는 것이 법관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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