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략과 의병, 그리고 코로나 전쟁
침략과 의병, 그리고 코로나 전쟁
  • 전성훈
  • 승인 2020.03.3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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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74)
전 성 훈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 성 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 법무법인(유한) 한별

우리나라는 유독 많은 침략을 받았다고 학교에서 배웠다. 중고교 시절 역사 선생님의 카더라 통신에 의하면 총 900여 번의 침략을 받았다고 한다. 가장 최근의 전쟁인 6.25 역시, 광복 이후 우리의 운명에 열강들이 임의로 개입하여 일어난 전쟁이었음을 생각해 보면, 이 역시 또 다른 형태의 침략을 받은 것이다.
그렇기에 ‘더 이상의 침략을 받을 수는 없다’라는 국민들의 절박한 심정은 ‘성장’과 ‘생존’이라는 국가목표로 귀결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선택의 가능성을 물리치고 목표만을 보고 미친 듯이 뛰었다. 그 결과물이 G10이라고 불리는 현재의 대한민국이다.
외부로부터의 침략을 받으면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가 나서서 물리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국가가 외침을 물리치지 못했을 때 민간이 나서서 무장단체를 조직하여 외적과 싸우는 경우가 있다. 이를 다른 나라에서는 레지스탕스라고 부르지만, 우리는 의병(義兵)이라는 더 숙연한 이름으로 부른다.
이러한 의병은 모든 나라에서 일반적인 것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은 100년간의 전국시대가 막 끝난 뒤였는데, 수많은 전투에서 성이 함락되면 성주는 할복하고 성의 백성은 항복하여 해당 지역이 깔끔하게 평정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지배자의 입장에서는 백성이란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고 땅에 부속된 전리품이었고, 백성의 입장에서도 지배받는 내용에는 차이가 없어 새로운 지배자에게 반항할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백성은 새로운 지배자에게 ‘우리는 당신을 환영한다’라는 의미로 양식과 쌀 등을 내놓았고 이후 순순히 세금도 납부했으므로, 전투에서만 이기면 이후 흔히 말하는 ‘보급’은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그래서 일본군은 조선으로 건너올 때에도 정복한 지역에서 군량미 등을 보급할 예정하고 출병했다.

그런데 일본군이 수많은 성들을 함락시켰음에도, 백성들은 새로운 지배자를 전혀 환영하지 않았을 뿐더러, 장정들은 무장하여 곳곳에서 저항했다. 일본군은 조선 백성들의 이러한 저항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일본에는 의병이란 것을 전혀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었던 일본군은 군량미 등 군수물자를 일본에서 부산으로 수송해 왔다. 그 다음 이를 북쪽으로 올려 보내야 했는데, 육로에서는 각지의 의병들로 인해 수송에 큰 어려움을 겪었고, 해로에서는 이순신이 한산대첩에서 일본수군을 그야말로 ‘박살’내 버렸다.

파죽지세로 진군하던 일본군은 보급의 어려움으로 진군을 멈추게 되어 국면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고, 초반에 크게 불리했던 전세는 김시민의 진주대첩, 권율의 행주대첩을 통해 반격의 계기를 잡는다. 이후 명나라가 개입하여 일진일퇴를 벌였고, 전세가 불리해진 일본군은 퇴각한다.
비록 피해가 컸지만 침략군을 물리쳤으므로 임진왜란은 최종적으로 승리한 전쟁이다. 임진왜란에서의 승전에 의병의 역할이 어떠했는지는, 진주대첩(관군 3,800명/의병 10,000명)과 행주대첩(관군 3,000명, 의병 6,000명)에서의 의병의 비율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300년 후 두 번째 일본의 침략이 있었을 때에도 의병은 분연히 일어나 싸웠다. 1895년 단발령과 명성황후 시해에 반발하여 을미의병,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을사의병이 일어났다. 특히 1907년 군대해산령으로 일본의 강제병합 의도가 명백해지자, 이후 1907년부터 1910년 강제병합 사이에 전국 각지에서 격렬한 의병 투쟁이 일어났다. 일본측 공식통계에 따르더라도, 15만여 명의 의병이 봉기하여 2,851회의 충돌이 있었고, 사망 16,700명, 부상 36,770명이라는 막대한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상자가 1/3이 넘다니, 얼마나 처절하게 싸운 것일까.

지금 대한민국은 코로나 바이러스와 전쟁 중이다. 보이지 않는 적의 외침으로 우리 국민에게 심각한 보건의료상 위기가 닥치고, 인력이 부족한 현실을 알리면서 정부가 의병의 궐기를 호소하자, 의료계는 의병을 일으켰다. 현재 자발적으로 달려간 의료인력 2,500여 명이 대구와 경북의 최전선에서 코로나와 맞서 사투를 벌이고 있다. 국민들도 땀이 찬 고글을 쓰고 있는 의사, 이마에 반창고를 붙인 간호사 사진으로 상징되는 의료계의 의병에 아낌없는 격려와 박수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 함께 열심히 싸우고 있는 ‘관군’에게도 박수를 보내기 위해 손을 들었다가 멈칫하게 만드는 일이 연잇고 있다. 얼마 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요양병원이 감영예방지침 등을 담은 행정명령을 위반해 집단감염이 발생할 경우 손실보상 및 재정지원을 제한하고, 동시에 추가방역 등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까지 검토하겠다’라고 발표했다. 또한 모 지방자치단체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의 접촉자 명단을 누락했다’라는 이유로 모 병원에 대해 감염병예방법 위반에 따른 형사고발과 손해배상청구를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계와 여론의 강력한 비난에 정부는 ‘이 조치는 대부분의 요양병원과는 무관하며, 귀책사유가 분명한 경우에 한해 이뤄지는 조치’라고 물러섰고, 해당 지방자치단체는 모 병원에 대한 형사고발 방침을 철회했다.

귀책사유가 분명한 경우라면 위와 같은 원론적인 입장을 미리 발표할 필요도 없이 책임을 물으면 되고, 또한 응당 물어야 한다. 그럼에도 이런 식의 불필요한 ‘엄포’를 놓는 것은 최전선에서 싸우는 의병들에게 ‘토사구팽이 머지 않았다’라는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 하기야, ‘와주면 예우하겠다’라고 호소하다가 최근 수당을 슬쩍 삭감하거나, 보호장구를 착용했다면 근무종료 후 자가격리가 불필요하다고 하면서 격리에 대한 지원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잘못된 시그널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앞서 본 것처럼 진주대첩과 행주대첩에서 의병이 없었다면 전투에서의 승리는 물론, 임진왜란에서의 최종적인 승리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김치 대신 단무지를 먹고 있을 것이다.

코로나 전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리고 상상도 할 수 없지만, 의병이 없는 상황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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