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의 악몽···'의료계에 책임 떠넘기기'까지 답습하나
메르스의 악몽···'의료계에 책임 떠넘기기'까지 답습하나
  • 권민지 기자
  • 승인 2020.03.24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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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지자체, 접촉자명단 누락 등 근거로 고발·손해배상 거론
5년전과 판박이···접촉자명단 문제된 삼성병원 소송, 여태 진행중

정부와 일부 지자체가 코로나19 사태 대처 과정에서 일부 의료기관이 보인 행동을 문제삼아 법적 조치를 운운하는 등 강경대응 방침을 천명하고 나섰다. 특히 정부는 요양병원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가 발생할 경우 손해배상 청구 같은 법적 조치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의료계는 허탈함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 방역 전선에서 목숨 걸고 싸우고 있는 의료인들을 상대로 정부가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가방 내놓으라고 한다'는 식의 대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의료계의 반발이 거세지자 "(손해배상 청구는) 대부분의 요양병원과는 무관하며, 귀책사유가 분명한 경우에 한해 이뤄지는 조치"라고 밝히는 등 한발 물러서는 모습이다. 하지만 의료계에서는 5년 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유행 당시에 그랬던 것처럼  ‘의료계에 책임 떠넘기기’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메르스 접촉자명단 '늑장제출'→코로나 접촉자명단 '고의누락'···책임전가 방식도 닮은꼴

경기도는 지난 20일 집단감염이 발생한 분당제생병원측이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한 직원들의 명단’을 고의로 누락해 제출했다며 이 병원을 고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가장 투명하고 적극적으로 역학조사에 임해야 하는 의료기관이 감염병 예방에 혼선과 피해를 유발한 점을 방관할 수 없기 때문"이란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분당제생병원 관계자는 “역학조사관과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기고 부족한 인력과 완벽하지 못한 업무처리로 인해 발생됐다”며 고의 누락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의료계는 "방역당국의 부실한 대응 책임을 병원에 전가하는 것 아니냐"며 반발했다. 

결국 경기도는 의료계와 여론의 비판에 지난 23일 형사고발을 철회하고 대신 엄중 경고하는 수준에서 사태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비록 경기도가 막판에 고발을 철회했지만 의료계에서는 이번 사건을 두고 5년 전 메르스 사태 당시 삼성서울병원을 떠올린 이들이 적지 않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메르스 ‘밀접접촉자’ 명단을 늦게 제출했다며 삼성서울병원에 메르스 확산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 

즉, 복지부는 지난 2015년 5월 삼성서울병원이 밀접 접촉자 명단을 늦게 제출했다며 업무정지 15일에 상응하는 과징금 806만원을 부과하고, 메르스 사태로 인한 진료 마비로 병원이 입은 607억원의 손실보상금은 지급 거부 처분을 내렸다. 이때도 정부가 병원측에 책임을 물은 핵심 근거는 접촉자 명단이었다. 

이같은 처분에 삼성서울병원이 반발하면서 소송을 제기했고, 1·2심 법원은 삼성서울병원측의 손을 들어줬다. 복지부는 대법원 판단까지 받아보겠다며 지난달 상고장을 제출한 상태다.

◆'신고의무 위반시 벌금 부과'···'감염병관리법'이 '감염병지침'으로 간판만 바꿔달아

보건당국은 지난 20일 정례브리핑에서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감염병예방지침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감염병예방지침을 위반한 요양병원·요양원은 코로나19 피해에 대한 손실보상을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며 “귀책사유에 따라 환자 치료비에 대해 '구상권' 청구까지 검토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이같은 조치 역시 의료계의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왔다. 

전국광역시도의사회장협의회는 23일 성명서를 통해 "(정부의 발언은) 최전선에서 사투 중인 의료계를 향해, 오히려 과도한 책임을 씌우고 매도하는 협박성 발언”이라고 주장했다. 대한개원의협의회도 성명서를 통해 “환자를 위해 사투를 벌이는 의료계를 마녀사냥 하듯 징벌해야하는 대상으로 삼고 있다”며 분노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정부의 적반하장식 행태에 반발하며 "현장에 자원하고 있는 의료인의 철수를 권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의료계가 이토록 반발하는 이유는 이번 조치가 5년 전 메르스 사태 때와 복사판이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가 처벌의 근거로 삼은 '감염병관리법 11조'가 지금은 '감염병예방지침’으로 '간판'만 바꿔 달았을 뿐이다. 

당시 정부는 감염병관리법 11조를 근거로 "확진자 신고를 늦게 한 의료진에게 벌금 200만원을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확진자 확산의 책임을 의료계에 떠넘기려는 듯한 정부의 조치에 당시 의료계는 강하게 반발했다. 그해 7월 의협은 "마치 의료인의 미신고가 메르스 확산의 원인인 것처럼 몰아간 것”이라고 정부의 조치를 비판했다. 

하지만 의료계의 반발에도 정부는 규정 이행을 강행했다. 그해 8월 서울강남보건소가 감염병관리법 위반으로 삼성서울병원과 당시 송재훈 병원장을 고발한 것이다. 하지만 같은 해 12월 검찰은 병원과 송 원장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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