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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할머니에서 아름다운 죽음으로
김 할머니에서 아름다운 죽음으로
  • 전성훈
  • 승인 2020.03.24 14: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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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73)
전 성 훈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 성 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 법무법인(유한) 한별

의사회 업무에 참여하고 있다 보니, 의료와 법률의 교차점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질문들을 받게 된다. 얼마 전 사석에서 만나 즐겁게 말씀을 나누었던 원로의사 A가 전화를 주셨다. 이전 자리에서의 활달한 목소리와는 달리, 약간은 긴장하신 듯하였다. 질문하신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노모가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신다. 연세는 96세, 몇 년 전부터는 의식이 없고 tube feeding하고 있는 상황이다. 자녀로는 딸 넷이 있는데, 딸 넷이 모두 튜브 제거에 동의했다. 제거해도 괜찮겠는가?’

필자의 큰 고모님은 평생 미혼으로 사시면서 큰 조카인 필자를 유독 아껴주셨다. 갑작스런 뇌출혈 이후 손가락 하나 까딱하실 수 없는 상태로 7년간 요양병원에 입원하셨다가 돌아가셨다. 그래서 돌아가셨을 때 ‘이제는 육신의 구속에서 벗어나 주님 곁에서 편안히 쉬세요’라고 몇 번이고 빌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기에 필자 역시 A의 심경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필자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안 됩니다.’ 그리고 다소간 낙담하신 A에게 그 이유를 소상히 설명드렸다. 전화를 끊고 나니 마음이 좋지 않았지만, 달리 조언드릴 방법이 없었다.

‘김 할머니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김 할머니는 2008년 2월 폐암 조직검사를 받다가 과다출혈로 식물인간이 되었다. 자녀들은 김 할머니에 대한 인공호흡기 등 연명치료의 중단을 요구하였는데, 영양공급(tube feeding) 중단은 요구하지 않았다. 병원측은 이를 거부했고, 자녀들은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2009년 5월 ‘질병의 호전을 포기한 상태에서 현 상태만을 유지하기 위하여 이루어지는 연명치료는 무의미한 신체침해행위로서 오히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하는 것이며,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른 환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기초하여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할 수 있다’라고 판결하여 최초로 ‘존엄사’의 개념을 인정했다.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병원측은 김 할머니의 인공호흡기를 떼었고, 김 할머니는 인공호흡기를 뗀 뒤에도 튜브로 영양을 공급받으면서 8개월을 더 생존하다가 2010년 1월 사망했다.

당시 병원측이 김 할머니 자녀들의 연명치료 중단 요구를 거부한 것은, ‘보라매병원 사건’에 대한 의료계의 트라우마가 큰 영향을 미쳤다.
1997년 술에 취한 남성이 집에서 화장실에 가다 넘어져 머리를 다쳤다. 보라매병원에서 뇌수술을 받아 혈종을 제거했으나, 뇌부종으로 자발적 호흡이 돌아오지 않아 담당의사들은 인공호흡기를 부착했다. 그런데 그 남성의 부인은 ‘남편이 사업 실패 이후 가족에 대한 구타를 일삼았고, 살아남을 경우 가족에게 짐만 될 것이며, 이미 260만 원의 치료비가 발생했는데 추가로 발생할 치료비를 부담하기 힘들다’고 하면서 담당의사들에게 퇴원을 요구했다.

담당의사들은 퇴원하면 환자가 사망할 거라고 부인에게 여러 차례 설명했지만, 부인은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담당의사들은 ‘퇴원 후 환자의 사망에 대해 법적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라는 귀가서약서를 받은 후 환자를 퇴원시켰다. 그리고 환자의 집에서 인공호흡보조장치와 기관삽관을 제거하고 환자를 인계했는데, 환자는 5분 뒤에 사망했다.

그리고 이러한 담당의사들의 행위에 대해 대법원은 ‘살인방조죄’로 처벌하면서 정상을 참작하여 그 집행을 유예했다.
이 판결 이후 모든 병원들은 소생가능성 없는 환자라 하더라도 가족의 퇴원 요구(예를 들어, 집에서 임종할 수 있게 해 달라)를 모두 거절하게 되었으며, 안락사에 관한 사회적 논의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러나 10년 후 김 할머니 사건에서 대법원이 존엄사의 개념을 인정함으로써 다시 안락사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지기 시작했고, 논의 끝에 2016년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하 ‘연명의료법’)’이 제정되어 2018년부터 시행되었다.
김 할머니 사건, 보라매병원 사건을 거쳐 다시 A의 사안으로 돌아와 보자. 연명의료법상 연명의료는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체외생명유지술(ECLS), 수혈, 혈압상승제 투여 등으로서 치료효과 없이 임종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의학적 시술’을 말한다.

위와 같은 연명의료를,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 즉 ① 회생가능성이 없고, ②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되어 ③ 사망에 임박한 환자에게는 중단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말기환자’, 즉 ① ‘근원적’ 회복가능성이 없고 ② ‘점차’ 증상이 악화되어 ③ ‘수개월 내에’ 사망할 것으로 예상되는 환자에게는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없다.

이러한 입법에 대해,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와 말기환자는 단지 예상사망시기의 차이가 있을 뿐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음에도, 말기환자에게는 연명의료 중단을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연명의료법의 입법취지를 잘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1달 내에 사망하거나 몇 달 내에 사망하거나 연명의료를 거부할 권리를 인정함에 무슨 차이가 있냐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연명의료법상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라 하더라도 통증완화와 영양.물.산소 공급은 중단할 수 없다. 만약 영양.물.산소 공급을 중단할 경우 살인죄가 문제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필자는 A의 질문에 단호히 ‘안 됩니다’라고 답한 것이다.

“euthanasia”는 흔히 안락사로 번역되지만, 어원인 그리스어를 직역하면 ‘아름다운 죽음’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리스-로마 시대의 귀족들은 불치병이라는 판정을 받거나 죽음을 예감하면, 가까운 지인들을 모아 인생의 아름다움과 덧없음, 시와 역사를 논하며 포도주와 함께 독약을 마셨다고 한다. 죽음을 배타하지 않았던 그 때에는 이것이 아름다운 죽음이었다.

신과 내세가 의심받고 있는 현대에서 ‘아름다운 죽음’이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의식 없이 코에 튜브를 꽂고 대소변조차 도움을 받으면서 연명하는 것이 아름다운 죽음이 아님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최근까지도 20세 이상 성인 중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자가 1%도 되지 않는 점을 고려하여, 연명의료법의 전향적 개정을 위한 논의가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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