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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까지 적어놓고 쓰는데"···복지부장관 발언에 격분한 의료계
"이름까지 적어놓고 쓰는데"···복지부장관 발언에 격분한 의료계
  • 권민지 기자
  • 승인 2020.03.13 17: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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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능후 "의료계가 쌓아두고 싶어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 발언에
현장에선 마스크 소독해서 재사용, 방호복은 덧신 없어 비닐봉지로
의료계 “책임을 의료계에 떠넘기나···장관으로서 부적절한 발언"

경기도 소재 수련병원에서 코로나19 확진자들을 진료하는 전공의 A씨는 “일회용이어야 하는 마스크에 이름을 써서 보관하거나 소독기로 소독해 재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스크만 부족한 것이 아니다. A씨는 “CPR(심폐소생술)을 하면서 들어오는 환자를 진료하기 위해 급하게 레벨D 방호복을 입고 있는데 고글이 없었다”며 “환자를 눈앞에 두고 다시 새로운 보호구를 착용할 시간이 없어서 불완전한 레벨D 상태로 진료했다”고 말했다.

사진=대전협 제공, 덧신이 없어 비닐로 대신한 모습
사진=대전협 제공, 덧신이 없어 비닐봉지로 대신한 모습

최근 일선 병의원에서 의료용 마스크 등이 품귀현상을 빚는 것을 두고 "의료계가 (마스크) 재고를 쌓아두고 싶어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이라고 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의 발언에 의료계가 들끓고 있다. 일선 의료현장의 민낯을 모른 채 보고서에 올라오는 수치만으로 현실을 재단하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는 것이다.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서 확진자 주치의를 맡고 있는 B씨는 “보호구 중에 덧신이 없어서 비닐로 발을 감고 헤어캡을 씌워서 다니고 있다”며 “일회용 고글도 부족해 사용 후 닦아서 재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부 병원은 병원에서 마스크를 구하지 못해 의료진이 각자 외부에서 마스크를 구해다 쓰는 실정이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전공의 C씨는 “덴탈 마스크도 부족해 전공의든 간호사든 밖에서 사오고 있는 상황”이라며 “가장 기본적인 덴탈 마스크조차 이런 대형병원에서 공급이 불안정하니 참담하다”고 말했다. 

의료계는 박 장관이 국회에서 “의원님들보다 현장을 많이 다녔다”고 말했지만 제대로 된 현장을 보지 못한 채 잘못된 현실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 이번 사태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홍성진 가톨릭대 여의도성모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병원은) 지금 수술실에서 쓰는 마스크조차 모자란 상황”이라며 “다음 주부터는 80년대에 쓰던 면마스크를 쓰고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스크를 쌓아두고 쓸 만큼’ 병원에 마스크가 충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대하 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는 “최근 국립대병원인 경북대병원조차 마스크가 모자라다고 해서 협회 성금으로 마스크 1만장을 구입해 보낸 적이 있었다”며 “전문의들이 레벨D 방호복이 없어서 비닐가운을 입고 검체 채취를 하는데, 맞는 사이즈가 없어서 팔이 노출된다고 하길래 방호복 500벌을 공수해서 보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대구·경북 지역 의료인들은 박 장관의 이번 발언이 의료현실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섭섭한 심정을 토로했다. 확진자가 밀려드는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마스크 같은 의료용품을 확보하는 것은 생존이 달린 문제인데, 박 장관의 발언은 이같은 현실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장유석 경상북도의사회장은 “물품이 없는데 환자가 오면 맨몸으로 환자(확진자)를 봐야한다”며 “(지속돼야하는) 의료의 특성상 긴급상황을 대비해 (일정 수준) 물품을 비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장 회장은 “장관께서 의료의 지속성을 잘 이해하지 못 하신 것 같다”며 "실망이 크다”고 말했다. 

사진=홍성진 가톨릭대 여의도성모병원 교수 제공, "1일 1장 사용하라"며 병원으로부터 지급받은 덴탈 마스크 '3장'
사진=홍성진 가톨릭대 여의도성모병원 교수 제공, "1일 1장 사용하라"며 병원으로부터 지급받은 덴탈 마스크 '3장'

의료계는 결국 정부가 마스크 부족 사태에 대한 책임을 의료계로 떠넘기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마스크를 많이 소비할 수밖에 없고 실제로 가장 많이 소비하고 있는 의료계에 책임을 떠넘김으로써, 마스크 부족 사태로 성난 민심을 정부로부터 의료계로 돌리려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홍성진 교수는 “(전화 인터뷰 도중) 병원에서 배급한 마스크가 왔는데 덴탈 마스크 3장뿐이고 (이마저도) 하루에 한 장씩만 쓰라고도 했다”며 “정부가 (마스크 부족 사태에 대한 책임을) 의료계에 전가하려는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김대하 이사 역시 “현장이 매우 열악한데도 불구하고 진료에 힘을 다하는 의료진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화나는 발언”이라며 “정부가 (마스크 부족 사태에 대한) 책임 회피하려고 의료진을 탓하는 것이냐”고 지적했다.

박 장관의 국회 발언이 국가 의료정책을 책임지는 수장으로서 적절하지 못한 반응이었다는 의견도 나왔다. 

박종훈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장은 “팩트를 잘못 알고 있었던 것까지는 '익스큐즈'가 될 수 있다”면서도 “’잘 몰랐다’며 ‘조치 취하겠다’고 답하지 않고 (공격적으로) 대응한 반응은 매우 잘못됐다”고 했다. 또 박 병원장은 “장관께서 잘 모르고 발언하신 것 같다”며 “순간적으로 감정적으로, 과도하게 방어적으로 대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장유석 경북의사회장도 “국회의원이 지적하면 ‘잘 반영하겠다’고 대답하면 될 것을 ‘현장에 더 많이 다녀봤다’고 하면 되냐”며 박능후 장관의 태도를 문제로 짚었다. 장 회장은 “현재 16개 시·도 회장단과 함께 성명서를 준비 중인 상황”이라고도 밝혔다.

의료계는 마스크 부족 사태로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국민이라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홍성진 교수는 “(마스크 부족 상황이) 환자에게 영향이 없을 수는 없다”면서 “환자에게 최선의 진료를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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