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침, 의사, 그리고 변호사를 위한 소소한 변명
봉침, 의사, 그리고 변호사를 위한 소소한 변명
  • 전성훈
  • 승인 2020.03.11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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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72)
전 성 훈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 성 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 법무법인(유한) 한별

작년의 ‘봉침 사건’이 기억나는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면, ‘한의사-봉침-아나필락시스-가정의학과 의사-응급의료-의사에게도 손해배상청구’ 이렇게 나열하면 기억이 날 것이다. 그리고 ‘아 그 사건!’이라는 기억과 동시에, ‘도대체 의사가 무슨 잘못인가?’라고 화가 치미는 의사들이 많을 것이다.

어떤 술자리에서 그 사건에 대해 얘기가 나왔다. 그리고 친한 의사분 역시 ‘왜 도와주러 간 의사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가? 환자 유족이 너무한 것이다’라고 분노를 토로했다. 그래서 필자는 ‘아마 변호사가 의사도 피고로 삼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을 것이고, 환자 유족은 그 조언에 따랐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의사분은 ‘그러면 그 변호사가 제 정신이 아니구만!’이라고 언성을 높였다. 그리고 취중에 조금 격했다 싶었는지, ‘물론 변호사님(필자) 같이 의사들을 도와주는 분도 있지만...’이라고 목소리를 낮췄다.
자리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봉침 사건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일단 의사 아닌 사람들도 이렇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포털 사이트에서 봉침 사건에 대한 기사를 찾아서 그에 딸려 있는 댓글들을 읽어 보았다. 역시 ‘도와주러 간 의사에게 왜 손해배상을 청구한 거냐? 이러면 어떤 의사가 응급상황에서 나서겠느냐?’라는 취지의 댓글들이 압도적 다수였다. 그렇다면 ‘응급의료에 나선 의사도 피고로 삼아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은 변호사의 조언에 따른 것이다’라고 한다면, 그 변호사 역시 엄청난 비난을 받을 것이 확실하다.

아직도 차는 도로 위를 씽씽 달리고 있다. 그래서 계속 생각해 보았다. 내가 봉침 사건의 환자 유족을 돕게 되었다면 뭐라고 조언했을 것인가? 그런데 이 자문(自問)에는 쉽게 자답(自答)이 나왔다. ‘당연히 의사도 피고로 삼아 소송 걸었겠지.’
흔히 별 구분 없이 사용하지만, 변호사, 변호인, 대리인이라는 용어는 각기 다르다. 직업의 하나로 일반적으로 칭할 때에는 ‘변호사’이고, 형사소송에서 피의자나 피고인을 도울 때에는 ‘변호인’이고, 민사소송 등에서 당사자를 대리할 때에는 (소송)대리인이다.

방론으로, 판사는 어떤가? (조직에서의 직급에 따라 호칭이 일부 다르지만 이는 논외로 하면) 직업의 하나로 일반적으로 칭할 때에는 ‘법관’이고, 법원의 일원으로서 재판 등의 직무를 수행할 때에는 ‘판사’이다. 그리고 각급 법원에 설치되어 있는 재판부의 장으로 직무를 수행할 때에는 ‘재판장’이라 칭한다. 검사는 어떤가? 전부 그냥 ‘검사’다. 오래 전에 폐지되었지만, 검사 전체를 하나의 유기체처럼 인식하는 ‘검사동일체 원칙’이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변호사로 돌아와서, 변호사가 ‘변호인’으로 일할 때에는 강한 공공성이 요구된다. 반면 변호사가 ‘대리인’으로 일할 때에는, 역시 공공성이 요구되기는 하나, 기본적으로 당사자(원고, 피고)의 이익을 최대한 대변해야 한다. 그렇기에 필자 역시 의사도 피고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을 것이다.

물론 그래도 불만인 분들이 많을 것이다. ‘딱 봐도 의사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변호사가 그렇게 무고한 사람한테 소송을 걸라고 조언해도 돼요?’ 이렇게 반문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러나 어떤 변호사도 ‘딱 봐서’ 알 수는 없다. 소송의 결과를 장담하는 변호사는 변호사가 아니고 예언가다. 왜냐하면 주장과 증거가 종합되어 ‘법적으로 재구성된 사실관계’가 확인되기 전까지는, 변호사는 의뢰인의 기억과 말만을 믿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뢰인의 기억은 정확치 않은 경우가 많고, 의뢰인의 말은 정확치 않은 기억 중에서도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전달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상대방은 허수아비가 아니고, 상대방 대리인(변호사)은 더욱 그렇다.

‘딱 봐서’ 알 수는 없기에, 변호사는 일단 가능성이 보인다면 소송을 제기할 것을, 그리고 관련된 사람은 모두 피고에 포함시킬 것을 조언할 수밖에 없다. 만에 하나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다가 사실관계가 밝혀진 후 예전에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유리했다는 결론에 다다르면,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불이익(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민사건 형사건 소송을 제기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은 고스란히 당사자가 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대리인인 변호사가 무고하다고 생각되는 제3자를 끌어들이면서까지 당사자의 이익을 최대한 대변하는 것이 지나친 것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

첫째 모든 사람들은, 내가 믿고 맡긴 변호사가 ‘제한 없는’ 조언과 조력을 자신에게 제공해 주기를 바란다. 변호사가 ‘사람들의 일반적 도덕관념에 근거한 제한을 두고’ 조언과 조력을 제공해 줄 것을 바라는 사람은 없다. 게다가 사람들의 일반적 도덕관념은, 내로남불 원칙에 따라 내 가족 외의 사람에게는 무척이나 엄격하지 않은가.

둘째 소송기술적으로, 무고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사건과 관련된 제3자를 소송에 끌어들여 진술을 확보하는 것은 유용한 방법인 경우가 많다. 그 제3자는 수사기관 또는 법원을 오가야 할 것이고, 당연히 번거롭고 불편할 것이다. 하지만 대리인은 당사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므로, 제3자의 번거로움이나 불편함을 고려하여 그를 소송에 끌어들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래서 필자가 ‘아나필락시스 환자를 도우러 간 가정의학과 원장님도 피고로 삼아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한다’라고 환자 유족에게 조언할 것이라 하더라도, 필자를 너무 미워하지 마시기 바란다. 그것이 변호사의 본질이고, 연쇄살인범이 치명상을 입었다 하더라도 일단 살려야 하는 의사의 본질과 유사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필자가 의사를 도울 때에도, 이런 변호사의 본질에 따라 ‘제한 없는’ 조언과 조력을 제공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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