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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이럴 때 쓰라고 만들어놨더니···코로나 터지자 무용지물된 '음압병실'
[단독] 이럴 때 쓰라고 만들어놨더니···코로나 터지자 무용지물된 '음압병실'
  • 배준열 기자
  • 승인 2020.03.10 1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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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메르스 사태 계기로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에 의무설치
환자동선 고려 안돼 코로나19 전원 시 주변 일반병동 다 비워야
의료계 "규제·형식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집착이 탁상행정 불러와"

# 지방 소재 A병원은 지난 2015년 메르스 사태 이후 음압격리병상 설치를 의무화한 정부의 인증 기준에 따라 현재 2개의 음압병상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19 확진 환자가 이송됐을 때 기존 음압병실이 아닌 일반병실에 '이동형 음압기'를 설치해 환자를 입원시킨 뒤 격리치료하고 있다. 

이처럼 막대한 비용을 들여 음압병실을 설치한 병원 중 상당수가 정작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이를 활용해야 하는 상황이 닥쳤음에도 음압병실 대신 일반병실을 임시 음압병실로 개조해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5년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정부 지침에 따라 대형병원들은 막대한 비용을 들여 음압병실을 설치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대형 감염병 유행 시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미리 대비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막상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 비싼 돈을 들여 만들어놓은 음압병실이 현장에서 '무용지물'이 돼버린 것이다. 왜 이처럼 어이 없는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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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취재 결과, 이는 정부 인증기준에 따라 설치된 음압병실 대부분이 환자 '동선(動線)'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설계돼 원내에서 감염환자 이송 시 '감염' 우려가 있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병원 입장에서 막상 음압병실을 사용하려면 주변의 일반 환자들이 감염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주변 병동 전체를 비우지 않고는 쓸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감염병 환자는 일반 환자와 달리 늘 주변에 감염병이 전파될 우려를 고려해 조치해야 한다. 가장 기본원칙은 동선을 최대한 짧게 함으로써 외부 노출을 줄이는 것이다. 

따라서 유달리 전파력이 높은 신종 바이러스인 코로나19 확진자와 같은 감염병 환자가 병원에 이송되면 병원 진입부터 음압병실까지 거리가 최대한 짧아야 한다. 코로나19의 병원 내 감염을 막기 위해 현재 전국에 290개가 지정돼 있는 ‘국민안심병원’의 기본 지정요건도 호흡기 환자와 비호흡기 환자의 진료과정이 일정 수준 이상 '분리'돼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대부분의 대형병원들에 설치된 음압병실은 병원입구나 응급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기존 병원 건물에 음압병실을 증축하다 보니 동선에 대한 고려가 없었던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환자 이송 과정에서 감염이 확산될 우려가 있고 병원의 내원객들도 불안해 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확진환자들이 전원돼도 음암병실 대신 병원 진입 지점에서 가까운 일반병실을 임시 음압병실로 개조해 쓰는 촌극이 벌어지는 이유다. 

음압병상 설치에는 많은 비용이 투입된다. 바이러스 노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환풍구에 바이러스가 통과하지 못하는 고성능 헤파필터와 기타 멸균처리 시설이 필요하다. 환자 이송 과정에도 공기 여과 필터 등을 갖춘 음압들것 등 특수 장비가 필요하다.

이것이 다가 아니다. ‘인터락’이라고 불리는, 절대로 동시에 열리지 않는 두 개 이상의 문도 있어야 한다. 인터락 사이에는 병실을 드나드는 의료진이 장비 착용을 점검하고 환자와 접촉이 잦은 부위를 소독할 수 있는 공간도 있어야 한다. 이 공간에는 병실 안쪽과 바깥쪽의 기압차를 알려주는 음압 측정기와 소독제도 갖추도록 되어 있다. 

이처럼 전국의 대형병원들이 막대한 노력과 비용을 들여 구축한 음압병실들이 막상 코로나19가 터지자 현실에서는 아무런 쓸모없이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의료계는 이같은 촌극이 벌어지게 된 이유가 정부가 의료현장에 대한 세밀한 이해 없이 새로운 규제를 밀어붙인 탓이 크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지난 2015년 메르스 사태 이후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에 음압병상 설치를 의무화했다. 특히 상급종합병원은 국가지정수준(병실면적 15㎡ 전실을 500병상당 1개 설치)의 음압격리병상 설치가 의무화되면서 해당 병원들은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 음압병실 설치에 나섰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병원계 관계자는 “전국의 상급종합병원에 설치된 음압병실의 30%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이런식으로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현재 추정되고 있다”며 “정부의 음압병실 설치 의무화 조치 당시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물론 일선 병원들도 감염 차단을 위한 ‘환자동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이런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고 개탄했다. 

일선 의료 현장에 맞지 않는 규제나 형식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집착이 이런 탁상행정을 만들어냈다고 지적한 것이다. 이 관계자는 “외국의 경우 인증 시 감염병 환자가 내원했을 때 병원이 실제로 '얼마나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지 우리나라처럼 '단지 음압격리병실을 구비하고 있는지'만을 인증기준으로 내세우지 않는다”며 “규제와 형식에 지나치게 치우친 공무원들의 탁상행정이 결국 이번처럼 병원의 자원을 갖추어 놓고도 막상 필요할 때 활용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례를 만들어 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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