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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더이상 미뤄둘 수 없는 '감정촉탁의' 활성화···헐값 감정료 현실화부터
[칼럼] 더이상 미뤄둘 수 없는 '감정촉탁의' 활성화···헐값 감정료 현실화부터
  • 권민지 기자
  • 승인 2020.02.24 12: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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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감정인 제도 정착 안돼 의료 감정에만 3~4년씩 소요
과목별로 일괄 책정되는 국내 감정보수, 외국에 비해 너무 낮아

‘의사가 의사를 재판한다.’ 

의료 재판의 경우 사실관계 판단에 있어 비전문가의 감정에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의료인이 전문감정을 볼 수밖에 없다 보니, 의료인의 판단이 재판 결과를 좌우하게 되는 데서 비롯된 말이다.

판사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전문적인 의료 행위에 대해 법리적 다툼을 돕기 위한 ‘해설자’가 필요하다. 이때 해설자 역할을 맡는 사람이 바로 ‘감정촉탁의’다.

지난 12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진행됐던 이대목동병원 3차 공판에서는 이런 감정촉탁의 선정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이날 검찰 측은 L교수를 감정촉탁인으로 선정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변호인 측은 “L교수는 전공과목이 전혀 다르다”며 감정촉탁인으로 부적합하다고 반박했다. 재판이 끝난 뒤 한 변호사는 “(전공과목이 문제가 아니라) 사실상 L교수는 질본과 가까운 인물”이라고 말했다. 검찰 측에 우호적인 감정을 내릴 수 있기에 변호인 측에서 '부적절' 입장을 밝혔다는 것이다. 

사실 이날 벌어진 공방은 약과라 할 수 있다. 심하게는 감정 절차만 3~4년씩 걸리는 경우도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취재를 해보니 우선 국내에는 검찰과 변호인이 모두 납득할 만한 공증을 받은 감정인 제도가 제대로 정착돼 있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혔다. 

미국의 경우 ‘의료감정전문의위원회(ABIME, American board of independent medical examiners)’를 설립해 1994년부터 감정전문의를 배출하고 있다. 15시간 이상의 연수교육을 받은 뒤 시험을 통과하면 CIME(certified IME) 자격을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최근 대한의료감정학회에서 도입한 ‘대한의료감정학회 인증의’ 자격 시험이 이와 유사한 제도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불과 3년 전인 2017년도부터 시행돼 지금까지 이 제도를 통해 배출한 인증의도 95명에 지나지 않는다.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한 부분이다. 

사실 이처럼 국내에 감정촉탁의 제도가 자리잡지 못하는 데에는 현실적인 이유가 크다. 보수가 너무 낮아 의사들이 감정촉탁 업무 자체를 기피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의료 감정 보수는 '과목별'로 책정된다. 대법원 예규에 따르면 신체감정에 대한 감정료는 과목당 20만원이고, 과목이 2개 이상인 경우엔 각 과목당 감정료를 합산토록 하고 있다. 외국과 비교하면 몹시 낮은 수준이다. 

이에 비해 독일의 경우 감정료가 '시급'으로 책정된다. ‘증인및감정인의보수에관한법(ZSEG)’에 따르면 감정료는 시간당 25~52유로(약 3만3000~6만9000원)로, 감정에 필요한 전문지식의 수준이나 감정의 난이도까지 반영해 '차등' 지급한다. 감정하기가 까다로우면 더 높은 감정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처럼 현실에 맞지 않는 낮은 감정료는 자연히 감정에 대한 공급을 위축시킨다. 전성훈 변호사(법무법인 한별)는 “교수님들이 진료 보느라 바쁜 가운데 감정을 맡는데, 법정에 출석해 질문까지 받으라고 하면 난처해한다”며 “의사들 사이에서 ‘(의료 감정은) 돈도 안 되고 귀찮기만 하더라’는 의견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지난해 출범한 대한의사협회의 의료감정원과 같은 전문 감정기구를 활성화하는 것이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전문성 있는 전문감정인을 확보하기 위해선 그에 걸맞은 보수가 책정돼야 하고, 일각에선 "일방적으로 의료계 편을 드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어 실제로 활성화되기까지 우여곡절이 예상된다. 

감정촉탁의는 의료 재판에서 판사 다음으로 재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의 판단은 한 사람의 운명을 뒤바꿀 수도 있다. 정확하고 신속한 감정촉탁 제도가 활성화돼야 함은 불문가지다. 감정촉탁 비용의 현실화를 비롯한 제반 논의를 더 이상 미뤄둬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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