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방역의 '첨병'돼야 할 보건소, 방역의 '구멍'될라
국가 방역의 '첨병'돼야 할 보건소, 방역의 '구멍'될라
  • 이한솔·권민지 기자
  • 승인 2020.02.10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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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코로나 확산에 오롯이 '방역'업무 집중해야 하는데 현실은 안 따라줘
일반진료 보느라 일손부족···지역의사회·대형병원에 "사람 보내달라" SOS
의료사각지대 해소가 목적인데···박홍준 회장 "일반진료는 1차의료기관에 맡겨야"
서울의 한 보건소 입구

지난달 31일 서울의 한 보건소에 전화를 걸어 일반진료를 볼 수 있느냐고 물었다. 담당자는 “문제 없다”며 “고혈압의 경우 약 이름과 용법, 용량만 알아서 방문하면 처방이 가능하다”고 친절히 설명해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우려된다는 입장을 전하자 “선별진료소는 출입구가 다르니 걱정 안 해도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잠시 뒤 이 보건소를 직접 방문해보니 보건소 정문 바로 앞에 선별진료소가 설치돼 있었다. 선별진료소가 정문과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어서 신종 코로나 의심환자와 일반 진료를 보러 온 환자들이 마주치기 쉬운 구조였다. 이곳에서 만난 60대 여성은 “신종 코로나 때문에 난리인데, 선별진료소가 근처에 있어서 불안하다”고 말했다. 선별진료소를 지나 보건소 안으로 들어가니 일상적인 진료를 보러 온 주민 30여명이 차례를 기다리느라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북적거렸다.

보건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대형 감염병 사태가 터졌을 때 방역(防疫)의 최전선에서 질병과 맞서 싸우는 ‘첨병’ 역할을 하는 곳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서 보건소가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일선 의료현장에 ‘혼선’만 일으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선 보건소가 방역의 첨병은커녕, ‘구멍’이 돼버린 듯한 모습이다.

실제로 태국 여행에서 돌아와 확진 판정을 받은 16번 환자의 경우 이 환자가 내원한 21세기병원이 신종 코로나가 의심돼 관할 광산구 보건소에 전화했지만 ‘중국에 다녀오지 않았으니 검사 대상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답변을 듣고 초기에 검사를 받을 수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 방역의 ‘첨병’ 역할을 해야 할 보건소가 의료기관의 적극적인 대처를 오히려 가로막은 꼴이다.

의료 전문가들은 애초 국가 방역에 방점을 두고 운영돼야 할 보건소가 1차 진료에 치중하면서 사실상 동네의원처럼 운영되다보니 이 같은 결과는 예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고 말한다. 

◆비워둔 선별진료소···내원 환자 체온검사는 '하는둥 마는둥' 

보건소 앞에 설치된 천막형 '선별진료소'

같은 날 오후 서울의 또 다른 보건소. 이곳에서는 건물 밖 주차장 자리에 천막을 세워놓고 선별진료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선별진료소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보건소 관계자는 “신고가 들어오면 의료진이 내려가서 진찰하는 시스템”이라며 “보통 한 명 정도는 상주하는 데 오늘은 출장이 있어서 비워놨다”고 말했다. 

보건소 안으로 들어가니 입구에서 2명의 직원이 적외선 온도계를 방문객들의 이마에 쏴서 온도를 체크하고 있었다. 기자 역시 온도를 측정하는데, 자꾸 오류가 나자 직원이 혼잣말로 “날씨가 추워서 온도계가 잘 작동하지 않네”라고 중얼거렸다. 일부 주민들은 온도 체크를 건너뛰고 그대로 보건소 안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보건소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모두 마스크를 착용했지만 방문객 중에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이들도 적지 않았다. 순간 어디선가 ‘기침’ 소리가 들려오자 방문객들이 소리가 들리는 쪽을 신경질적으로 노려봤다.

보건소 입구에 설치된 적외선 온도계

현재 대부분의 보건소는 보건소 건물 인근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의심환자 등을 위한 선별진료소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보건소에서는 선별진료소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보건소 측은 '일손 부족'을 이유로 들고 있다. 평상시처럼 일반진료 업무를 보면서 지금 같은 비상상황에 대처해야 하다 보니 선별진료소 관리나 의심환자 응대 등에 세심하게 신경을 쓰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부 보건소는 부족한 일손을 메우기 위해 인근 병원이나 지역의사회 등에 인력 지원을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지역의사회 관계자는 “평소 알고 지내던 보건소 측에서 도움을 요청해오니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회원들은 우리도 힘든데 이럴 때 일하라고 있는 보건소를 도와줘야 하냐고 불만을 토로하니 진퇴양난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근 전공의의 근무시간을 제한하는 전공의법 시행으로 가뜩이나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는 대학병원들도 마찬가지로 보건소의 인력 지원 요청에 난감해하고 있다.

◆복지부 "일반진료 축소하라" 권고에도 일부 보건소 "초진도 (일반진료) 괜찮아" 

전문가들은 적어도 지금과 같은 비상상황에서는 보건소가 일상적인 진료를 대폭 줄이고 방역 대책 마련에 발벗고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구나 보건소마다 설치한 선별진료소를 방문한 ‘의심환자’와 일반진료를 받으러 보건소를 방문한 일반환자가 접촉하게 되면 지역 내 감염이 일어날 위험 또한 적지 않은 상황이다.

본지 취재결과 보건복지부도 이번 신종 코로나 사태가 발발하자 일선 보건소에 공문을 내려보내 일반진료와 건강증진 업무를 ‘축소’하도록 ‘권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실제 현실은 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본지가 지난 31일 서울시내 보건소 약 20곳에 평소처럼 일반진료를 볼 수 있는지 문의한 결과, 대부분 “예약없이 방문 가능하다”고 안내했고, 일부는 “초진이어도 괜찮다”고 답했다. 

보건소 입장에선 사실상 전시(戰時)인 상황에서 평소처럼 일반진료가 이뤄지는 데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지역보건법에는 감염병 대응에 대한 내용도 있지만 지역주민의 건강증진에 대한 내용도 담겨있다”며 “상황에 따른 업무비율에 대해 ‘옳다’ ‘그르다’를 논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도 일선 보건소에서 1차 진료와 같은 건강증진 업무를 보는 데 대해 문제 삼을 수 없다는 취지다.

실제로 과거 ‘보건소법’에서는 제6조에 보건소의 ‘업무’를 규정하면서 제1호에 ‘전염병 및 질병의 예방․관리와 진료에 관한 사항’이라고 명시함으로써 보건소의 주요 역할 중 전염병 예방 및 관리 업무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에 비해 현재 보건소 설치와 운영 등을 규정하고 있는 ‘지역보건법’에서는 제11조 ‘보건소의 기능 및 업무’ 가운데서도 제5호 ‘나’목에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를 명시하고 있다. ‘가’목의 ‘국민건강증진․구강건강․영양관리사업 및 보건교육’보다도 감염병 예방 및 관리가 뒤에 놓여있다.

◆보건소 절반이 1km 근방에 민간의료기관 존재···대공협 "전향적 개편 필요"

보건소가 지금처럼 상시적으로 일반 진료를 보는 현 시스템이 더 이상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애초 보건소를 설립한 목적이 '의료취약지'에 보건소를 세움으로써 대한민국의 의료 '사각지대'를 해소하자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이하 대공협)에 따르면 지난 2018년 현재 전국의 보건소 및 보건지소 1360개 기관 중 44.2%에 달하는 601곳이 반경 1km이내에 민간 의료기관(한의원, 치과의원 제외)이 존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광역시나 특별자치단위를 제외해도 비슷한 결과(44.3%)가 나오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서울 같은 대도시는 물론,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보건소가 의료사각지대를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동네 의원과 '경쟁'하는 상황인 것이다. 현재 각 보건소마다 하루에 약 100명의 환자를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환자 대부분은 만성질환을 가진 경우다. 

이 때문에 보건소에 근무하는 의사의 다수를 차지하는 공보의들은 공보의 정원을 ‘일반진료’가 아닌 ‘보건사업’ 등에 배치하고 교육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당국에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조중현 대공협 회장은 “보건소의 역할에 대해서는 전향적인 개편이 있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며 “인구 수 3만명 수준의 의료취약지라면 몰라도 인구 수가 15만, 30만 이상으로 병의원이 많이 개설돼 있는 지역에서는 대폭적인 변화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홍준 서울시의사회 회장은 "서울시감염병협력위원회 등을 통해서도 보건소가 본연의 업무인 방역에 최선을 다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며 "나아가 현재의 '비정상적인' 구조를 바로잡아 보건소의 일반진료 역할은 지역의 1차 의료기관이 담당하도록 반드시 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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