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聖)스러운 기초의학자 조승열 교수 1주기(週忌)를 맞이하여
성(聖)스러운 기초의학자 조승열 교수 1주기(週忌)를 맞이하여
  • 의사신문
  • 승인 2020.02.04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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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준 기서울대의대 명예교수국립암센터 핵의학과
정 준 기 서울대의대 명예교수 국립암센터 핵의학과

우리나라 의학한림원의 제4대 회장이었던 조승열 교수님이 지난 2019년 1월 27일 74세의 안타까운 나이에 별세하셨다. 선생님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기생충학 교수를 시작해 중앙의대, 가톨릭의대, 성균관의대로 옮기면서 전공 분야를 확장하고 또 이들 신생 대학이 자리를 잡는 데 크게 공헌했다. 요즘은 인기가 적은 편인 기생충학을 전공하여 많은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내색하지 않고 자신을 충실하게 다그치는 외유내강의 전형이었다.

조 선생님이 의욕에 찬 조교수 시절에 내가 학생으로 직접 가르침을 받은 것은 행운이었으나, 곧 모교를 떠나서 선생님과 가까이 할 기회가 많지는 않았다. 지금도 유감스럽고 아쉬운 인연이었다. 사실 일 년 전 선생님이 타계하셨을 때 추모의 글을 쓰고 싶었으나 선생님과 친교도 적어 망설인 끝에 행동에 옮기지 못했다. 그러나 떠나신 지 1년을 보내면서 멀리서 존경하고 가끔의 만남을 소중하게 여겼던 입장에서 이 글을 쓴다.

아마도 선생님은 우리나라 의학계에서 가장 순수하고 겸손한 학자일 게다. 모두들 추억이 있겠지만 내 몇가지 경험을 예로 들겠다. 우선 내가 의과 대학생 시절의 일이다. 과거에는 우리나라가 기생충 왕국이었으나 앞으로는 필요가 없겠다고 건방지게 생각한 나는 이 과목 공부를 소홀히 해 시험에서 C 학점을 받았다. 우연히 개인적으로 선생님을 만났는데 내 이름은 물론 성적까지 알고 계셨다! 더 놀란 일은 “의과대학 성적 중 유일한 C 학점”이라고 말하는 나에게 “흥미 있게 가르치지 못한 교수도 책임이 있다”고 진심으로 미안함을 표시해 학생인 내가 죄송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게 하셨다.

그 후로 뜸하다가 내가 모교 교수가 되어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역사문화원장을 맡고 나서 선생님과 가까이 할 기회가 많았다. 그때 선생님은 중앙의대, 성균관의대가 명문 의대로 도약하는 발판을 만들고 이미 정년퇴직을 하셨다. 또한 대한의학회에서 잡지 출판과 의학용어의 선진화에 관한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그후 대한민국 의학한림원장까지 역임한 의료계의 원로이셨다. 그러면서도 항상 업적에 비해 너무 대접을 받는다고 겸손해 하셨다.

선생님은 서울대병원 문화원에서 매달 개최하는 심포지엄을 비롯해서 각종 행사에 개근을 하셨고, 언제나 후배들을 격려하고 응원해 주셨다. 한번은 의학회 용어위원회 회의에서 핵의학 관련 용어를 처음 엉성하게 발표한 나에게 품격 있는 강의를 해주었다고 평을 해주셨다. 내가 강의 후 지금까지 받았던 최고의 찬사였다.

선생님은 나와 분야가 아주 달라서 학문상에서는 접점이 없었으나 나에게 관심을 두셨던 것 같다. 독서를 즐기는 선생님 부부는 내가 수필집을 낼 때마다 격려를 잊지 않으셨고 미국 국립암연구소에서 발행한 책자에 내 논문이 인용된 것을 찾아내고는 나보다 더 기뻐하셨다. 그러나 여러 후학 중 나에게만 특별한 사랑과 배려를 주신 것은 아니었다. 완성된 인격자에게서만 가능한, 많은 사람을 함께 아우르는 햇빛 같은 사랑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그를 살게끔 하는 것이다(愛之, 慾其生)” 공자의 말씀이다.

선생님을 더 빛나게 만든 것은 학자로서의 업적이나 품위가 아니라 소박한 생활, 따뜻한 마음과 높은 도덕률이었다. 이러한 품성이 선생님의 지극히 평범한(?) 외모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었다. 선배나 동료에게는 착하고 성실한 KS 보증인으로, 후학들에게는 닮고 싶은 교수님의 ‘모델’이 되었다. 처음에는 친근하여 만만하지만 점차 우리가 쫓아가기 힘든 원형임을 깨닫게 된다.

조선 성종때 대사헌 이석형 공은 한국판 히포크라테스 선서인 <의원정심(醫員正心)>에서 의사를 의자(醫子), 의원(醫員), 의학자(醫學者)로 나누고 ‘의학자’는 높은 실력에 성(聖)스러운 마음으로 환자를 대하여 세간의 존경을 받는 의사로 정의하였다. 나는 감히 조승열 교수님이 이런 분류인 성스러운 기초의학자였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마치 장님이 자기가 만진 한정되고 적은 소견만으로 코끼리를 설명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까운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추론하면 전체 모습을 알 수 있다고 희망합니다. 단지 어쭙잖은 내 글이 선생님의 명예에 누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여러분의 넓은 아량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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