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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사 2월호 낭만닥터 인터뷰(서혜정 연세재활의학과의원(도봉구) 원장)
서울의사 2월호 낭만닥터 인터뷰(서혜정 연세재활의학과의원(도봉구) 원장)
  • 의사신문
  • 승인 2020.01.21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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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일상의 환기 장치입니다
항상 즐겁고 자유로운 삶을 꿈꿔요”


서혜정 연세재활의학과의원(도봉구) 원장  


 
사람 냄새 나는 의사 서혜정 원장의 병원은 흡사 ‘사랑방’ 같다. 따뜻한 색의 나무 바닥을 밟고 다니니 긴장한 근육이 스르르 풀린다. 티 없이 맑게 웃는 서 원장의 웃음도 한몫하는 것 같다. 매 순간 자유롭게 즐기는 삶을 추구하는 그에게 음악은 윤활유다. 풍물패부터 중창단까지 섭렵한 무대 체질 의사 서 원장과 유쾌한 대화를 나눴다.

 

“어려서부터 우리 소리에 흥미를 느꼈어요.
특히 악기의 울림에 실리는 리듬, 무척 매력 있죠”
서 원장은 어려서 국악방송이 나오는 TV 앞에 자주 멈춰 섰다. 이내 앉아 꽤 오랫동안 오롯이 한 사람이 이끌어나가는 판소리 무대에 푹 빠지곤 했다. 의대에 진학해서는 풍물패에 들고 싶었다. 그러나 당시 풍물은 소위 운동권의 전유물처럼 음악보단 주로 사회적 이슈를 끄는 용도로 사용됐다. 서 원장은 아쉬운 대로 정악(正樂)을 다루는 국악연구회를 찾았고, 그곳에서 거문고를 탔다.
“우리나라 국악은 민속악(民俗樂)과 정악으로 나뉘어요. 쉽게 말해 민속악은 일반 백성이 즐겼고 정악은 궁중에서 쓰였죠. 의대 입학 후 어려서부터 내제된 우리 음악에 대한 관심을 펼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여유 있었던 예과 때와는 달리 본과 때부터는 바빠져서 활동을 지속할 순 없었습니다.”
그래도 당시 동아리 모임은 여전히 끈끈하게 유지 중이라며 서 원장은 웃는다. 본과를 거쳐 전문의가 되는 세월 동안 서 원장은 의사로서의 삶에 충실했다. 그래도 마음 한 켠에는 우리 음악에 대한 애정이 자리 잡고 있었으리라. 그런 서 원장은 2005년 개원 이후 반가운 인연을 만났다. 장구를 치는 환자가 내원한 것이다. 평소 환자의 생활습관 교정을 위해 일상생활을 묻고 답하는 진료 방식 덕분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대개 환자들이 잘못된 생활습관이나 직업의 특수성으로 통증을 호소하거든요. 그래서 치료하면서 잠은 어떻게 주무시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잡담을 많이 해요. (웃음) 무튼 그때 만난 환자분이 사물놀이 멤버를 모으고 있다는 거예요! 병원에서 5분 거리에 연습 장소도 있었고… 안 할 이유가 없었죠.”
마침내 서 원장은 2006년 ‘다푸리’의 3기 회원이 됐다. 이후 본격적으로 사물놀이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오래전부터 백성들이 잔치나 농사일을 할 때 온 동네에 울려 퍼졌던 풍물놀이가 사물놀이의 기원이다. 1978년 남사당패 풍물놀이꾼이었던 김덕수 선생을 주축으로 한 사물놀이패가 현재 일반인들에게 익숙한 무대 구성의 사물놀이 공연을 만들었다.
“사물놀이는 사물, 즉 꽹과리, 장구, 북, 징 네 가지의 타악기를 실내에서 연주하는 음악입니다. 김덕수사물놀이패를 통해 본래 밖에서 즐겼던 음악이 무대 공연으로 재탄생된 거죠. 특히 네 가지 악기는 각각 자연의 소리를 담고 있어요. 꽹과리는 천둥, 장구는 빗소리, 북은 구름, 징은 바람이죠. 자연의 소리와 울림에 리듬이 실리면 누구든 흠뻑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가락 없이 오로지 리듬과 비트만 존재하는 음악에 매료되면서 서 원장에겐 새로운 시야가 생겼다. 과거 오케스트라 공연을 관람할 때 화려한 현악기에 시선을 고정했지만, 이제는 뒤쪽의 묵직한 타악기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무엇보다 사물놀이를 할 때는 리듬에 집중하다 보니 잡념이 사라지고, 잔치나 노동에 쓰였던 음악이라 흥겹고 신나요. 또 나만 잘났다고 할 수 있는 음악이 아니기 때문에 팀원들과의 호흡, 관계도 중요합니다.”
아쉽게도 서 원장이 몸담았던 ‘다푸리’는 지난해를 마지막으로 정리됐다. 저마다 개인적인 이유로 자연스럽게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간 것. 그러나 인간적인 관계는 돈독하게 유지 중이다.
“풍물패 팀원들과 함께 연습하고 무대에 올랐던 순간들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사물놀이와 멀어질 수도 있을 법하지만, 둘째 딸이 장구를 전공해 한예종 연희과를 졸업했어요. (웃음) 그래서 앞으로도 사물놀이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꾸준할 것 같습니다.”

 


“중창단 ‘DB 칸타비타’를 소개합니다!
의사들에게 1개 정도의 환기 장치는 필수에요”
서 원장의 관심은 우리 음악에만 국한된 게 아니었다. 그는 작년 도봉구의사회 회원들과 함께 중창단을 꾸렸다. 이름하여 ‘DB 칸타비타’. 풍물패와 중창단… 약간의 거리감이 느껴진다. 서 원장은 본과 때 합창반 활동도 했다며, 당시 방학 때 열심히 연습해 무대에 올랐던 기억이 어느 날 문득 떠올랐다며 결성 배경을 들려준다. 
“매년 도봉구의사회 송년회가 열리는데요. ‘우리가 여는 음악회에서 우리가 뭔가 해보면 어떨까?’란 생각이 들더군요. 현재 도봉구의사회 부회장이기도 해서 회원들과 뭔가 해보자는 의견을 냈습니다. 처음엔 합창단을 꾸리려 했는데, 하겠다는 분들이 적더라고요. 아무래도 조금의 용기가 필요하니까요.”
서 원장은 그가 총무이사 시절 결성했던 여의사 모임에서도 멤버를 모집했다. 몇 명의 여의사가 의지를 내비쳤고 마침내 중창단 DB 칸타비타가 탄생했다. 성악가 출신의 강사 지도로 서 원장을 포함한 5인의 중창단은 4개월 만에 무대에 올랐다.
“2018년 8월부터 4개월가량 연습해 무대에 올랐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했던 것 같아요. (웃음) ‘보리밭’과 ‘남촌’, 오페라
<쟌니스키키> 중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총 3곡을 불렀는데요. 결혼 이후 처음으로 드레스를 입고 풀메이크업을 했던 것 같아요. 하하!”
실수 없이 마무리된 공연에 서 원장은 뿌듯함을 느꼈다. 이후 중창단에는 남자 멤버가 새로 들어와 현재 총 6명의 단원이 주기적으로 모여 연습을 이어나가고 있다. 향후 중창단은 5~6월에 열리는 도봉구의사회 회원한마당, 12월에 열리는 도봉구의사회 송년음악회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1년에 2번의 공연을 준비하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활달한 성향과 무대 위에서 더 대담해지는 무대 체질의 서 원장에겐 삶의 활력소다. 특히 중창단의 필수요건인 발성 연습을 통해 ‘내 몸 사용법’을 터득하고 있다. 안 쓰던 근육을 활용해 깊은 호흡을 내며 좋은 소리에 가까워지는 과정을 서 원장은 진정으로 즐기고 있다.
 아울러 그는 <서울의사> 독자들, 무엇보다 동료 의사들 또한 즐길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길 바란다고 말한다.
“사실 의사는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입니다. 혼자 판단하고 책임져야 할 때가 많죠. 어떤 취미생활 없이 집과 병원만 왔다 갔다 하면 삶이 상당히 무료할 거예요. 저 또한 그랬을 테죠.  우리 의사 선생님들께서 음악, 미술, 운동… 무엇이든 잠시나마 병원에서 벗어나 스트레스를 희석할 수 있는 취미 생활을 만들기 바랍니다.”
이어 서 원장은 향후 중창단 회원을 늘려 더욱 다양한 레퍼토리와 풍성한 화음으로 무대에 오르고자 한다. 더 많은 회원이 중창단에 관심을 보이고, 참여해주길 바란다며 웃는 그다.

 

“사람 냄새 나는 의사이고 싶고, 
언제나 자유롭고 즐거운 삶을 살고 싶어요”
서 원장은 도봉구에서 재활의학과의원을 개원했다. 그가 도봉구 지역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거주지와 가까워서였다. 이후 개원 자리를 물색하다 보니 도봉구는 인구나 지역 면적에 비해 의료기관이 적었다. 상대적으로 의료혜택에서 다소 소외된 도봉구에 서 원장은 끌렸다. 도봉산, 북한산국립공원 등과 가까운 자연환경도 마음에 들었다. 연고도 아닌 도봉구에 그가 뿌리내린 이유다.
“도봉구는 인간적인 정(情)이 살아있는 곳입니다. 환자분들이 어머니 마음으로 직접 담근 된장이나 고추장을 가져오시기도 하고, 반찬도 가져다 주세요. 작은 간식거리도 진료하면서 먹으라고 챙겨주시죠. (웃음) 아! 할아버님 환자 한 분이 생각나네요.”
연말․연초나 특별한 날이 아니었던, 그저 평범한 날 중 하루였다. 어르신 환자가 쭈뼛쭈뼛하면서 서 원장에게 여성용 발목 스타킹을 주더란다. 무척 부끄러워하던 환자의 모습에 서 원장은 크게 감동했다. 그는 어르신 환자의 마음이 담긴 작은 선물을 한동안 그저 가지고만 있었단다.
“병원은 공짜로 치료받는 곳이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작은 마음을 표현해주실 때 감동스러워요. 그만큼 저도 친근하고 사람 냄새 나는 의사가 되려 노력해요. 아파서 오시는 환자분들이 저희 병원에서만큼은 정말 편하게 계셨으면 좋겠어요. 사랑방처럼 같은 동네 사시는 분들끼리 담소도 나누시면서 쉬러 오신다고 생각해주시길 바랍니다.”
재활의학과 전문의 서 원장은 병원을 찾는 환자들에게 ‘내 몸은 내가 주도권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대개의 환자가 평소 습관이나 자세 때문에 고통받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자신의 의지로 생활습관을 교정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환자들에게 걷는 법, 서는 법 등 올바른 생활습관을 연습하라고 잔소리처럼 얘기해요. 평소 의식하지 못하는 습관을 교정해야 악순환을 막거든요. 그 과정에서는 환자의 의지가 중요합니다. 의지를 갖고 올바른 생활습관을 실천해 호전된 환자들을 볼 때 가장 보람 있어요.”
아직은 지역사회에서 환자들과 함께 숨 쉴 시간이 많은 서 원장이지만, 때때로 은퇴 후의 모습을 그려보곤 한다. 가령 마음 맞는 의사들과 함께 의료봉사에 참여해 노래 한 바탕하는 것과 조그마한 문화재단을 만드는 것이다.
“음악, 미술 등 여러 분야를 문화재단을 통해 접목해보고 싶어요. 너무 거창하고 고급스럽지는 않아도 삶에서 충분히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더 많은 사람이 누릴 수 있도록요. 거기에 의료, 복지 분야까지 결합된다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웃음)”
자유롭고 즐겁게 사는 것. 별 탈 없이 지나치는 일상에 감사하며 사는 것. 현재 서 원장이 삶을 대하는 태도다. 어느 순간부터 목표나 계획에 자신을 끼우지 않겠다고 선언한 서 원장. 훨훨 날 수 있는 날개를 달고 지금 이 순간을 노래할 그의 삶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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