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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삶과 늙음의 과정은 분리될 수 없어"
[인터뷰] "삶과 늙음의 과정은 분리될 수 없어"
  • 홍미현 기자
  • 승인 2020.01.20 15: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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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늙음 오디세이아' 연재 성료한 유형준 과장 "긴 여행 마친 느낌"
"100번을 한 주제로 쓸 수 있어 감사···나날이 열심히 늙으려 노력할 것"

지난 2017년 9월 4일부터 의사신문에 연재됐던 유형준 CM병원 내분비내과 과장의 ‘늙음 오디세이아’ 칼럼이 지난해 12월16일 '100회'를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늙음의 얼굴과 속마음'을 독자 회원들과 함께 공감하기 위해 시작한 기고는 의료인답게 ‘늙음의 의학적 의미’ 탐구한 것을 비롯해 ‘노인병학’, ‘늙음의 무늬’, ‘늙음, 거울에게 묻다’, ‘노화와 호르몬’, ‘원로’, ‘구십구, 아흔아홉’ 등의 다채로운 주제를 통해 ‘늙음의 실체’를 자연스럽게 소개했다. 작년 연말엔 그동안 의사신문에 실렸던 원고를 묶어 동명의 책으로도 펴냈다.  

유 과장은 ‘늙음 오디세이아’와 함께한 시간을 "긴 여행을 마친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요즘 뭐하고 지내?'라는 질문에 이리저리 대꾸하다 “지금 가장 잘 할 수 있는 건 늙는 것”이라며 스스로 답을 찾기 위해 떠난 여행이라고 했다.  

2년 3개월 간의 긴 여행을 마친 그를 만나 늙음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남다른 해석을 하게 만든 이야기를 들어봤다. 

Q. ‘늙음’은 무엇이라 할 수 있는가. 또 이런 늙음을 받아들이는 바람직한 자세가 있다면?

늙음을 바라보는 시각은 매우 다양하다. 전체적으로나 개인적으로도 각자의 인생 궤적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어쩌면 늙음을 보편적으로 정의하는 것, 심지어 정의하려는 의도 자체가 딱한 일인지도 모른다. 

연역적으로 ‘늙음은 늙음’이다. 단, 바라보는 관점은 있을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늙음을  두 가지 관점으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얼마나 망가졌는가’로 결손된 부분을 들추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쓸모 있는 부분이 꽤 남아 있지 않은가’하는 것이다. 즉, 남아 있는 쓸 만한 기능의 유용성을 추스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관점이 어떻든, 세월을 억지로 거슬러 갈 수는 없다. 그러므로 청춘 시절 젊어지기 위해 배우고 사랑했던 것처럼, ‘청춘’ 대신 ‘늙음’이란 명칭을 달고 있는 지금도 더 희어지고 더 구부려지면서 열심히 늙고자 한다. 젊었을 때 그랬듯이 열심히. 

Q. '늙음 오디세이아'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나.

사물에는 ‘낡다’를 쓰는 반면 사람에겐 ‘늙다’는 표현을 쓴다. 노인병 의사의 ‘어조’로 다시 읊조리면 "늙으면 병이 쌓이고, 아프면 기능이 떨어지고 역할이 줄어들어 경제 능력이 수그러들면서 가난해지고, 남들과 어울리는 기회가 뜸해진다. 소통이 궁핍해져 늙음은 외롭고 우울해진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흔히 사람들은 늙음은 질병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늙음이 질병과 다른 점은 '비가역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삶과 늙음은 모두 동등한 의미를 지니며, 삶과 늙음의 과정은 분리될 수 없다. 

늙음이 없으면 삶도 없고, 삶이 없으면 늙음도 없다. 늙음을 방지하고자 제안하는 것은 삶을 방지하고자 제안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늙음이 질병이라고 믿는 것은 삶을 질병이라 주장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기고를 통해 늙음에 대해 공감하고 싶었다. 그리고 일생이 한 편의 시라면, 늙음은 배우고 경험하고, 투쟁하고 우려하며 용감하고 창의를 발휘하는 '일생의 클라이맥스'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세월이 억지로 거꾸로 갈 수 있나, 청춘에서 늙음으로 이름이 바뀐 바로 그 샘을 찾아 열심히 늙자."

Q. 개인적인 차원에서 늙음이란 어떤 것인가. 

늙음은 노년다운 노년의 삶을 따라서 찾아가는 과정이며, 또 하루하루 늙어가는 현상 그 자체다. 그래서 늙음만큼 다양한 모습을 갖는 것도 드물다. 각자 자신이 살아온 삶의 이력과 과정에 따라 다르다. 

"나는 어떤 늙음을 원하는가. 철저히 늙고 싶다. 그래서 앞뒤좌우 어디로 보든지 노인이고 빈틈 없이 노인답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싶다. 셰익스피어의 (5대 희극 중 하나인) ‘뜻대로 하세요’에 등장하는 여든 살이 다 되어도 주인에게 충성하는 애덤처럼 머리에 온화한 하얀 서리를 얹고."(<늙음 오디세이아> 279P 중에서)

Q. 100회 연재를 마무리한 ‘감회’, 그리고 아쉬운 점을 이야기한다면. 

늙음 오디세이아 제1회 '늙음의 의미'를 시작으로 늙음의 여러 현상과 늙음을 대하는 마음가짐까지 끊이지 않고 100번을 매회 하나의 주제로 글을 쓸 수 있었다는 데 대해 감사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붓을 쥐고 글씨를 써 낼 힘이 꾸준히 솟았다는 사실이다. 글짓기의 한 과정인 글쓰기는 엄연한 육체노동이기 때문이다. 

딱히 아쉬운 점은 없지만 굳이 꼽자면, 제 자신의 공력과 염력이 부족했다고 탓하고 싶다. '타인의 늙음을 더 핍진(逼眞)하게 글로 쓸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Q. 앞으로의 계획은.  

늙음 오디세이아의 내용처럼 나날이 열심히 늙으려고 노력한다. 이번에 발간한 늙음 오디세이아 책에 담은 원고는 의사신문에 게재한 총 100회분 중 65회 분량이다. 실리지 못한 35회분의 원고들이 함께 입을 모아 ‘꽉 채우지는 못하더라도 굴먹할 정도는 되게끔 새롭게 채워줘야 하지 않느냐’고 자꾸 물어오는 것 같아 그 굴먹할 방안을 구상중이다. 

아울러 수년 전부터 조금씩 써오고 있는 ‘아름다운 늙음과 영성’ 원고를 본격적으로 다듬을 예정이다. 기독 신앙인으로서 늙음을 바라보는, 또한 늙음이 지니는 영성적 확신을 토대로 ‘의사작가’의 역량을 초집중해 집필하려 한다. 의사가 아니면, 작가가 아니면, 특히 기독교인이 아니면 지을 수 없는 책을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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