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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터처블' 개 구충제···암센터, 임상시험 안 한다고 역풍 맞아
'언터처블' 개 구충제···암센터, 임상시험 안 한다고 역풍 맞아
  • 배준열 기자
  • 승인 2020.01.09 17: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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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 자료 없다"며 임상시험 취소하자 맹비난···일각서 음모론도 제기
의료계 "전문가 못믿는 세태 안타까워"···과거 '탈리도마이드' 사건 환기

국립암센터가 개 구충제 성분인 '펜벤다졸'의 항암 효과를 검증하는 임상시험을 검토했다가 취소하는 바람에 예기치 않은 후폭풍에 휩쓸렸다. 펜벤다졸의 항암 효과를 신봉하는 일부 환자와 가족 등이 암센터의 임상시험 취소를 강하게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 중 일부는 더 나아가 암센터의 상급기관인 보건복지부와 '개 구충제 무용론' 입장을 밝혔던 식약처와 의사협회 등 의료단체 등도 싸잡아 비판하는가 하면 “펜벤타졸을 항암제로 개발하면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식의 음모론까지 제기하고 있다. 

9일 오전부터 국립암센터가 사회적 요구도가 높아 임상시험을 추진했지만 검토할 가치조차 없어 준비단계에서 취소됐다는 소식이 뉴시스를 비롯한 다수의 매체를 통해 보도됐다.

김흥태 암센터 임상시험센터장은 “암센터 연구자들이 모여 임상시험을 진행할 필요가 있는지를 2주간 검토했지만 근거나 자료가 너무 없어서 취소했다. 보도자료까지 준비했지만 필요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사람을 대상으로 한 펜벤다졸 임상시험은 없기 때문에 암센터 연구진은 세포 단위로 진행됐던 연구 논문과 유튜브에서 인용된 자료들을 모아 임상시험 타당성 여부를 검토했지만 동물 수준에서도 안전성이나 유효성이 검증된 자료가 없는 것으로 최종 판단했다.

김 센터장은 “유튜브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도 검토했지만 이것조차도 허접했다”며 “펜벤다졸은 암세포의 골격을 만드는 세포내 기관을 억제해 암세포를 죽이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는 이미 90년대에 1세대 세포 독성 항암제로 만들어졌고 지금은 표적항암제, 면역항암제 등 3세대 항암제까지 쓰는 시대이다.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게 아니라 효과가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보호위원회도 작년 11월 “현재까지 사람을 대상으로 한 항암 효과에 대한 임상적 근거가 없고 안전성도 확인되지 않아 복용을 권장할 수 없다”며 무분별한 펜벤다졸 복용에 대해 우려의 입장을 나타냈다. 

하지만 이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인터넷을 중심으로 암센터를 비난하는 여론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급기야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복지부는 이와 관련한 입장 발표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신뢰하지 못하는 세태에 대해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이 관계자는 “만약 펜벤다졸의 항암성분이 있다고 해도 겨우 1세대 항암제 효과 정도일 것이고 지금은 2세대를 넘어 3세대 표적항암제, 면역항암제까지 쓰는 시대"라며 "아무리 보건 당국이나 전문가 단체가 이 이야기를 해도 국민들이 신뢰하지 않는데, 의사협회 같은 곳이 돈이 되지 않는다고 실제로 항암 효과가 있는 것을 없다고 할 이유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박종혁 의협 대변인도 “전문가 단체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부족해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며 "하지만 후보물질이 신약으로 개발되는 확률이 0.01%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인데 단지 ‘카더라’ 소문에 의해 펜벤다졸 임상시험을 진행한다면 전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될 것”라고 말했다.

이번 펜벤다졸 사태가 과거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탈리도마이드’ 사태를 연상시킨다는 지적도 나온다. 1960년대에 발생한 이 사건은 서독에서 1956년에 개발·보급된 탈리도마이드제로 약해(藥害)가 일어나 유럽에서 이를 복용한 임산부들이 수많은 사지 기형아를 출산하고, 5000~6000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일본에서도 1200여 명이 사망했다. 그러나 미국 FDA에서는 프랜시스 올덤 켈시 박사가 이 약의 제조·허가를 인가하지 않아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박종혁 대변인은 “환자들이 아무리 답답해도 검증된 치료방법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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