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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급만 됐을 뿐인데···‘편의점판매약’ 얘기 나오자 약사계 반발
언급만 됐을 뿐인데···‘편의점판매약’ 얘기 나오자 약사계 반발
  • 배준열 기자
  • 승인 2019.12.27 18: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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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들은 안전성 우려 지적하는데···일반의약품은 일선 약국서도 복약지도 없이 판매

공정거래위원회가 안전상비의약품 품목 확대를 위해 관련 고시를 오는 2021년 하반기에 개정하겠다고 발표하자 약사들이 또다시 극렬히 반대하는 모습이다.

앞서 공정위가 지난 26일 발표한 ‘2019년 경쟁제한적 규제 개선방안’에 따른 19개  개선 과제에 중소사업자 부담 완화를 위한 제도 보완책으로 안전상비의약품 품목을 확대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현재 편의점에서 구매할 수 있는 안전상비의약품으로 △타이레놀정 500mg △타이레놀정 160mg △어린이용 타이레놀정 80mg △어린이타이레놀현탁액 △어린이부루펜시럽(이상 해열진통제) △판콜에이내복액 △판피린티정(이상 감기약) △베아제정 △닥터베아제정 △훼스탈골드정 △훼스탈플러스정(이상 소화제) △제일쿨파프 △신신파스 아렉스(이상 파스) 등 13개 품목만 지정돼 있는데, 지정고시를 통해 2021년 하반기에 15개 품목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추가할 품목으로는 제산제와 화상연고가 거론됐다. 공정위는 지정심의위원회를 통해 품목을 확정하고 고시를 개정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의사의 처방 없이도 구매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에 해당하는 해열진통제, 감기약, 소화제 등의 약국 외 판매에 대해 그동안 약사사회는 강력히 반대해 왔다. 하지만 지난 2012년 11월부터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제도가 어렵사리 시행되면서 약국과 병원이 문을 닫는 야간이나 공휴일에 편의점 등 24시간 연중무휴로 운영되는 점포에서 상비약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됐다.

하지만 일반 소비자들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추가로 품목 확대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약사회에서 강력하게 반대해 정부와 갈등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안정상비의약품 지정 등을 논의하는 ‘안전상비의약품 지정심의위원회’는 지난해 8월 6차 위원회를 개최한 이후 현재까지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고 있다.

약계의 반발로 안전상비의약품 품목 확대에 대한 논의조차 현재 중단된 상황이지만 이번에 공정위가 안전상비의약품 품목 확대 계획을 밝힘에 따라 품목 확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품목 확대가 실제로 이뤄질 가능성도 높아졌다.

이와 관련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약무정책과 관계자는 “공정위가 안전상비약 품목 확대를 주요 개선 과제로 판단한 것 같다. 이에 따라 최근 관련 문제를 문의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 문제에 대해 공정위와 구체적으로 협의한 적은 없다”며 “복지부는 기본적으로 안전상비의약품 지정심의위원회가 재개되면 위원회 결정에 따를 수 있다”고 말했다.

안전상비의약품 품목 확대에 대한 이야기만 거론됐는데도 불구하고 약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지금까지 약계는 약국 외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에 대해 안전성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강력한 반대 입장을 피력해 왔다. 

그러나 정작 일반의약품의 경우 약국에서 별다른 복약 지도 없이 환자가 원하기만 하면 별다른 제재 없이 판매가 이뤄지고 있어 이러한 약계의 논리가 궁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심지어 일반의약품은 물론이고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조차 별다른 복약 지도 없이 판매되고 있는 경우가 많아 논란이다.

실제로 약국에서 판매되는 약값에는 복약지도료뿐만 아니라 약국관리료, 조제기본료, 처방조제료, 의약품관리료 등이 포함돼 있어 실제 약값은 절반에도 못미치는 경우가 많은데 환자에게 제대로 된 복약지도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익명을 요구한 한 의료계 관계자는 “복약지도료가 지급되지 않는 일반의약품의 경우 일선 약국에서 제대로 된 복약지도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판매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이럴 바에야 안전상비의약품의 경우 품목을 지금보다 더 확대해 국민들이 병원과 약국이 문을 닫는 시간에 손쉽게 구입할 수 있게 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 박종혁 대변인은 “의약분업이 시행된 지 20년이 다 되어가지만 현재까지 재평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데 안전상비의약품 품목 확대에 앞서 의약분업에 대한 재평가를 실시해서 전문/일반 의약품의 재분류가 선행돼야 한다”며 “이를 통해 일반의약품 중 필요한 품목은 전문의약품으로 전환하고, 안전상비의약품 품목도 필요한 수준에서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변인은 또 “약계는 일반의약품의 편의점 판매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국민건강을 근거로 내세우고, 반대로 전문의약품 축소를 주장할 때는 국민의 편의성을 근거로 내세우는 이중적 행태를 보이고 있는데 전문가단체가 이렇게 애매한 입장을 가지는 게 국민건강에 정말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안전상비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가 허용되면 약값의 불필요한 가격 상승을 둔화시키는 효과가 발생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실제로 지난 2015년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안전상비의약품을 편의점 등에서 판매할 수 있게 한 지난 2012년 11월 이후 2년 후인 지난 2014년까지 해당 의약품의 가격상승률이 약국에서만 판매되는 같은 종류의 의약품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안전상비의약품 품목 중 하나인 훼스탈플러스정(10정)의 연평균 가격상승률은 1.40%로 조사됐다. 반면 약국에서만 판매되는 같은 종류의 의약품인 백초시럽플러스(100ml)와 까스활명수큐액(75ml)의 가격상승률은 각각 10.37%, 8.99%로 나타났다.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제도 시행 직후인 2012년부터 2013년까지 훼스탈플러스정의 가격상승률은 0.60%로, 까스활명수큐액 3.48%, 백초시럽플러스 12.18% 보다 현저하게 낮았다.

해열제의 경우도 안전상비의약품에 속하는 어린이부루펜시럽(90ml)의 연평균 가격상승률은 4.25%로 조사됐지만, 약국에서만 판매되는 같은 종류의 사리돈에이정(10정)과 펜잘큐정(10정)은 각각 8.82%, 4.84%로 가격상승률이 더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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