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rn, Baby! Burn!
Burn, Baby! Burn!
  • 전성훈
  • 승인 2019.12.17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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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63)
전 성 훈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 성 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 법무법인(유한) 한별

‘불사른다’, 이 말을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뭔가 청춘의 향기가 나는? 그렇다. 불사른다는 말은 많은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는 아니다. 최선을 다하는, 열정적인, 결과가 아닌 과정 자체로 성공이라 할 수 있는,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단 필자는 먼저 방화죄가 떠오르기는 하지만.
그렇지만 ‘불살라 소멸시킨다’라고 하면 약간 부정적인 느낌으로 변할 것이다. 그리고 ‘번아웃’이라고 하면 사방에서 ‘나! 나!’라는 외침이 시작될 것이다.

한국 사회는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1위의 과로사회이다. 지난 50년간 서로가 서로에게 과로를 권한 결과, 우리는 세계를 놀라게 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2000년 이후 정보사회에 진입했음에도 ‘열~씸히’, ‘노오오오력’을 외치면서 노동시간을 핵심에 놓는 산업사회 방식을 고집하였고, 그 덕분에 현재 우리는 위기를 맞고 있다. 이 위기의식과 함께, 1만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1명의 천재를 키워내기 위해 사회 전체가 창의성을 키워야 한다는 점에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공감대에 바탕하여, 창의성의 주적(主敵)인 과로사회를 막기 위한 법적 제도로서 ‘주 52시간제’가 도입되기에 이르렀다.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은 어떤 직무를 맡는 도중 극심한 육체적/정신적 피로를 느끼고 직무에서 오는 열정과 성취감을 잃어버리는 증상을 의미한다. 다수의 고객을 반복적으로 상대해야 하는 간호사, 사회복지사, 정신건강센터 상담자 등이 느끼는 정신적 탈진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1974년 프뤼덴버그가 처음 사용했는데, 이후 지속적 과로를 겪고 있는 직장인이 흔히 느낄 수 있는 업무능력 및 열정의 약화를 설명하는 것으로 그 대상이 확대되었다.

스트레스가 생리적 반응이라는 점에서 건강심리학자들은 번아웃에 대해서 신체적 자원의 소진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이러한 시각은 과학적인 스트레스 연구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인 한스 셀리에의 일반적 적응 증후군(GAS: general adaptation syndrome)을 연장한 것으로, 사람의 몸이 어떤 스트레스 요인에 대해 ‘자원’을 쏟아 부으면서 버텨낸다는 점을 핵심으로 한다. 물론 얼마 동안은 잘 버틸 수 있고 심지어 외부 자극에 의해 생산성도 좀 더 높을 수 있겠지만, 사람은 화수분이 아닌 법, ‘하얗게 불태운’ 사람은 언젠가는 탈진하게 된다. 번아웃이 시작되는 것이다.

의료계에서도 번아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는 12월 23일이면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이하 ‘전공의법’)이 시행된지 만 3년이 된다. 2015년 제정 당시부터 전공의 근무시간 축소에 따른 대책을 미리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들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발등에 불이 떨어져도 버티다가 발이 타기 시작해야 대책을 마련하는 한국사람들이 아닌가. 우리가 펭귄 무리처럼 우왕좌왕하면서 대책 마련을 미룬 댓가를 지금 대형병원들, 특히 기피과들은 처절하게 치르고 있다.

최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심뇌혈관질환의 체계적 국가 관리를 위한 대토론회’에서는 전공의 인력 부족을 교수와 전임의에게 당직을 떠맡겨서 버티고 있는 민낯이 가감 없이 드러났다. 심뇌혈관 관련 과만 문제인가? 당연히 아니다. 전통적으로 인력 부족을 겪어왔던 대형병원 산부인과는 이제 이른바 빅5 병원을 제외하고는 교수가 당직을 서는 것이 당연시된다. 외과는 심지어 수술을 줄일 수밖에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데, 예를 들어 최근 외과 입원전담전문의를 대대적으로 모집하겠다고 나선 서울대병원은 외과 입원전담전문의가 충족되지 않을 경우 수술의 2/3를 줄이겠다는 입장이다. 만성적인 인력 부족을 겪고 있던 흉부외과 역시 ‘전문의 근무 실태조사’ 결과 흉부외과 전문의들은 하루 평균 근무시간이 12.6시간, 주당 평균 근무시간이 76.1시간에 달했고, 한 달 평균 당직일수가 6.5일에 달했다.

이런 현상은 상당 부분 전공의가 기존에 담당했던 업무를 전공의법 시행 이후 기존 의료진이 넘겨받으면서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전공의를 충원하면 이러한 인력 부족을 상당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과로가 일상화되어 있는 진료현장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를 외치는 딸과 같이, ‘저는 교수님처럼 살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전공의들을 어떻게 설득하여 데려올 수 있을 것인가. 개인적으로는 의료계 선배로서 후배에게 ‘번아웃은 의사의 숙명이야’라는 말은 차마 못 할 것이다. 전체적으로는 어물어물하는 사이에 구조적 변화를 시도할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그래서 의료계에서 이미 악화는 양화를 구축하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의료진에게 ‘Burn, baby! Burn!’을 외쳐서는 안 된다. 구성원의 과로와 희생을 전제로 돌아가는 단체는 정상이 아니고, 진료-당직-수술을 마쳐야 16시간만에 퇴근할 수 있는 의료인이 다수 있다는 것 역시 정상이 아니다.  2019년 5월 25일, 세계보건기구는 제11차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에 번아웃 증후군을 등록했다. 즉 번아웃 증후군은 이제 의학적으로 인정된 질병이다. 우리가 더 이상은 서로의 건강을 생각해서 담배를 권하지 않듯이, 질병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과로를 의료인 서로에게 권해서는 안 된다.

임태환 대한민국의학한림원장은 “이제 의료계에 번아웃이라는 단어가 절대 없어져야 한다”면서 “건강한 의료생활과 발전을 위해 의료인이 이제 (의료인 번아웃 문제에 대해) 국민들에게도 목소리를 낼 때가 됐다”고 주문했다. 이제는 의료인의 번아웃을 더 이상 의료인 개인의 문제나 그 소속단체의 문제로만 치부해서는 안 되고, 국민보건에 영향을 미치는 국가적 문제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의료인이 정상적인 심신 상태에서 진료를 제공할 수 있는지 여부는 국민보건에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의료계가 의료인에 대한 폭행 문제를 국민건강권 보호를 위해 정부와 국회에 강력히 요구하여 입법을 관철했듯이, 의료인 번아웃 문제 국민건강권 보호 차원에서 해결을 시도해야 한다. 의료계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중지를 모아 정부와 국회에 건설적인 제안을 선제적으로 내놓을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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