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음, 서사 여행을 마치며
늙음, 서사 여행을 마치며
  • 유형준
  • 승인 2019.12.17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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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 오디세이아 (100.完)
유 형 준CM병원내분비내과 과장시인.수필가
유 형 준 CM병원내분비내과 과장 시인.수필가

“요즈음 뭐하고 지내?” 더러 물어옵니다. 여러 번 질문을 받다보니 시나브로 정답이 떠올랐습니다.
“지금 가장 잘할 수 있는 건 늙는 걸세.” 스스로 대견한 답이라 여겨 늙음에 관한 지적 여행을 서사할 용기를 내었습니다.
늙음을 바라보는 시각은 매우 다양하다. 전체적으로도 그렇고 개인적으로도 각자의 인생 궤적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어쩌면 늙음을 보편적으로 정의하는 것, 심지어 정의하려는 의도 자체가 딱한 일일지도 모른다. 늙음은 연구의 대상이라기보다 오히려 서술로 담아내어야 본디 모습이 제대로 드러나는 서사(敍事)의 소재라는 생각이다. 따라서 연구 논문이 아닌 오디세이아와 같은 서사시로 표현하는 게 늙음의 실체에 보다 가까이 다가서는 방식이라 여긴다. (연재 ‘늙음의 시학’에서)

사람은 늘 무언가를 향하여 움직인다. 호모 비아토르. 즉 ‘여행하는 인간’이다. 항상 길 위에 있다. 어디론가 향해 가는 중이지 도중에 서 있기를 바라지 않는다. 우리는 끝을 정할 수 없고 창조할 수 없다. 이것은 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만 성취를 성취하기 위해 계속 움직여 길을 가야한다. 종종 이러한 사실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끝을 추정하여 얻은 그릇된 성취를 참된 성취로 여기려 한다. 왜곡이다. 이 왜곡은 여행의 의미와 일정, 여행 중의 휴식을 맺힌 데가 없이 무르게 한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길은 이동의 공간만을 일컫는 건 아니다. 과거 현재 미래, 탄생에서 죽음, 사람과 사람 사이, 개인과 사회 간 모든 이동의 통로와 과정을 아우른다. (연재 ‘호모 비아토르’에서)

늙어서 노인이 된 처지인 노경(老境)을 ‘저무는 지경’이란 뜻으로 ‘모경(暮境)’이라고도 한다. 늙음을 의미하는 한자 ‘로(老)’는 ‘늙을’이란 뜻과 함께 ‘익숙하다’는 뜻도 지니고 있다. 젊은 시절 무르익어 방창한 꽃도 질펀하게 즐기며 구경하고 나니 어느덧 노을 따라 모경에 들어섰다. 이제 남은 시간(설령 그 시간이 시든 세월로 보일지라도) 촛불 하나 밝혀 온전히 저물어가는 늙음의 지경을 찬찬히 그리고 대견스레 살핀다. 평생 처음 늙어보는 터라 시듦도 남음도 처음이어서 서툴 수밖에 없다. 서투름은 재치와 솜씨가 있고 약삭빠른 교묘함과 대척점에 있다. ‘최고의 기교는 서툰 것처럼 보인다’는 ‘노자’ 45장 에 슬며시 기대어 여전히 꽃으로 노을에 젖는다. (연재 ‘시든 꽃, 남은 꽃’에서)

어느 번화한 도시, 쌓여가는 시간이 죄다 주름으로 보이던 어느 날 깊은 밤을 불면으로 새우며 시를 지은 적이 있다. ‘바람의 방향으로 낙엽이나 흰 눈은 난분분 쌓이고 / 지난밤 창 넘어 마주 선 도시에서 / 빛나던 불빛 좇아 뭉쳤다 흩어지던 얼굴들 / 간간한 리듬으로 손풍금에 흐르다 고인 말들 / 커튼 더 꾸겨져야 가렸던 창밖 환히 보이듯 / 풍금 소리가 들리고 옛 얼굴들이 나타나 / 계절처럼 다가서며 살갗 서로 맞대어 / 바람 다 소진한 부챗살처럼’(연재 ‘주름살과 렘브란트의 자화상’에서)

이 순간, 나도 어느 남편이 되어 아내의 늙음에서 자신과 자신의 세상을 발견하곤 이렇게 속마음을 드러낸다.
“아내가 늙어감은 세상이 늙어가는 것이다. 아내의 늙음은 그저 한 개의 낱말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둘 사이의 씨앗이며 싹이고 꽃대와 꽃, 열매 그리고 낙엽이다.

또한 바람, 햇볕 그리고 번개며 우레다.” 나이 들어 어쩔 수 없이 머리가 희고 새우처럼 등이 굽어가는 남편과 아내. 둘이 심고 꽃 피고 열매 맺고 낙엽으로 시들어가는 해로는 역시 만만순(彎彎順)한 자연의 한 부분이 틀림없다. (연재 ‘부부해로 - 새우 두 마리와 미당’에서)

늙음에 관한 지혜는 하나가 아니다. 정평 있는 교과서들에 언급되어 있는 노화이론만 해도 삼백 오십 개가 넘고 늙음에 이롭다는 실제 방안은 셀 수도 없이 많다. 그 수많은 실제 방안들 중에서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무탈한 근본은 마술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과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는 영양과 운동에 달려 있다. 여기서 운동을 활동으로 바꾸어 불러도 전혀 틀리지 않는다. 활동도 어려우면 동작, 움직임이라 해도 좋다. 이는 ‘억지로 사려를 쓰고 억지로 시력과 청력을 쓰고 억지로 언어를 쓰고 억지로 동작을 쓰지 말아 앉고 눕기를 때에 따라 하고 음식을 적절히 하라’(‘노년의 풍경’, 김미영 등)는 팔십 삼세를 산 조선 중기 철학자 장현광 선생의 의견과 맥을 같이 한다. 이렇게 시대를 관통하는 늙음에 대한 지혜에, 노인병 의사로서 알고 있는 모든 지식과 정보, 심지어 상상력까지 동원하여 두 문장으로 된 수사를 보탠다. “세월이 억지로 거꾸로 갈 수 있나. 청춘에서 늙음으로 이름이 바뀐 바로 그 샘을 찾아 열심히 늙자. (연재 ‘늙음의 샘’에서)

슬몃슬몃 다가온 늙음일까. 아니면 스스로 슬그머니 다가가 늙음 속에 들어가고 있는 걸까. 어느 쪽이든 지금은 늙음이 넌지시 내민 손을 꽉 잡고 늙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늙음을 영절스레 서사할 재간은 없다. 이태 넘게 <의사신문>에 연재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여러분을 기억한다. 연재 내내 똑같은 시간의 길이와 속도만큼 늙어오며 끊이지 않는 공감과 격려를 보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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