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오페라 (엘렉트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오페라 (엘렉트라)
  • 오재원
  • 승인 2019.12.17 14: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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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 (497)
오 재 원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오 재 원 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 엘렉트라 콤플렉스를 그린 세기말 빈 분리주의 대표작
자신도 모르는 채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를 그린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과 ‘안티고네’, 그리고 내연남과 함께 남편을 죽인 부인을 아들이 살해하는 미케네 왕가의 비극을 다룬 ‘엘렉트라’. 소포클레스의 이 3대 비극은 고대 그리스 비극들 중 가장 강렬하고 압도적인 내용일 것이다. 바로 이 마지막 비극 ‘엘렉트라’가 세기말 빈에서 오페라로 재탄생되었다.

오페라 <살로메>로 세계를 경악시켰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드레스덴 궁정극장 무대에 올릴 오페라를 위해 작가 호프만스탈과 손을 잡았다.
호프만스탈은 이미 자신이 연극으로 만든 <엘렉트라>를 오페라의 소재로 만들자고 슈트라우스에게 집요하게 제안한 끝에 슈트라우스는 결국 동의했고 두 사람은 최초의 공동 작업을 시작했다. 이후 오페라 <장미의 기사>,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 등 약 25년간 두 사람은 독일어권 최고의 ‘대본작가와 작곡가’ 콤비가 되었다.

대본을 쓴 호프만스탈은 1903년 희곡 ‘엘렉트라’를 집필하기 직전, 지그문트 프로이드와 요제프 브로이어의 공동 저작 ‘히스테리 연구(Studien ueber Hysterie)’를 탐독하였다.
동시대인들은 엘렉트라를 ‘정신병자’로 간주했지만, 사실 엘렉트라는 단순한 정신병리학적 차원을 뛰어넘는 주인공이었다. 아들이 어머니를 사랑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오이디푸스 왕’에서, 그리고 딸이 아버지를 사랑하는 ‘엘렉트라 콤플렉스’는 이 ‘엘렉트라’ 비극에서 비롯되었다.

오페라 <살로메>에 이어 <엘렉트라>는 세기말 빈 특유의 표현주의적이고, 대담한 불협화음과 극단적인 낭만주의의 서정성으로 감정이 교차되는 빈 분리파의 대표적인 독특한 작품이다.
슈트라우스는 훗날 자신의 회고록 ‘관조와 회상’에서 “오페라 <살로메>와 <엘렉트라>는 내 생애의 모든 작품 가운데 가장 독보적인 작품들이다. 나는 여기서 하모니의 극한, 심리주의적인 폴리포니, 그리고 오늘날 청중의 청각적 수용 능력의 극한까지 치달았다”라고 적었다. 1909년 1월 25일 드레스덴 초연 직후 슈트라우스는 관객의 반응을 보고 “이만하면 주목할 만한 성공”이라고 자평했지만, 평론가들은 “탈락!”이라고 타전했다.

하지만 1주일 후 뉴욕에서 대성공을 거뒀고, 이듬해 독일 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 오페라에서는 존속살해를 저지른 행위자 오레스테스보다는 고뇌하며 독백하는 세 여성 엘렉트라, 클리템네스트라, 크리소테미스가 더욱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복수의 행위 자체를 부각시키기보다는 등장인물들의 대화와 독백을 통해 ‘무엇이 인간을 존속살해로 이끄는가’ 하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트로이 전쟁 때 그리스 연합군 총사령관이었던 아가멤논은 전쟁이 끝나고 10년 만에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내 클리템네스트라와 그녀의 정부 아이기스토스에게 칼과 도끼로 무참히 살해당한다.
트로이를 치기 위해 그리스 선단이 출항할 때 바람이 불지 않자 총사령관인 아가멤논은 신들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맏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쳤는데 이를 지켜본 클리템네스트라는 자신의 명예와 위신을 위해 자식을 죽이는 남편에게 정이 완전히 떨어졌다.

그래서 남편이 전쟁에 나간 사이 복수의 칼을 갈고 있었다. 그렇지만 엘렉트라는 그런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하고 혐오했다.
아버지의 죽음을 억울하게 여겨 복수를 벼르는 엘렉트라는 어머니와 그 정부가 어린 남동생 오레스테스까지 죽일까봐 동생을 멀리 피신시킨 뒤, 어른이 되어 돌아올 날을 간절히 기다렸다.
성 밖에서 노숙을 하며 짐승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엘렉트라와 그녀에 대해 떠들어대는 여인들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이 오페라는 시작한다.

어머니 클리템네스트라는 엘렉트라 앞에 나타나 불면과 악몽에 시달리는 자신의 처지를 탄식하며 “온몸이 죽음을 외치지만 한번 앓지도 않는다”며 스스로를 비웃자 엘렉트라는 그런 어머니에게 독설을 퍼붓는다.
오레스테스가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 절망에 빠진 엘렉트라는 성 안에 사는 여동생 크리소테미스에게 이제 그가 돌아올 희망이 사라졌으니 함께 아버지를 위해 복수하자고 간곡하게 호소한다.
하지만 여성으로 행복한 삶을 살고 싶은 크리소테미스는 언니의 청을 거절한다. 엘렉트라는 혼자서라도 실행하겠다고 결심한다.

성 안 사람들을 안심시켜 놓고 그 틈에 복수를 결행하고자 했던 오레스테스는 미리 사람을 보내 자신이 마상시합에서 말에 채여 죽었다는 헛소문을 퍼뜨렸던 것이다.
오레스테스와 누나 엘렉트라는 재회의 기쁨에 벅차게 포옹하지만, 그녀는 “나는 죽은 존재나 다름없다”며 동생 앞에 수치심을 토로한다. 이때 크리소테미스가 성 밖으로 달려 나와 오레스테스가 어머니와 그 정부를 죽였다는 소식을 전하자 엘렉트라는 기쁨에 겨워 춤을 춘다. “음악이 안 들리느냐? 그 음악은 바로 내 안에서 나오고 있어.” 크리소테미스에게 이렇게 말한 엘렉트라는 “다들 말하지 말고 춤추라”고 외치며 막이 내린다.


■ 들을 만한 음반
△비르기트 닐손(엘렉트라), 레지나 레스닉(클리템네스트라), 마리 콜리에(크리소테미스), 톰 크라우제(오레스테스), 게오르크 솔티(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Decca, 1966)
△아스트리드 바르나이(엘렉트라), 마르타 뫼델(클리템네스트라), 힐데가르트 힐레브레히트(크리소테미스), 에버하르트 베히터(오레스테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Orfeo, 1964)
△에블린 헤를리추스(엘렉트라), 안네 슈반빌름스(크리소테미스), 발트루트 메이어(클리템네스트라), 르네 파페(오레스테스), 크리스티안 틸레만(지휘), 드레스덴 슈테츠카펠레(DG,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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