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모든 일엔 때가 있는 법··· 지금이 의료계 '성차별' 바로잡을 때"
[인터뷰] "모든 일엔 때가 있는 법··· 지금이 의료계 '성차별' 바로잡을 때"
  • 홍미현 기자
  • 승인 2019.12.11 17: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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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애 한국여자의사회 회장, 최근 발벗고 '의료계 성차별 관행개선' 사업 추진
여의사 증가에도 의료계 성차별 여전···전공의 성차별, 여성이 2.5배 많이 경험
때마침 첫 여성 전공의협의회장 취임···성차별 해소로 "공정성·투명성 이뤄지길"

“의료계에서는 ‘성평등이 개선됐다’고 얘기하지만 방법론이 더 교묘해졌을 뿐, 현실은 내가 전공의 수련을 하던 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이에요.” 

대한민국 의사 4명 중 1명이 여성, 의대생의 경우엔 3분의 1 정도가 여학생이다. 특히 1980년대 이후 전체 의사 중 여의사 비율이 2배로 증가했다. 누구나 그에 비례해 여의사의 권익도 개선됐으리라고 생각하겠지만 이향애 한국여자의사회 회장은 '아니올시다'라고 말한다. 

이 회장은 최근 의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여의사가 차지하는 비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지만, 성차별 문제가 여전히 이어져 답답하고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이 회장이 수장으로 있는 한국여자의사회는 최근 의료계 성평등을 위해 발벗고 나섰다. 의료계에서 만큼은 더 이상 ‘성차별’로 인해 전공 선택에 피해를 보는 사례를 최소화하자는 취지에서다.

혹자는 새삼스럽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 의료계 역사상 처음 있는 의미있는 시도다. 그만큼 의료계가 성평등에 '둔감'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여의사 수 증가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성평등 문제를 공론화하기엔 사회적으로나 의료계 내부적으로나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이 회장은 이번에 ‘의료계 성차별 관행 개선’을 위한 사업을 추진하게 된 데 대해 “1896년 우리나라 최초로 여의사 자격증을 취득한 김점동씨 시절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 사회 곳곳엔 성평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의료계만이라도 선도적으로 성차별을 개선하고자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마침 이같은 사업을 추진하기에 좋은 여건이 마련됐다. 최근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에, 여성으로는 최초로 박지현 현 회장이 당선된 것이다. 

이 회장은 “세계적인 트렌드에 발맞춰 한국여자의사회도 목소리를 높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전공의협의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전공의 주 80시간'이나 '여자전공의 임신' 등의 문제를 이슈화시키기 시작했다"며 "이제는 바로 잡을 때가 됐다고 판단해 성평등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데, 그게 바로 지금"이라는 것이다. 

'여자는 지원하지 말래요' '여자가 할 수 있겠냐' '남자 친구는 있냐' '결혼 계획은 있냐' '여자 전공의는 분만이나 출산 휴가 규정 때문에 우리 과에서는 받아주기 어렵다'

요즘도 일부 진료과 선발과정에서 전공의 여의사들이 겪는 실제 이야기다. 일부 진료과에서는 전공의 지원 성적이 1등부터 10등까지 모두 여성일 경우, 1등부터 5등까지는 여성을 뽑되 나머지 5명은 남성으로 선발하는 일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모두 여성으로 받을 수 없다, 남녀비율을 맞춰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여자의사회가 의사 1170명을 대상으로 의료계의 성평등 현황을 조사한 결과, 전공의 지원과정에서 성차별을 경험했다는 응답자는 여성 47.3%, 남성 18.2%로 여성이 2.5배 이상 많았다. 교수 임용과정에서의 성차별 경험 비율 역시 여성 36.8%, 남성 8.8%로 여성들이 4배 이상 많이 차별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 전공의 선발에서의 성차별 피해사례를 접수받고 있지만, 아직까지 접수된 사례는 미미한 실정이다. 이는 여성 전공의들이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여자의사회측은 피해사례 접수가 ‘누군가에게 벌을 주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전에 성차별을 예방하자’는 차원에서 진행하는 것인 만큼, 당사자들이 부담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입장이다. 

한국여자의사회의 ‘의료계 성평등’ 추진 사업은 단순히 ‘여성’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이 사업은 의료계에 종사하고 있는 모든 직종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 회장은 “의료계 성차별 문제는 누군가 소리를 내야 관심을 갖고 들여다 보게 된다. 누군가는 의료계의 성차별 문제를 해결하는데 앞장서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여성이라서 혹은 남성이라서가 아니라, ‘능력’에 따라 인정받는 시대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지난 1971년 고려의대를 졸업한 뒤 50년 가까이 의료현장을 지켜왔다. 반세기를 의사로 일해온 그이지만 최근 일어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변화에 대해선 '격세지감'을 느끼는 듯하다. 

이 회장은 “불과 20년 전만 해도 의료계에서 ‘성평등’을 운운했다면 '떠들지 말라'고 했을 것 같은데, 내가 회장일 때 사회 분위기가 적절히 맞춰져 사업을 추진하게 돼 다행”이라며 “의료계 내에서의 전공의 선발, 교수 임용, 승진, 의사 결정 과정에서 공정성과 투명성이 이뤄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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