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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오페라 (살로메) 작품번호 54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오페라 (살로메) 작품번호 54
  • 오재원
  • 승인 2019.12.10 13: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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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 (496)
오 재 원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오 재 원 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 세기말적 부르주아 사회, 히스테리를 억제된 욕망으로 실현
의붓아버지 헤롯 왕 앞에서 춤을 춘 대가로 세례자 요한의 목을 요구했다는 신약성서의 살로메 소재는 1870년대 여러 예술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구스타프 모로와 에드바르트 뭉크의 회화 <살로메>, 구스타프 플로베르의 소설 <에로디아스> 등이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오페라 <살로메>의 원작인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의 1891년작 ‘살로메’ 는 ‘데카당스의 지침서’로 불릴 만큼 세기말적 정서로 가득한 치명적인 ‘팜므 파탈(femme fatale) 신화’이다.

성서에서는 ‘헤로디아스의 딸’이라고만 언급한 살로메가 어머니 헤로디아스의 사주에 의해 요한의 목을 요구하지만, 오페라 여주인공 살로메는 요한의 목소리와 아름다운 몸에 반해 헤롯에게 요한의 목을 요구한다. 그녀가 잘린 요한의 목에 입 맞추는 장면은 와일드가 지향했던 탐미주의의 극치를 보여준다. 와일드는 원래 대배우 사라 베르나르를 출연시킬 의도로 이 작품을 프랑스어로 썼지만 여러 이유로 베르나르가 출연하지 않자 연극 <살로메>의 파리 초연은 흥행이 별로였다.
그러나 이 연극이 1903년 막스 라인하르트의 연출로 베를린에서 공연되었을 때는 대성공을 거뒀다. 당시 39세였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연극 <살로메>의 독특한 분위기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그가 오페라 <살로메>의 작곡을 결심했을 때 <돈 후안>,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같은 교향시에 힘입어 이미 국제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었다. 슈트라우스가 직접 쓴 이 오페라의 대본 속에는 원작의 관음적인 시선과 탐미주의가 그대로 살아 남아 있다.
이 오페라의 초연은 1905년 12월 9일 드레스덴 궁정 오페라 극장에서 이루어졌다.

이 오페라는 단막의 오페라이다. 이 작품 속 인물 나라보트와 헤롯은 살로메를, 살로메는 요한을 광적으로 갈망한다. 음악학자 멜라니 운젤트는 이들의 광기를 ‘세기말적 부르주아 사회의 억압된 히스테리’로 칭하였다.
이 오페라가 살로메의 처형으로 끝나는 것은 은밀한 관음적인 시선은 허용하지만 광기의 표출은 허용하지 않는 것이 당시 사회의 특징이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것은 ‘관객들이 동시대 예술을 감상한다는 명분 아래 억제된 욕망을 실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당대 평론가들은 입을 모았다.

기원전 1세기. 유대의 왕 헤롯의 궁전 화려한 연회가 열리고 있다. 연회장 문 앞에서 경비대장 나라보트와 부하 앞으로 살로메 공주가 정원을 거닐고 있다. 홀린 듯 공주를 바라보는 나라 보트에게 시동은 정신 차리라고 경고한다.
그때 궁전 감옥에 갇혀 있는 세례자 요한이 큰 소리로 남편을 죽이고 남편의 이복동생 헤롯과 혼인한 헤로디아스의 죄를 비난한다.

이때 살로메는 자신을 탐하려는 계부 헤롯 때문에 언짢아 연회장에서 나오던 중 요한의 목소리를 듣고 경비대장 나라보트에게 갇혀 있는 요한을 데려오게 한다.
요한의 목소리와 외모에 욕정을 느낀 살로메는 “나는 당신의 몸에 반했어요. 당신의 입술에 키스할 거예요”라며 욕망을 불태운다. 흠모하는 여인이 요한에게 욕정을 드러내자 충격을 받은 나라보트는 자살한다. 갑작스런 자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는 최면에 걸린 듯 요한에게 구애를 계속한다.

하지만 요한은 “당신을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갈릴리의 예수뿐”이라고 말하고는 감옥으로 돌아간다. 헤롯왕이 살로메를 찾으러 밖으로 나오자 유대인들이 요한의 처형을 요구하지만, 요한을 두려워하는 헤롯은 이를 거부한다. 다시 요한의 비난이 들려오자 헤로디아스는 저 소리를 멈추게 하라고 외친다.
한편 헤롯이 살로메에게 자신을 위해 춤을 추면 무슨 소원이든 다 들어주겠다고 하자 그녀는 관능적인 음악에 맞춰 섹시한 몸짓으로 베일을 한 겹씩 걷어내는 그 유명한 ‘일곱 베일의 춤’을 추며 헤롯의 넋을 빼앗는다.

훗날 많은 예술작품의 모티브가 된 이 춤곡은 이국적인 동방의 선율로 시작해 유럽적인 왈츠 선율로 묘하게 고조되어 가는 음악으로 ‘햇빛에 영롱하게 빛나는 오묘한 빛깔의 비단’ 같은 관현악을 추구했던 슈트라우스의 의도가 실현된 곡이다.
이 곡은 성적 유혹이지만 당시 부르주아 사회의 규범과 종교적 관념에 대한 도발을 의미하기도 했다. 춤이 끝나고 살로메는 헤롯에게 은쟁반에 요한의 머리를 담아서 달라고 요구한다.

당황한 헤롯은 보석 등의 다른 선물로 대체하려 하지만 그녀는 집요하게 요한의 머리를 요구한다. 헤롯은 별 수 없이 요한의 사형 집행을 승인한다.
병사가 요한을 죽인 뒤 그의 머리를 은쟁반에 담아오자 살로메는 마치 살아 있는 사람에게 하듯 요한에게 말한다. “당신은 키스하지 못하게 했지. 하지만 이제 내가 당신에게 키스할 거야.
사랑의 신비는 죽음의 신비보다 더 위대해”라며 죽은 요한의 입술에 열정적으로 키스한다. 그 광경을 더 이상 참지 못한 헤롯이 “살로메를 죽여라”라고 외치자 병사들이 달려들어 방패로 살로메를 눌러 죽이며 막이 내린다.


■ 들을 만한 음반
△힐데가르트 베렌스(살로메), 칼 발터 뵘(헤롯), 아그네스 발차(헤로디아스), 호세 반담(요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지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EMI, 1978)
△브리기트 닐슨(살로메), 게르하르트 슈톨체(헤롯), 에베하르트 베흐터(요한), 게오르규 솔티(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Decca, 1961)
△세릴 스튜더(살로메), 레오니 리자네크(헤로디아스), 브린 터펠(요한), 주제페 시노폴리(지휘), 베를린 도이치오퍼(DG,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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