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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적으로 필요하고 환자가 요구하는데도 ‘임의비급여’로 볼 수 있나
의학적으로 필요하고 환자가 요구하는데도 ‘임의비급여’로 볼 수 있나
  • 의사신문
  • 승인 2019.12.03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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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Ⅰ- 실손보험사의 보험금 지급거절 소송사태

PRP, SELD, TELA…관련 소송 즐비- 신경외과
김 재 학대한신경외과병원협의회 보험이사
김 재 학 대한신경외과병원협의회 보험이사

실손형 보험을 포함한 민간의료보험은 본질적으로 공적의료보험(국민건강보험)을 보완하는 역할이다. 실손보험은 국민건강보험에서 보장하지 않는 비급여부분과 본인부담의료비를 보장하는 상품이다.
최근들어 대기업이 운영하는 실손보험사들이 환자들에게 치료에 대한 비용을 거절하거나 병원에 대해 비용을 환수하기 위한 소송등의 분쟁을 벌이고 있다. 외과 영역의 맘모톰 사태와 관절 질환의 자가혈 치료술 (platelet rich plasma, PRP), 페인 스크램블러 (pain scrambler) 사태가 대표적이다. 필자는 최근 실손보험사들의 행태 중 신경외과에 관한 부분을 정리해 보았다. 구체적 사실은 신경외과에 관한 것이지만, 민간보험사들이 일으키는 소송의 원인과 법률적 해석, 그리고 실제적 반응에 대해 포괄적으로 기술하였다.

지난 2018년 페인 스크램블러치료에 대해 보험사들이 다수 병원들에 대해 적응증 위반을 들어 치료비용 환수소송을 진행하였으며 일부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페인 스크램블러의 문제는 신경외과와 정형외과, 통증치료를 하는 많은 의료기관의 공통의 관심사였으며 식약처의 허가 기준과 심평원의 적응증 기준에 차이가 있어 발생하였다.

또한 올해 들어 신경외과, 특히 척추영역질환을 다루는 많은 병원들이 시행하는 일명 꼬리뼈 내시경 시술 (SELD transSacral Endoscopic Laser Decompression) 와 추간공 경유 내시경레이저시술 (TELA, Transforaminal Epiduroscopic Laser Ablation) 등에 대해 허가되지 않은 레이저 사용을 이유로 다수의 병원에 대해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에 척추신경외과학회와 신경외과학회, 신경외과의사회, 신경외과병원협의회 등은 이 문제에 공동대응하고 있으며 학회를 통해 SELD 와 TELA 등의 시술이 적절함을 선언하였다.

가장 논란이 되는 레이저의 사용에 대해 레이저는 여러 의료 분야에서 조직의 삭마, 절제, 응고 등의 목적으로 사용되어 왔으며, 레이저의 사용은 부수적인 것으로, 레이저를 사용하는 시술이 여타의 내시경적 경막외강 신경근 성형술과 다른 것이 아니고, 시술에 레이저 등의 도구 사용을 결정하는 것은 의사의 고유 권한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이해 당사자와 동일한 시각을 가지는 신경외과 유관단체의 주장이므로, SELD 와 TELA가 법률적으로 적법한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 보아야 한다. 의료인의 시각과 일반인의 시각 그리고 법률의 해석은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 논쟁의 핵심은 SELD 및 TELA는 ‘요양급여 범위를 벗어난 임의비급여인가’라는 질문이다. 이것은 SELD 및 TELA를 포함한 맘모톰, 페인 스크램블러, PRP등 모든 치료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질문이다.

보험사들의 주요한 논리는 요양급여기준을 위반한 의료행위는 요양급여대상이 될 수 없으며, 의료(요양)기관은 요양급여 대상을 벗어나 의료행위를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설사 시행하였다 해도 환자에게 청구하면 안 되는데도 환자에게 청구한 것은 이를 위반한 것이며 이는 ‘임의비급여’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임의비급여를 금지하고 있으며 환자의 동의가 있다고 해도 임의비급여는 불법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보험사, 요양급여 기준 벗어난 의료행위 청구에 대해 ‘임의비급여’ 주장
 의료계, 보험사에 요양급여 기준 적용은 부당…대위권 확보 적절성도 의문

 

그러나 의료인들은 이러한 주장을 몹시 불편하게 받아들인다. 우선 임의비급여의 적절성에 대한 의문, 또 비급여에 대한 요양급여기준이 공적인 관계를 넘어 사적인 민간보험사와의 소송에도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 그리고 보험회사들이 고객인 환자들에게 대위권을 확보하는 것이 적절한가 등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의료인은 환자를 진료함에 있어 최선의 진료를 다할 의무가 있고 동시에 환자에게 최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반대로 환자는 질병에 대하여 비용에 관계없이 최선의 진료를 받을 권리가 있다. 따라서 법률적으로 의학적 필요와 환자의 요구와 동의, 긴급성과 특이성 등을 감안한다면 임의비급여 행위라 하더라도 적법하다고 평가될 수 있다.

또한 비급여 항목을 규정한 요양급여기준은 국민건강보험법에 근거한 공법상의 기준이며, 실손보험사들이 문제삼는 임의비급여로 인한 소송은 민사의 영역이다. 요양급여기관이나 건강보험 가입자(국민, 환자) 및 국민건강보험공단 사이의 공적인 관계가 아닌 사적 영역인 민간보험사 및 이들에 의한 민사 소송의 영역에 요양급여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그 타당성이 조각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의료계는 보험사들이 환자들에게서 대위권을 획득한 과정에서 ‘환자들이 정말 무자력한지 여부(채권 보전의 필요성)’, ‘환자들이 내용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스스로 자기의 권리 행사를 포기한 것인지에 대한 여부(환자들의 권리 불행사)’ 등의 요건을 갖추었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환자들이 내용을 정확하게 인지하였다면 비용을 돌려받을 권리(채권)를 보험사에게 양도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국민건강보험을 포함한 사회보장 제도만으로 필요한 비용을 충당할 수 없기 때문에 실손형을 포함한 민간보험이 다양한 형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있다. 그러나 수익을 내야만 하는 민간보험의 성격상 환자들에게 지급거절이 빈번하고, 병원들에 대해서는 임의비급여라는 명목으로 채권자 대위를 통해 민사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 실손보험은 사후 환불제를 채택하고 있으나, 최근 들어 실손보험 청구간소화라는 제도를 입법화하여 민간보험사가 진료적정성 평가를 도입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이는 최종적으로 민간보험 회사가 진료비 지급 기준을 정하여 병원에서 환자의 진료 내역을 심사.평가하고 그 결과에 따라 보험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변경하는 것이며, 이러한 관계와 비용의 흐름은 의료 민영화를 위한 시발점이 될 것이다. 이는 의료의 공공성에 반하는 것으로 국민건강보험과 민간보험의 상호 영향이 다양하게 나타나면서 국민건강보험 재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발생하는 민간 보험사들의 환자에 대한 지급거절, 병원에 대한 민사 소송 등을 바라볼 때 실손보험 청구간소화가 정착된다면 지급거절과 민사소송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학자들은 실손보험을 포함한 민영보험과 공적 의료보험이 보장범위를 넓혀 가면 나타나는 도덕적 해이와 공급자 유발수요에 대해 경고한다. 도덕적 해이와 공급자유발수요는 ‘비용은 누가 지불해야 하는가’와 같은 문제로 귀결되고, 민간보험사는 그것을 가장 간단한 방법인 지급거절과 민사소송을 동원하여 해결하려 한다.

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면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재정적 악화를 초래할 수 있다. 그 근간에는 선악의 문제를 떠나 사익을 추구하는 인간 본성이 자리하고 있다. 보험에서의 피보험자, 즉 국민.환자는 어떠한 위해(질병)가 발생할 경우 일정 수준의 보상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보험료를 납부한다. 이런 보험 적용은 비용의 일부만 부담하게 되므로 자원의 경제적 사용에 대한 동기를 잃게 한다.

의료보험에서의 사익을 추구하는 인간본성상 보험에 가입하고 나면 피보험자는 서비스 단위당 가격이 높거나 혹은 전체 진료비용이 많이 드는 질 높은 의료 서비스를 선호하게 된다. 의료보험으로 인해 가격에 둔감해지면서 의료 공급자의 서비스 제공에 대해 견제기능을 잃게 하는 문제를 유발한다. 이런 소비행태는 의료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뚜렷해지는 경향이 있으며, 자부담이 없는 자동차보험 사고에서 더 비싼 검사(MRI 등)를 무리하게 요구하는 환자들이 늘어났던 현상이 이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 새로운 의료 기술이나 진단 기술이 도입되면, 여러 경로를 통해 환자들의 욕구는 더욱 강렬해지고 이것은 사익을 추구하는 인간본성의 발현을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 의료 공급 측면에서도 진료와 관련한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명확한 진단과 치료에 이 기술들은 집중적으로 사용된다. 더욱이 새로운 진료의 질을 개선시킬 수 있는 새로운 도구들은 대체로 고비용 서비스이며, 수요와 공급, 즉 환자와 의사들간의 상호충족을 위해 사용됨으로써 의료비를 증가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사익을 추구하는 인간본성의 발현을 학자들은 도덕적 해이 (moral hazard)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것은 의료와 기술이 진보하는 전형적인 과정이고 동시에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므로 단순히 도덕적 해이로 몰아갈 수만도 없다. 의료에 있어서 기술이란 새로운 치료행위, 의료기기, 치료재료, 신약 형태로 아주 다양하며, 전문의사들 간의 경쟁, 기업 간 경쟁을 통해 그 발전 속도가 가속화된다.

또한 질 높고 다양한 의료 서비스, 폭넓은 의료보장 등에 대한 국민의 욕구가 늘어 날 수밖에 없으며, 생사의 범주에 국한된 진료의 범위가 삶의 질과 관련된 질환으로 확장되고, 신기술 사용 수요가 증가하는 것은 결국 ‘비용을 누가 지불해야하는가’와 같은 근원적 질문으로 귀결된다. 이것은 수진자와 의사들간의 상호 충족을 위한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최근 신경외과의 SELD 및 TELA 사태에서 척추신경외과학회는 SELD 및 TELA 치료의 적절성에 대해 공식적인 학회 입장을 내놓았다. 이는 ‘최선의 진료와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하는 의무에 대한 임의비급여는 부적절한가’ 또는 ‘의사의 고유 권한은 어디까지’인가, 그리고 ‘비용은 누가 지불해야 하는가’라는 근원적 논쟁의 시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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